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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산책 메이트

너의 일생은 어땠니.

by 도쿄키무상

한순간, 소소한 나만의 생각의 세상.


오늘도 여느 때와 다름없는 일상을 보내는 나는

평범한 장면 속에서 작은 주제를 가지고,

나도 모르게 ‘생각의 세상’으로 잠시 빠져든다.


때론 장난스럽게, 어쩌면 매우 무겁게.


과거 제주살이 시절,

나는 제주 동쪽에 위치한 월정리라는 작은 바다 마을에 지냈었다.


걸어서 1시간이면 마을 한 바퀴를 돌 정도로 작은 월정리에서

바다가 보이는 풀빌라 펜션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일을 해왔다.


숙소 문을 열면 바다냄새와 소금기 가득한 바람이 나를 반기는 그곳은.

참 낭만 넘치는 곳이었지만, 1년 반이라는 시간을 지내기에는 답답하고 불편한 곳이기도 했다.

해가 지고 어둠이 깔린 월정리는 시시각각 달라지는 바람에 맞춰 춤추는 파도소리만 들릴 뿐이다.


펜션 일을 끝내고 퇴근을 할 때면 석양이 지는 시간이었다.

퇴근 후 주황빛으로 물든 하늘을 보며 산책을 나선다.

이는 월정리에서의 유일한 나의 즐거움이었다.


월정리에 자리한 편의점은 밤 11시가 되면 불이 꺼진다.

월정리에 존재하는 몇 안 되는 술집들은 역시나 새벽을 지키지 못한다.

나 스스로가 유흥과는 거리가 있는 사람이라 다행이라고 그 시절에 나는 생각했다.


어두워진 월정리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걷고, 때로는 뛰는 게 전부였다.

그렇게 많은 시간을 산책과 러닝을 하는데 활용했다.


그렇게 다를 것 없는 어느 날 퇴근 후 씻고 잠이 들었다.

오후 8시가 되어서야 잠에서 깬 나는 평소보다 뒤늦게 옷을 갈아입고 산책길에 나섰다.


제주 여행을 다녀본 사람들은 잘 알지도 모르겠다. 월정리라는 이름을.

한때 나의 집이었던 월정리는 관광지로 유명한 곳이기도 하다.

성수기면 어김없이 여행객들로 작은 바다 마을이 시끄러워지는 곳이기도 하다.

나는 이런 소음이 반갑지 않았다.

초창기에는 바다를 따라 뒤는 내 모습이 좋아 소음을 마주했지만 이는 오래가지 못했다.


그렇게 자연스레 나의 산책 루트는 아무도 없는 곳으로 설정이 되었다.


월정리에는 ‘구좌중앙초등학교’라는 학교가 딱 하나 있다.

이곳은 나의 헬스장이 되어주기도 하고 산책길의 반환점이 되어주기도 하는 곳이다.

오후 8시에 길을 나선 그날도 나는 그곳으로 향하고 있었다.


산책길, 혹은 러닝을 뛰는 순간에는 음악과 함께한다.

그날의 나는 아마도 들려오는 붐뱁 힙합 비트에 발을 맞춰 뛰는 중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나는 잊지 못할 나의 산책 메이트를 만나게 된다.


뛰는 와중에 알 수 없는 형체에 놀라 넘어질 뻔했다.

놀라 멈춰 서서 옆을 보니 덩치 작은 강아지 한 마리가 꼬리를 흔들며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제주에는 떠돌이 들개가 정말 많다. 안타깝게도.

실제로 나는 강아지가 유기되는 장면을 봤을 정도로 제주에서는 반려동물의 유기가 행해지고 있다.

나를 보며 무해한 웃음을 짓고 있는 이 녀석도 그런 녀석들 중 한 마리일까라는 생각을 먼저 했다.


나는 동물을 매우 좋아한다. 어릴 때부터 강아지를 좋아했지만, 동물을 무서워하시는 부모님의 영향으로 인연이 닿지는 못했다.

대신에 성인이 된 이후로 펫샵에서 매니저로 일하기도 하고, 유기견 봉사를 다니기도 했다.

그 정도로 동물을 애정하는 인간에 속한다.


다시 돌아와서 내 옆에 있는 녀석을 쳐다본다.

이름은 당연히 알지 못하고, 제대로 봐도 품종조차 알기 어려운 녀석이었다.

약간의 비글스러움과 믹스견 특유의 댕청미를 가진 친구였다.


