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박한 50

by 이곰

초등학생 조카가 뜬금없이 한마디 한다.
“참 애매해”


아이돌 이야기를 한참 하다가 나온 말이라 무슨 소린가 싶어 물었다.
조카 왈,


“고모는 50살이 넘었는데 할머니는 아닌 거 같고

트로트를 좋아할 것 같은데 에스파 노래를 듣고 있고

남자 아이돌 댄스 품평을 나랑 같이 하고 있잖아.”


조카 기준에서 ‘50’이라는 숫자는 노인의 모습이었나 보다.
음악 앱의 ‘50대 여성 인기곡’ 리스트를 보면

실제로 임영웅, 정동원 등 트로트 가수로 노래로 꽉 채워있다.

근데 내가 자주 듣는 곡들은 조카들이 듣는 음악이랑 겹치는 게 많다.


젊었을 때 상상한 나의 50대 역시

우리가 흔히 ‘할머니’라고 부르던 모습이었다.
생산적인 활동은 하지 않고

젊었을 때 모아둔 돈으로 조용히 남은 여생을 보내는 그런 그림.

오지 않을 것 같던 오십이라는 나이가 나에게도 찾아왔는데
상상했던 그것과는 사뭇 다르다.


일단 신체적인 모습이 다르다.
상상했던 것보다는 노화 속도가 느리다.
꾸준한 운동 덕분인지 아직은 건강 상태도 양호하다.


예전엔 세대별 라이프스타일이 딱 정해져 있었다.
20대면 취업, 30대면 결혼·출산, 40대는 집 마련, 50대는 노후 준비…
이렇게 ‘정해진 코스’를 밟아야 정상이고

벗어나면 부족한 사람 취급받는 분위기가 있었다.


근데 지금은 그렇지 않다.
각자의 가치관과 형편에 따라 자기 방식대로 사는 게 전보다는 쉬워졌다.
정해진 틀이 없으니 안정감은 덜하지만, 틀이 없기에 나만의 방식으로 살 수 있다.
내가 선택하고 책임져야 하니 막막하고 불안할 때도 있지만
타인의 시선을 덜 신경 쓰고 내 길을 갈 수 있다는 점에서는 자유롭다.


내가 상상한 50대에는 ‘크로스핏’이라는 운동은 없었다.

근데 크로스핏을 만나고 나서 삶의 많은 부분이 달라졌다.
내 일상을 지탱하는 중요한 축이 됐다.


처음엔 그냥 체력 좀 기르자 정도였는데,
몸이 뭔가를 해낸다는 감각이 생기고
젊은 세대랑 같은 공간에서 땀 흘리는 게 신선했고

‘나이가 들면 새로운 걸 못 만난다’는 생각도 깨졌다.


기존에 살던 방식대로

화석처럼 굳어질 것 같았던 나이였는데 아니었다.
예상 밖의 것들이 들어오고, 취향이 바뀌고

몸과 마음이 다시 확장되는 나이였다.

지금의 50대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는

꽤나 신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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