솜사탕 고사리의 생명력

by 이곰

식물을 미친 듯이 사고 나서 보니 내가 고사리과 식물을 많이 샀다는 걸 알았다.
내가 다양한 형태의 길고 쭉쭉 뻗은 잎들이 많은 모습의 고사리 식물을 좋아하는구나.

프레리스나 이디안텀은 외모로 보면 대충 고사리류라는 걸 알겠는데

타파, 후마타도 고사리과였다.
심지어 박쥐란도 고사리과인 걸 알고

‘와, 겉모습만으로 고사리과를 분류할 수 없겠구나’ 싶었다.


물을 주면 쭉쭉 자라는 싱싱함도 유쾌했다.
키우기도 쉽고 까다롭지 않은 이른바 '순한 친구'들이었다.

그런데 유독 나와 인연이 없는 고사리 식물이 바로 솜사탕 고사리다.

식물 가게에서 처음 만난 솜사탕 고사리의 모습이 뭐랄까, 풍성함 그 자체였다.
이렇게 생긴 식물도 있구나 신기했다.

풍성하게 자라난 잎들이 서로 엉켜서 흡사 솜사탕을 연상시켜 솜사탕 고사리라고 부른다.
식물 가게에서 본 건 어느 정도 자란 터라 풍성함이 더욱 눈에 띄었다.


색깔도 내가 좋아하는 연두색이어서 생명력이 느껴졌다.

초보자는 어느 정도 자란 식물을 사는 게 좋다는 말에 중학생 수준의 친구를 집에 데려왔다.

사장님이 과습을 주의하라고 했는데 당시 그 말을 흘려 들었다.

그때는 식물 습도계도 없었고 여름이라 물을 흠뻑 주고, 시원하라고 잎에 물을 뿌려댔다.


한참 풍성하다 했는데 스멀스멀 잎이 축 처지기 시작했다.
'뭐지?' 하는 사이 잎도 갈색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과습이란 말도 낯설어하던 시절이기 때문에 이 친구가 왜 이러는지 검색해 볼 생각도 못했다.

‘아, 잎이 갈색이면 물이 부족한 거라고 하던데’ 하면서 물을 더 주었다.
갈색으로 변하는 잎이 점점 많아지고 나는 그걸 또 가지치기한다고 잘라냈다.


잎이 풍성했던 고사리가 원형탈모처럼 구멍이 숭숭 나기 시작했고

결국 심한 탈모환자처럼 가지가 몇 가닥 남지 않은 상태가 되고 말았다.
'음냐, 죽었구나' 아쉽지만 작별을 고했다.

나중에 알아보니 이런 경우는

모든 가지를 정리하고 한참 동안 기다려 주면 새 순이 돋는다고 한다


이런 경험이 있어서 솜사탕 고사리를 다시 한번 잘 키워보고 싶은 마음이 컸다.
온라인 쇼핑몰에서 식물을 구입하는 건 위험요소가 많은데

급한 마음에 온라인 쇼핑몰에서 솜사탕 고사리를 구입했다.


그런데 집에 온 솜사탕 고사리는 모든 잎의 딱 절반이 뜯겨 나간 상태였다.
시든 잎사귀를 정리한 건지 모르겠지만

어떻게 줄기에 붙어있는 잎의 절반을 뜯어낼 수 있을까?

풍성한 고사리를 기대하며 주문한 건데 보기 불편할 정도로 아픈 친구가 온 것이다.

나와 솜사탕 고사리를 맞지 않나 싶을 정도로 마음이 불편했다.
당장 가게에 연락해서 항의를 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런데 반품이나 교환을 해 준다고 한다면 집에 온 이 친구는 어떻게 되지?
반품이던 교환이던 이 친구는 뿌리는 살아서 아무 문제가 없는데

겉모습 때문에 관리가 안 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화가 나는 걸 가라앉히고 솜사탕 고사리를 찬찬히 살펴보았다.
시간은 많이 걸리겠지만 식물 자체는 이상이 없었다.
새 순이 자라서 형태를 갖추면 여느 솜사탕 고사리처럼 자랄 수 있는 친구다.

그래서 당분간 외모는 포기하고 잘 가꾸어 보자 마음먹었다.
과습으로 문제가 있었던 전적이 있던 터라 과습이 안 되도록 신경 썼다.


한 번 다친 식물은 회복하는 데 일정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다.
언뜻 보면 이게 살았나 죽었나 헷갈릴 정도로 성장이 멈추어 있다.
몸의 절반이 부상을 입었으니 중환자인 거다.


시간이 많이 필요할 거다.

마음을 비우고 보살폈다.
다른 식물을 보살피는 건 도움이 되었다.
이런 때 한 친구만 보면서 안달 내기보다 잘 보살펴 주되 적당한 무관심이 필요하다.

그러지 않으면 그 친구의 성장에 집착하게 되고 그럼 나도 솜사탕 고사리에게도 좋을 게 없다.


중환자실의 중환자처럼 보살피던 중

이윽고 1cm도 안 되는 새 순 하나가 빼꼼히 얼굴을 내밀었다.
'아, 심각한 상태는 잘 넘겼구나' 안심이 된다.

가끔 영양제도 주었다. 단 과하지 않게.

빨리 자라게 하려고 과하게 영양제를 주면 그 역시 식물에게 스트레스를 주는 거란다.


그렇게 두 달여의 시간이 흘렀다.

지금 솜사탕 고사리는

편의점에서 파는 미니 솜사탕 정도로 자라 있다.
조그만 새순이 쭉쭉 줄기를 뻗어내고 있고

잎이 반 정도 뜯긴 줄기도 그 모양 그대로 잘 자라고 있다.


겨울에 이 정도의 생명력으로 자라고 있으니

봄에는 초등학교에 입학할 정도로는 커져 있을 듯하다.
죽지 않고 잘 버텨 준 친구가 대견할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