제주에 들개가 많은 것은 안타까운 일이지만,

들개들은 꽤 많은 문제를 일으키고 다니는 녀석들이기도 하다.

사람을 공격하기도 하고, 농작물과 인간에게 재산피해까지 끼치기도 하는 녀석들이다.

그렇기에 나는 첫 만남에서 그 녀석을 꽤나 경계했다.


손과 발을 이용해서 녀석을 쫓아내는 시늉을 한다.

따라오지 말라고 땅에 발을 굴려가며 소리 내어 위협하기도 해 봤다.

그럼에도 녀석은 개의치 않는다는 듯이 꼬리를 흔들며 내 옆을 꼭 지켰다.


이내 나는 잠시나마 녀석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내심 나쁘지 않았기 때문이다.

초등학교로 향하는 내내 녀석은 내 옆을 지켰다.

나 역시 어딘지 모르게 든든하고 외롭지 않아서 좋았다.


갑자기 나타난 녀석이니 금방 제 갈길을 갈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녀석은 나의 예상을 비웃는 듯이 뛰는 내내 내 곁을 지켰다.


월정리에서 나는 6~7km 정도, 많게는 10km를 걷고 뛰고 해 왔다.

결코 짧은 거리가 아님에도 그 녀석은 내 페이스 지켜가며 따라와 줬다.


귀여운 모습에 반갑다가도 한편으로는 걱정이 되기도, 문득 무섭기도 했다.

성인이 된 이후에도 내가 반려동물을 키우지 않은 건, 생명을 책임진다는 책임감에 겁이 났기 때문이다.

지금 내 옆에 있는 이 녀석과 혹여나 정이 들어 연이라는 게 생길까 덜컥 겁이 났다.

아니 어쩌면 이미 나도 모르게 연이 생긴 건 아닐까 무서웠다.

그렇기에 최대한 없는 존재라는 듯이 반응했다. 예뻐하지도 않았고, 눈길도 주지 않으려 했다.


긴 산책시간이 끝이 나고 펜션으로 돌아가는 길.

동물에게는 저마다의 활동반경과 구역이 존재한다. 갑자기 나타난 녀석이니 분명 본인의 영역에 들어서면 익숙하게 돌아갈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 녀석은 나의 예상에 발맞춰 주지 않았다. 결국은 나를 따라 숙소까지 함께 들어섰다.


하지만 녀석도 예상치 못한 존재가 있었을 것이다. 내가 지냈던 펜션에는 베르라는 이름의 진돗개가 한 마리 있다.

시골에서 험하게 자라왔던 녀석이라 낯선 사람이나 다른 생명체에게 그다지 호의적이지는 않다.

진돗개답게 꽤나 힘 좋은 싸움꾼이기도 한 베르는, 떠돌이 들개나 도둑고양이에게 치명상을 입힌 전적이 많은 녀석이다.

나를 따라 펜션에 들어선 그 녀석에게 베르는, 뚫을 수 없는 수문장 같은 존재였을지도 모르겠다.

물론 묶여있는 베르가 그 녀석을 다치게 하진 않았지만, 녀석을 보자마자 맹렬하게 짖어대는 바람에 손님 몇 분이 밖으로 나와보기까지 했을 정도였다.

나는 오히려 잘 된 일이라고 생각했다. 이곳은 네가 올 곳이 아니니 오늘은 서로에게 잠시 내린 소나기 같은 존재로 남고 사라지자고 얘기하고 싶었다.

그렇게 나의 산책길에 친구가 되어주어 고맙다는 마음으로 물과 소시지를 주고 내 방으로 들어갔다.


나는 그날이 그 녀석과의 처음이자 마지막 만남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앞서 얘기했듯이 그 녀석은 매번 나의 예상을 무의미하게 만들었다.


이틀이 지나고 오후 7시쯤 여느 때처럼 같은 옷과 신발을 신고 산책을 나섰다.

내심 그 녀석의 존재를 의식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지만, 다시 만날 수 있을 거라는 기대는 없었다.

그런 마음가짐으로 나선 어느 날의 산책길에서 그 녀석과의 두 번째 만남이 시작되었다.

녀석과 다시 만나게 된 것이다. 매우 반가웠지만 역시나 거리를 두고 걷기 시작한다.


녀석은 첫 만남 때처럼 내 페이스에 맞춰서 잘 따라왔다. 산책이 끝나면 펜션까지 들어와서 내가 주는 물과 간식을 급하게 먹고는

베르의 외침에 쫓기듯 사라진다. 우리의 어색한 동행은 한 달이라는 시간 동안 지속되었다.


