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분갈이

by 이곰

서울 식물원에서 순간 홀려 여섯 개의 식물을 샀다.

플라스틱 포트에 담겨온 친구들인데,

예전 같으면 화분 같은 건 신경도 안 썼을 텐데

이제 초보 식집사라고 플라스틱 포트(이하 플포)가 눈에 거슬린다.


내 눈에만 거슬리면 상관없지만, 아이들에게도 플포는 편해 보이지 않았다.

사람도 주거지가 불안정하면 스트레스가 쌓이듯, 이 친구들도 마찬가지겠지.

특히 핑크레이디의 경우 미니 플포에 담겨 화분 위가 터질 지경이다.

인구포화 상태의 서울특별시를 보는 느낌이었다.

성장이 빠른 편이라 혹시나 하고 봤더니 역시 화분 밑으로 뿌리가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처음 살 때 크리스마스 느낌이 난다고 샀던 호랑가시나무도 플포에 담겨 ‘임시수용소’에 들어가 있었다.

임시수용소는 햇빛은 받지만 관심이 덜 가는 친구들을 모아놓은 장소다.

처음엔 마음에 들었는데 애정이 식어 미안한 친구들이 모여 있는 곳이기도 하다.


가을은 분갈이를 해줄 수 있는 올해 마지막 기회다.

이걸 놓치면 겨울 내내 이 친구들은 갑갑하게 살 것이고, 분갈이를 미루다 죽인 애플민트 꼴이 날 수도 있다. 애플민트는 엄청 빠르게 자라는 허브 종류인데 어느 날 가지가 툭 꺾여 죽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허브 종류는 엄청 잘 자라기 때문에 분갈이를 제때 해 주어야 한단다.


이것저것 찾아보고 여기저기 자료를 읽어가며 첫 분갈이 준비를 했다.

온라인으로 필요한 용품을 주문하고 이틀 후, 주문한 물건이 도착했다.

박스 크기가 심상치 않았다. 웅장했다.

분갈이용 트레이, 관엽식물용 흙 20리터, 배수돌, 토분 10개를 주문했으니 당연했다.


순간 마른침을 꼴깍 삼켰다.

“이걸 내가 잘 해낼 수 있을까? 작은 화분도 아니고 여섯 개나 해야 하는데…

식물 생명이 걸린 건데… 솜사탕 고사리처럼 시름시름 앓다 죽는 건 아니겠지?”

전문가 포스를 가장하며 분갈이용 트레이를 무심한 듯 깔았다.

하지만 심장은 조용히 두근거리고 있었다.


토분을 배열하고 분갈이해야 할 식물을 가져왔다.

설레지만 조금은 엄숙한 마음으로 분갈이를 시작했다.

플포에 있던 식물을 빼는 건 생각보다 쉬웠다.

깔망을 깔고, 식물을 가운데 세우고, 화분을 돌려가며 숟가락으로 흙을 넣었다.

몇 번 바닥으로 살짝 내리치면 공기층이 빠지고 흙이 아래로 자리 잡는다.

그 위에 흙을 더 채워 높이를 맞췄다.

흙을 너무 꽉 누르면 공기층이 사라져 뿌리가 자리 잡지 못한다고 한다.


이런 과정으로 여섯 개의 식물의 분갈이를 끝냈다.

시작할 때의 엄숙함이 머쓱해질 만큼 분갈이는 생각보다 수월했고, 재미도 있었다.


화분을 돌려가며 흙을 담는 과정은

마치 도자기를 만들기 위해 점토를 뱅글뱅글 돌리는 느낌과 비슷했다.

마음이 편안해지고, 생각이 사라졌다.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분갈이를 하며 지금 이 순간을 오롯이 느끼는 나를 바라본다.


그렇게 내 인생 첫 분갈이가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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