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큼한 치자꽃 향기

by 이곰

어느 날 부모님과 옛날 이야기를 하다

불쑥 이런 말이 나왔다.
“우리 집 베란다에 치자꽃도 있었잖아.”


순간 멈칫했다.
아, 맞다.
그랬다.


어릴 때 우리 집 베란다는
지금 생각하면 작은 베란다가 아니라
제법 큰 정원에 가까웠다.
그런데 이미지보다는 향기가 나에게 남아있다.

바로 치자꽃 향기.


그 향은 지금도 정확히 기억난다.
달고 진하고,
한 번 맡으면 잊히지 않는 냄새.


고등학교 때도 비슷한 경험이 있다.
학교 야외 벤치 위에는
등꽃나무가 있었다.
덩쿨식물이라
벤치 위로 가지를 뻗어
자연스럽게 그늘을 만들어 주었다.


그 아래에 앉아 있으면
햇볕은 가려지고
공기에는 은은한 향기가 맴돌았다.
등꽃 향기 역시
기가 막히게 좋았다.


숨막히는 직장 생활에서도

건물 밖 곳곳에 심어진

라일락과 아카시아 나무의 향기가

빌딩풍에 실려 코끝에 닿으면

그 순간만큼은 계절을 느끼곤 했다.


나는 그때
내가 식물을 좋아한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식물을 키우며 살다보니

그때의 향기들이 하나씩 찾아온다.


식물은 자라고
나는 기억을 되찾는다.

그 향기들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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