어느덧 자연스럽게 내 옆에서 걷고 뛰는 녀석을 나는 익숙하게 바라봤고,

정들고 싶지 않아 이름조차 지어주지 않는 녀석은 나와 약속이라도 한 듯 보이지 않는 선을 지켜가며 나와의 동행을 함께했다.


시간이 지나고 어느 날,

육지에서 친구들 놀러 온탓에 3일 정도를 출근하지 않았다.


그렇게 다시 월정리로 돌아와 일을 끝내고 산책길에 나섰을 때,

녀석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어디서부터 왔는지 알 수 없는 녀석이니, 찾고자 할 마음도 먹을 수 없었다.


아니 어쩌면 불편한 동행을 더 이상 이어가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이 들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이성적인 생각과는 다르게 보이지 않는 녀석을 생각하며 쓸쓸함이 들었다.

걱정이 되기도 했다.

이후에는 ’ 걱정할 거였으면 네가 처음부터 책임지지 그랬나 ‘라는 냉정한 말을 스스로에 전한다.


다음날이 되어서도 녀석은 나타나지 않았다.

그다음 날이 지나서도 모습을 보지 못했다.


어느 날은 날이 밝을 때 이른 산책길을 나섰다.

내심 녀석이 있을만한 곳을 확인해보고 싶었던 것 같기도 했다.

시간은 흘러갔고,

나는 더 이상 녀석을 기다리지 않게 되었다.


여전히 녀석을 그냥 ‘녀석’이라는 이름으로 남기고 싶다.

그 편이 서로에게 좋지 않을까라는 마음이 들었다.

그 녀석의 끝을 상상해보지는 않았다. 대게 그렇듯이 떠돌이 들개의 마지막이 좋을 확률이 크지 않기 때문이다.

세상의 이치이자 자연의 섭리로 정의 내리기로 했다. 스스로를 그렇게 위안 삼았다.


녀석을 더 이상 만나지 못한다는 것을 인정하고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고서야,

스스로에게 추억하는 것을 허락해 본다. 내심 죄책감이라는 마음을 안고 지내왔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만났던 어느 날의 그 순간,

애써 하지 않으려 했던 녀석의 대한 상상을 추억하며 해본다.


눈을 채 뜨지 못한 채로 따뜻한 온기가 느껴지고 알 수 없는 힘에 내 몸이 들린다.

이제 막 세상에 나온 나에게는 알지 못하는 소음만이 들릴뿐이다.


나의 얼굴이 점차 축축해져 가는데, 나는 도통 이유를 알지 못한다.

어리둥절하게 생명이라는 이름이 내 몸에 깃들었을 때,

내 입속으로 맛 좋은 무언가가 흐르는 것을 느꼈다.


며칠이 지났을까 처음 보는 것들 투성이가 내 눈앞에 비친다.

나의 어미로 보이는 작은 개가 나의 온몸을 핥아주고,

나와는 다른 생명체로 보이는 자는 어미와 나의 형제들을 챙긴다.


시간 흐르다 보니 입이 조금씩 간지럽기 시작했다. ‘치아’라는 것이 나는지도 모르겠다.

매번 나의 어미가 무언가를 씹어 삼킬 때마다 궁금하고 또 부러웠다.

이런 감정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는 나이가 된 것이다 나도.


눈앞에 보이는 것들이 마냥 즐거웠다.

나와 어미를 챙기는 자의 발 밑을 쫓기 바빴고,

나는 매 순간 배가 고프고 졸려왔다.


어느 날 눈을 떠보니 나의 형제가 보이질 않았다.

이유에 대해서 잠깐 생각하려다 또 나를 챙기는 자의 모습이 그를 쫓다 하루가 끝이 났다.

내가 무슨 생각을 하려고 했더라?


며칠이 지나고 눈을 떠보니 평소와는 다른 세상이 보인다.

내가 하루아침에 이렇게나 자란 걸까?라는 생각에

아래를 내려다보니 나의 어미가 슬픈 눈으로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다시 정신을 차려보니 누군가의 품에 나는 안겨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다른 공간에 들어섰다.

이 집은 이유를 알 수 없지만 수없이 흔들리고 시끄러웠다.

이곳이 나의 새로운 보금자린 줄로만 알고 잠이 들었다.


다시 눈을 떠보니 시끄럽고 흔들리는 집은 사라지고,

새로운 공간에 나는 놓였다.

