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의 원인을 밝히고 인류의 유산을 후세에 전하기 위해서 [역사]를 썼다고 헤로도토스는 전한다. 전쟁의 원인은 무엇이며 인류의 유산은 무엇인가. 전쟁의 원인은 강자들의 탐욕이며 인류의 유산은 그들의 침략을 물리친 지혜라고 말할 수 있을까.
전쟁과 학살로 얼룩진 인류의 역사에서 과연 후세에 물려 줄 유산은 전쟁으로부터 평화를 지켜 낸 것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닌 듯 싶다. 하지만, 아테네와 스파르타 연합군이 살라미스 해전에서, 이순신 장군과 조선의 백성들이 명량해전에서, 호치민과 베트남인들이 정글에서 침략자들을 물리친 지혜 그 이상의 지혜, 즉, 인류에게 전쟁을 일으키지 않을 지혜는 없을까라는 물음에서 각국의 정부가 전쟁에 관여하지 않을 수 있는 능력을 함께 만들어가는 국민들의 지혜를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강대국들의 권력자들이 침략전쟁을 멈출 일은 없어 보인다. 인류는 생존을 위해 자생력을 키우며 더불어 살아가는 능력보다 무력으로 빼앗는 관습 속에서 살아 온 것이다. 하지만, 강대국의 권력자들을 선출하는 것도 국민들이라는 점에서 희망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닐 것이다.
헤로도토스가 [역사]를 통해서 짐작케 하는 전쟁의 원인은 ‘관습’이다. 2,500여 년 전의 인류에게 ‘무력으로 남의 것을 빼앗는 것’은 악행惡行이라기 보다는 조상 대대로 내려오는 관습이었다. 약탈 전쟁이 그렇고 노예제가 그랬다.
헤로도토스는 현자賢者 솔론의 입을 빌어 누구나 모든 복을 타고날 수는 없으나 누구나 타고난 복이 있으니 남의 복을 탐하기보다 자신이 가진 복을 죽을 때까지 누리는 것이야말로 행복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남의 것을 빼앗아 더 많은 복을 누리려는 행복은 덧없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누구나 더 많은 복을 누리기 위해 남의 복을 빼앗으려 한다면 자신이 가진 복마저도 누리지 못한 채 모두가 불행해진다는 말일 것이다.
이는 훗날 토마스 모어가 <유토피아>(1516년)에서 했던 말을 떠올리게 한다. “재산이 소수의 사람들에게 한정되어 있는 한 누구도 행복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 소수는 불안해하고 다수는 완전히 비참하게 살기 때문입니다.”
퀴로스왕은 세력을 넓히기 위해 이웃 나라를 침략하자던 신하들에게 다시 복수를 당할 것을 각오하라고 경고하기도 한다. 또한, 척박한 땅을 일구며 주인으로 살 것인지, 비옥한 땅에서 지배받으며 노예로 살 것인지 선택하라고도 한다.
인류 어느 시기 어느 지역에나 현자는 있기 마련이고, 자애로운 권력자들도 있을 테지만 자신의 생존과 안위를 위해서 전쟁과 학살을 일삼는 권력자들도 늘 있어왔고 앞으로도 존재할 것이다. 결국, 전쟁을 멈추는 것은 전쟁을 할 수 있는 권력을 국민들이 허락하지 않는 길 밖에 없을 것이다. 전 지구적인 민주주의나 평화를 바라는 이들이 권력의 주인이 되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끊이지 않는 전쟁과 학살로 점철된 인류의 역사 때문인지, 그럼에도 인류의 위대한 유산에 대한 관심 때문인지 헤로도토스의 [역사]가 종종 떠오른다. 한편으로 [역사]를 한국어로 번역한 천병희 선생이 생전에 라틴어 원전의 한국어 번역의 부족함에 대해 염려하곤 했던 기억이 나기도 한다.
다른 한편으로 외국어 번역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한강 작가의 작품들을 비롯해 한국문학이 외국어로 활발하게 번역되고 있다는 사실은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후대에게 물려 줄 인류의 유산은 무엇일까. 전쟁과 학살의 역사를 물리치고 평화롭게 더불어 살아가려는 지혜로운 문화가 인류의 유산이 될 수 있을까.
2024. 11.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