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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텍사스 부뚜막 Jul 25. 2023

장아찌처럼 삭힌 속마음

인생도 요리도 온도 조절이 필요해?

무더운 여름!

입맛은 없고, 찬거리 걱정은 많고..장아찌 담가 두면 찬밥에 물 말아서 먹으라고 내놓아도 미안한 마음이 덜 할 것 같아 양파, 마늘, 오이 넣고 모듬 장아찌를 담갔다



장아찌 넉넉히 만들어 두고 뿌듯한 마음에 골뱅이 무침과 폭탄 달걀찜 만들어 영원한 남(의)편과 기분 좋게 한 잔 하고 뒷정리해 준다는 남편의 달달한 말만 믿고 먼저 잠자리에 들었다



주말이라 조금 더 자고 싶었지만 아침 7시부터 배 고프다는 딸내미 말에 반쯤만 눈을 뜨고 부뚜막으로 갔다.

......

골뱅이 무침에 넣었던 파는 가닥가닥 접시에 말라 붙어 있다.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불타는 속 마음을 억누르며 누룽지를 만들고 있는데 너무도 아무렇지 않은 목소리로

"잘 잤어? 피곤하다고 하더니.."

"치워준다며!"

"우빈이랑 얘기하다가 그냥 잤네,, 쏴리~"



커져만 가는 그대와 나의 온도차...오늘 아침은 나 혼자 낯선 곳에 서 있는 것 같다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 같아 애궃은 누룽지를 오도독오도독 씹어 삼켰다. 설거지고 뭐고 내팽개치고 친정으로 달려가 속 풀릴 때까지 투덜거리고 싶은데...너무나 멀리 와 있다

미안한 마음이 들었는지 설거지하고 있는 뒤통수에 대고 실없는 농담을 툭툭 건내는 남편..

해장국으로 끓일 북어를 찢으며 '이래서 옛날 어머님들은 북어 한 마리를 몽둥이로 두드리며 마음을 삭힌 게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요즘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마음의 시한폭탄을 품고 사는 것 같다. 쌓인 감정은 묻어 두는 것이 아니라 꺼내서 좋은 건 좋은 대로, 나쁜 건 나쁜 대로 정리해야 나중에 폭발하지 않는다는데...

'남편을 황태처럼 달달 볶으면 마음이 좀 나아질까?'

참기름에 황태를 볶다가 쌀뜨물을 붓고 달걀을 풀어 넣었다. 내 마음도 달걀물처럼 몽글몽글 풀어지길 바라면서...복잡한 속을 찬 물에 말아 아직 익지도 않은 여름 장아찌 하나 얹어 삭혀본다


'인생도 장아찌도 조금은 삭혀야 제 맛일테지..'



폭탄달걀찜 속에 갈아 넣은 시한폭탄 같은 엄마 속마음

https://youtu.be/dBVxJfSDg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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