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 말고, 새로운 상황

by 이곰

즐겨보는 예능 〈나 혼자 산다〉에서

기안 84가 말한다.

젊었을 때보다 작품의 양과 질이 떨어지는 것 같다고.


그 말에 키가 이렇게 답한다.

“그때의 형이랑 지금의 형을 비교 안 하면 안 돼요?

나에게 젊은 시절은 그냥 아름다운 추억이었어요.

젊음이었고요.

그런데 10년 전의 나와 지금의 나를 자꾸 비교하니까

제 자신이 자꾸 곪더라고요.

지금의 나이와 지금의 상황에 맞게

새로운 나를 세팅할 필요가 있는 것 같아요.”


그 뒤 코쿤이 덧붙인다.

“나이가 먹으니까 내가 해야 할 일이 많아져요.

날아오는 고지서부터 가족, 친구, 동생 문제들까지.

그게 생기는 게 자연스러운 거구나,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게 된 것 같아요.”


웃으려고 봤다가 순간 멍해졌다.


우리는 ‘문제’라고 생각하는 일이 생기면

일단 짜증부터 난다.

버겁게 해결해 가며

이 문제가 끝나면 다시는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길 바란다.


하지만 그런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

부모님이 투닥거리시면

그걸 해결한답시고 애쓰다가

상황이 가라앉으면 안도한다.

‘아, 이번 일은 해결됐어.’


하지만 바람이 늘 무색하게

집안 문제가 해결되면 회사 문제가 생기고,

회사가 괜찮아지면 내 건강이,

건강이 나아지면 경제적인 문제가 고개를 든다.


‘문제’라는 녀석은

두더지 게임의 두더지처럼

해맑은 얼굴로 고개를 내민다.


“나 또 왔다. 어쩔 건데.”


식물을 키우면서 이걸 더 실감한다.

식물을 사면 이름을 검색한다.

“이 식물은 이렇게 키우세요.”

한 문단으로 정리된 설명을 보고

'아, 이렇게 키우면 되는구나'

쉽게 생각한다.


하지만 막상 키워보면 녹록지 않다.

식물이 베이비인지, 청소년인지.

지금 건강한지, 골골한 지.

계절이 여름인지, 환절기인지, 겨울인지.

키우는 장소가 베란다인지, 거실인지, 주방인지.

고려할 게 끝이 없다.


머리가 아파진다.

괜히 식집사 생활을 시작했나 싶다.

여기에

빨리 다 알고 싶다는 조급함까지 더해지면

상황은 순식간에 카오스가 된다.


그런데 이걸 ‘문제’가 아니라

‘새로운 상황’이라고 세팅하면

마음이 달라진다.

일단 화가 덜 난다.

대신 살펴보고 관찰한다.


뱅갈고무나무에 검은 점이 생겼다.

빛 문제일까, 물 문제일까, 환기 문제일까.

계속 들여다보다 보니

결국 빛 문제였다.

내가 보기에 예쁜 방향으로 식물을 세팅해 두었더니

빛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었다.


방향을 바꿔주자

검은 점이 조금씩 작아지기 시작했다.

나의 작은 거실 정원에서도

크고 작은 이슈가 매일 생긴다.


말라 보이는 고사리,

노래지는 워터코인,

축 처진 박쥐란.


그럴 때마다

분무기로 물을 뿌리고,

지저분해진 물을 갈아주고,

화분을 물에 담가 둔다.

그러고 나면

식물들의 상태는 조금씩 나아진다.


나 역시 갱년기를 지나고 있다.

자주 무기력해지고,

관절이 말썽을 부리고,

상황에 따라 돋보기와 난시 안경을 번갈아 끼어야 한다.


변화된 몸이 불편하고 낯설다.

하지만 젊은 때로 돌아갈 수는 없다.

지금의 나에 맞게

나를 다시 세팅할 수밖에 없다.


아마 삶을 마무리하는 그 순간까지

똑같은 하루는 없을 것 같다.

매 순간이 달라서 힘들다고 투정만 부릴 수도 없는 노릇이다.


문제는 사라지지 않지만,

다행히 나는

매번 새로운 상황에 맞게

나를 다시 세팅할 수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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