매번 나와 어미를 챙기던 그가 아닌 다른 이들에게 나는 둘러싸여 있었다.


그들이 손뼉을 치며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잘은 모르겠지만 그 소리가 나의 이름이라는 것을 이해할 나이인 것 같다.

그들이 나의 주인이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깨닫게 될 나이도 되었다.

그들은 나를 부르고, 밥을 챙겨주며, 내가 그들의 손에 내 손을 올려둘 때면,

나에게 맛있는 간식을 주곤 한다. 나는 그들과의 시간이 너무 행복하다.


오전이 되면 집이 조용해진다.

나는 조금은 쓸쓸하지만, 금방 그들이 나에게로 돌아올 것이라는 것을 알기에 얌전히 있기로 한다.

오후가 되면 다시 그들이 나에게로 와 나를 온 힘을 다해 만져준다.

그들은 아마 나를 좋아하는 것 같다.


그들과 함께한 시간이 제법 흘렀다.

어느 날은 배가 고파 밥을 먹으려고 보니, 밥이 없었다.

아마 나의 주인 바쁜가 보다. 나는 밥그릇을 들고 그에게로 갔지만, 이상하게도 나는 그날 밥을 먹지 못했다.

내가 무슨 잘못을 한 것일까? 내일은 착한 아이처럼 기다려봐야겠다.


다음날 저녁쯤 되니 배가 너무 고파 걷기가 힘겨웠다.

밤늦게 들어온 작은 주인에게 다가가 공손하게 얘기해 봐야겠다.

그렇게 나는 오래간만에 배불리 밥을 먹을 수 있었다. 좋아하는 간식도 받은 기쁜 날이었다.

역시 그들은 나를 좋아하는 게 틀림없다.


어느 날 생각해 보니 밖을 나가지 못한 게 언젠지 기억이 나질 않았다.

옆 블록에 사는 하얀색 친구와 종종 보고는 했었는데, 그 친구의 냄새가 희미해져 간다.

아마 나의 주인들이 굉장히 바쁜 시기인가 보다.


밤에 시끄러운 소리에 눈을 떠보니 집이 시끄러웠다.

나는 알아듣기 어려운 소음이었지만, 주인들이 화가 났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그들을 기쁘게 하고 싶어서 열심히 꼬리를 흔들며 다가간다.


나 역시 그들을 사랑하는 것 같다.


아침에 눈을 떠보니 다들 기분이 좋아 보인다.

정말 오랜만에 나는 작은 가방 속에 들어갔다. 이 집에 온 뒤로는 처음으로 흔들거리는 집에 다시 들어섰다.

생각보다 긴 시간을 그곳에서 보내고 가방 밖을 나오니 바람이 강하게 불었다.

처음 맡아보는 냄새가 풍긴다. 처음 보는 세상과 마주했다. 그들은 여전히 기뻐 보인다.


집 근처 친구와 자주 만나는 공터보다 훨씬 넓은 곳에서 작은 주인과 함께 뛰어놀았다.

너무 기분이 좋아서 뛰는데 다리가 꼬일정도였으니 말이다. 처음 맡아보는 냄새 투성이라 너무 흥분됐다.

나와 같은 다른 친구들의 냄새도 이곳저곳에서 풍겨왔다. 어서 나도 이곳에 내가 왔다는 표시를 남겨야겠다.

이곳이 어딘지 모르겠지만, 나는 이 순간이 너무 즐거웠다.


다음날이 되고는 다시 가방에 들어가 흔들거리는 곳에서 잠이 들었다.

전날 열심히 뛰어다닌 탓인지 깊은 잠에 빠져있었다. 여전히 꿈속에서 냄새를 맡고 있을쯤,

발이 땅에 닿는다.

어라? 주인들이 타고 있는 흔들리는 공간이 조금씩 멀어지는 게 보였다.


집 근처 공터에서 작은 주인들을 잡는 놀이를 하고는 했다.

작은 주인들이 신난다는 표정으로 뛰어가면 나는 그들보다 빠르게 달려 앞을 가로막고는 했다.

그러면 다시 작은 주인들이 뒤를 돌아 웃으며 도망친다. 나는 이 놀이를 매우 좋아했다.


알 수 없는 즐거운 냄새로 가득한 이곳에서 놀이가 시작되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그들을 쫓았다. 내가 먼저 그들 앞을 가로질러야 한다.

평소보다 그들이 조금 빨랐다. 아닌가, 어쩐지 그들이 점점 멀어지는 기분이다.

