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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진 May 12. 2024

사유의 힘, 사유의 함정

ㅣ사유의 힘은 제법 세다     


사유와 실재는 다르다. 사유가 곧 실재는 아니라는 것이다. 사유가 실재를 만들기도 하고, 사유는 실재가 반영된 것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사유와 실재가 동일한 것은 아니다. 사유와 실재는 상호 작용하며 서로를 만든다.     

사유가 실재를 만들기도 한다는 것에, 사유가 실재의 반영인 것만은 아니라는 것에, 그럴 여지가 있다는 것에, 사유가 실재로부터 그만큼의 자율성을 지닌다는 것에, ‘사유의 힘’이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 힘을 발판 삼아 사유는 실재를 바라는 모습으로 만들어가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사유의 힘은 제법 세다고 할 수 있다. 실재가 ‘사유하기 나름’인 것은 아니지만 사유하는 대로, 사유하는 만큼 실재를 만들 수 있는 여지는 있다는 것이다. 그럴 때 중요한 것이 실재가 실제로 어떠한지 파악하는 것일 테다.      


부단히 변화하는 실재를 따라잡으며 파악할 때, 그런 가운데 실재의 운동 법칙이나 변화 경로를 파악할 때 실재를 사유가 바라는 대로 만들어가기 수월할 것이다. 이러한 주장에서 문제가 되는 것이 ‘실재에 대해 사유가 파악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ㅣ파악한 만큼은 파악했다     


애초에 실재에 대한 사유의 파악은 ‘불완전, 불명확, 불확실’하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사유의 파악’이 문제 되거나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을 수도 있다. ‘완전한, 명확한, 확실한’ 파악이 무엇인지 파악하는 것조차 ‘불완전, 불명확, 불확실’한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완전, 명확, 확실’하지 않다고 해서 실재에 대한 모든 파악이 잘못된 것, 틀린 것일 리는 없을 것이다. 잘못된 것, 틀린 것이라는 파악도 마찬가지로 완전, 명확, 확실하지 않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해서, 어떤 사유든 파악한 만큼은 파악했다고 주장할 수 있으며 파악된 것의 절대적 아닌 상대적 완전, 명확, 확실을 주장할 수 있는 것이다. 그만큼의 완전, 명확, 확실을 두고 옳고 그름을 논할 수 있는 것이다.     



ㅣ실재에는 자신의 사유도 포함된다     


그러한 논의(논쟁) 가운데 자신의 파악이 옳다고 주장하는 기준들이 제시될 수 있을 것이다. 사유와 실재 사이의 일치 여부, 정합성 정도, 혹은 파악된 것의 현실성(현실적인 의미, 힘, 이익 등) 등이 있다. 그럴 경우에도 기준이 되는 것은 ‘실재’일 수밖에 없다. 사유 자신이 포함된 실재 말이다.     


‘실재’에 대한 사유들이 ‘실재’에 대해 파악한 것들을 두고 논의하며 합의에 이르면 좋겠지만, ‘이익과 권리’ 앞에서 대립하고 충돌할 수 있다. ‘자본가와 노동자’의 ‘실재’가, 그들 사이의 ‘이익과 권리’가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다.       


‘사유’가 첨예하게 충돌 할 경우 ‘사유의 함정’에 빠지기도 한다. 실재는 알 수 없다며 자기가 아는 것도 부정하는 ‘불가지론’, 자신은 ‘중립’이라며 자신 없이 지배적인 사유를 따르게 되는 사유, 모든 사유가 똑같이 옳다는 ‘상대주의’의 사유, 실재를 자기와 무관한 듯 ‘있는 그대로’ 파악한다는 ‘실증주의’의 사유 등이 그렇다.     


이들 사유가 ‘함정’에 빠졌다고 하는 이유는 다른 무엇보다 ‘실재에는 자신의 사유도 포함 된다’는 사실, 심지어 자신의 사유에 따라 ‘실재가 변하여 만들어지기도 한다’는 사실을 부정한다는 것 때문이다. 그러한 사유는 자신의 현실성(현실적인 의미, 힘, 이익 등)을 부정하는 것이기도 하다.     



l 자신이 바라는 실재를 만들어가는 것   

    

자신을 만드는, 자신이 만드는 실재 속에서 자신의 위치와 의미를 파악하지 않으려는, 실재 속의 자기를 부정하는 사유는 실재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사유가 된다. 실재를 자신들의 ‘이익과 권리’를 위해서 사유하는 ‘자본주의국가권력 및 기득권 세력’이 바라는 사유이기도 할 것이다.     


‘불가지론’, ‘중립’, ‘상대주의’, ‘실증주의’의 사유에서처럼 실재에서 자신을 부정하는 사유의 함정에 빠지지 않을 수 있는 길은 ‘사유의 힘’에 따라 ‘실재’를 파악하며 실재 속의 자신을 부정하지 않으며 자신이 바라는 실재를 만들어가는 것일 테다.           



2024. 5. 12.



<사진들> 독일 베를린에서 영진 찍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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