그렇다 너무 오랜만이라서 내가 잘 달리지 못한 탓인 것 같다.

그렇게 한참을 뛰었다. 주인들의 모습이 보이질 않지만 말이다.


집 안에 있을 때 주인들이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리곤 했다.

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가보면 아무도 없다. 그러다 나를 놀라게 하며 작은 주인들이 내 뒤에서 등장한다.

나는 그때마다 놀라고 화가 나기도 했지만, 이 놀이 또한 매우 좋아했다.


언제 내 뒤에서 나를 놀라게 할지도 모르니 이번에는 놀라지 않은 척을 해야지라고 다짐했다.

그렇게 하늘이 어두워져 갔다. 풍겨오는 냄새도 조금씩 달라지는 것 같았다.

배가 고프고 목이 마르지만 이 놀이가 끝나면 항상 그래왔듯 그들이 나에게 맛있는 간식을 줄 거야. 그렇게 생각했다.

걷다 보니 조금 지쳤다. 언제 주인이 나를 놀라게 할지 모르지만, 오늘은 잠시 쉬어가는 게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다음날 어디를 향해 가야 할지 고민했다.

내가 그들을 잡는 놀이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으니, 그들이 나를 찾을 수 있게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들은 어디에 숨은 걸까? 나는 그들과 같은 모습을 한 이들이 많은 곳으로 향해본다.


그렇게 제법 시간이 흐른 것 같다.

여전히 놀이가 즐겁지만, 조금은 힘이 들었다. 이제 그만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어느 날 주인과 닮은 이들이 가득한 곳에 도착했다.

바람이 제법 강하고 내가 이곳에 처음 왔을 때 맡은 냄새가 짙은 곳이었다.


그곳에서 걷다 보니 큰 주인과 닮은 이가 뛰어가는 게 보였다. 나도 모르게 놀이라는 생각을 했다.

아니 어쩌면 그가 나를 주인 곁으로 데려다줄 것만 같았다.


그는 나를 잠시 바라보더니 제 갈길을 갔다.

그동안 내가 이곳에 오기까지 많은 이들이 나를 반겨주기도 하고 내 쫓기도 하고,

먹을 것을 주기도 했지만, 그만큼은 아무 반응이 없었다.

역시나 그는 나를 주인들 곁으로 데려다주려는 게 틀림없다는 생각을 했다.


그와의 첫 만남이 즐거웠다. 그렇게 그를 따라가 보니 웬 사나운 친구를 만났다.

나를 반기는 모습은 아닌 것 같아 조금 무서웠다. 집 근처에서도 저런 친구들을 본 적이 있다.


그는 나에게 물과 음식을 주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힘이 난다. 하지만 이내 그는 내 시야에서 사라졌다.

사나운 친구가 뱉는 말에 겁이 나서 그곳에서 멀어졌다.

그의 냄새를 기억했으니 또 만날 수 있을 거다.


다음날 그와 다시 만났다.

여전히 그는 앞만 보고 걸었고, 때로는 뛰었다. 나는 착한 아이니까 그의 곁에서 그에게 맞춰 나란히 걸었다.

오늘도 그는 나에게 물과 음식을 준다. 사나운 친구와도 다시 인사를 나눴다.


그와 만나는 시간은 일정하지는 않았지만, 자주 볼 수 있었다.

그는 나에게 다양한 음식과 물을 매번 챙겨줬다. 그가 나의 주인을 만나게 해 줄 거라는 것에 대한 믿음이 확신이 되었다.


어느 날 그의 모습이 보이질 않았다.

그동안도 매일 그를 만나던 것은 아니었기에 이날 역시 날이 아니라 생각했다.


다음날도 그의 냄새가 나질 않았다. 나는 기다려보기로 했다.

그렇게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모르겠지만, 그의 모습은 여전히 보이질 않는다.


내가 지금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기억이 희미 해질 때쯤,

주인들과 함께 놀이를 하고 있다는 것이 기억이 났다.

나는 다시 그들을 앞서가야 하다는 사실이 기억났다.

나는 지금 놀이를 하는 중이라는 것을 잊다니 나도 나이가 들었나 보다.


그에게 인사 없이 떠나는 것은 미안하지만 이 놀이가 끝이 나면 그를 다시 만나러 와야겠다.


행복함으로 가득한,

끝없는 놀이가 진행되는 곳.


네가 누군가의 발걸음을 맞춰 걷는 곳이 아닌,

누군가 너와 함께 뛰려고 속도 내는 곳에서,

그런 곳에서 영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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