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초희 Jan 17. 2024

일하는 책

저 청소일 하는데요?(김예지), 경찰관속으로(원도)

유튜브나 블로그, 오픈 백과만 검색하더라도 직업에 대한 정보가 쏟아지는 시대에 중학생들에게 일하는 사람들의 삶을 다룬 책을 권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것은 내가 중학교 1학년 교육과정에 포함되어 있는 '진로독서' 관련 단원을 수업할 때마다 들었던 생각이다. 문학적 감수성을 기르거나 문해력을 높이는 데에는 독서 활동이 필수적이라고 할 수 있지만 진로에 대한 정보를 검색하는 부분에서는 가장 최근의 정보가 쏟아져 나오는 인터넷이 더 효율적이지 않을까 하고 생각한 것이다. 우리는 왜 진로에 대한 책을 중학생에게 읽혀야 할까? 중학교 학생들과 진로 독서 수업을 5년 넘게 진행하면서야 비로소 그 해답을 찾게 되었다.


첫 번째 해답은 도서관에 존재하는 책이라는 사물의 물성에 있다. 진로 독서를 해야 하는 이유가 책이라는 물건 때문이라니 이게 도대체 무슨 소리인가 의아해하는 분들도 계시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그게 맞다. 눈에 보이고 잡을 수 있고, 건넬 수도 있고, 한 권 한 권의 질량과 부피는 미미하지만 그것이 한 데 모여 있는 도서관에서는 작은 정어리가 모여 만든 물고기 떼처럼 거대한 위용을 자랑하는 물.건. 바로 책 때문이다. 인터넷에 존재하는 거대한 데이터의 흐름은 우리에게 그 전체 모습을 보여주는 일이 결코 없다. 인터넷에서 제공되는 정보들은 AI 알고리즘 기술이 발달함에 따라 사용자의 편의와 취향에 맞게 선택적으로 정보를 선별하여 보여준다. 예를 들어 교사가 되고 싶은 학생에게는 교대 진학을 위한 입시 방법이나 변화하는 교육과정에 대한 정보, 교사 브이로그 등 그가 관심 있어할 정보만이 주어져 그 취향이나 욕구를 계속 강화시키는 역할을 한다. 이제 텔레비전도 잘 보지 않는 청소년들은 우연히라도 새로운 취향이나 직업을 만나 꿈꿀 수 없는 환경에 점점 더 빠져들고 있다.


이런 환경 속에서 도서관의 거대한 서가는 낯설고 생경한 다양한 사람들의 삶을 아이들에게 다소 불친절하게 보여준다. 한 명 한 명에게 맞춤한 정보를 주지 않는다는 것이 도서관 진로 독서 수업의 핵심이다. 다양한 직업군의 책을 살펴보고 '이런 직업도 있네?' 만나보는 것. 그렇게 여러 가지 직업의 세계에 발을 담그고 앞으로 펼쳐질 미래를 다양하게 상상해 보게 하는 것. 그것이 아이들에게 진로 독서가 꼭 필요한 이유이다.



두 번째 해답은 책이 제공하는 작가들의 생생한 경험에 있다. 유튜브를 통해 접할 수 있는 영상은 꾸며내는 것이 가능하다. 아름답고 세련되게 생산자들의 선택에 따라 편집된 정제된 세상을 보여준다. 바야흐로 자기 홍보의 시대, 퍼스널 브랜딩의 시대에 날것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정보들은 흔치 않다. 그런데 책은 다르다. 작가가 꾸며내는 내용만으로는 200여 쪽에 달하는 페이지를 다 채워낼 수도 없거니와 호락호락하지 않은 출판 업계에서 뻔한 내용만이 가득 담긴 책을 출간해 줄 리 없다. 실제로 그 직업 세계 안에 들어가 자신의 시간과 정신, 몸을 통해 직접 경험한 이야기가 담긴 책들은 우리가 쉽게 접할 수 없었던 생생한 삶과 성장과 좌절의 기록들을 들려준다.


그 기록들을 통해 아이들은 자신이 알고 있었던 직업의 생경한 얼굴을 마주 보기도 하고 선입견 속에서 바라보았던 직업군에 대해 알아가며 섣부른 판단을 피해야겠다고 다짐하기도 한다. 옆집 아저씨나 친척들, 인사 없이 지나쳐 왔던 아파트 경비 아저씨나 우리 집 앞에 쌓여 있는 택배 박스를 나르는 이름 모를 사람들처럼 내 옆에 실제로 존재하는 사람들의 삶을 이해하고 편견의 그림자를 지운 채 노동에 굳어 있는 사람들의 굽은 어깨와 약간은 비굴한 듯한 시선도 이해하게 된다.


나는 아이들이 세상을 그렇게 알아가기를 바란다.
화려한 포장지 속에 놓여 있는 대상으로서의 직업이 아니라
각 개인이 감당하고 있는 몫으로 직업을 알아가며
개인을 통해 직업이라는 큰 집단의 특성을 알아갔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책과 도서관이라 믿는다.


오늘 소개할 책 두 권은 우리가 쉽게 볼 수 있는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생생한 이야기이다. 우리가 가지고 있었던 편견의 벽을 넘어 실제 일하는 이들의 삶 속으로 아이들을 초대한다.


1. 김예지 '저 청소일 하는데요?'

우리는 마치 마법사라도 있어서 먼지와 쓰레기가 휘리릭 사라지고, 창문은 저절로 뽀득뽀득 닦여지며 각종 병균과 냄새가 아무런 노동 없이 소독되는 세상에 살아가는 듯하다. 하지만 우리가 길을 걷거나 공중 화장실을 들어갈 때, 세련된 인테리어로 꾸며진 카페에 들어갈 때 인상을 찌푸리고 코를 틀어막지 않는 것은 그곳을 보이지 않게 정돈하고 청소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그들이 행동하지 않는 세상을 상상해 보는 것만으로도 아찔해질 정도로 청소하는 사람들은 사회에 필수적이고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그럼에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청소부라는 직업에 선입견과 편견을 가지고 있는지는 굳이 설명할 필요조차 없다.


이 책은 세상이 만든 편견과 스스로가 가지고 있던 편견 모두와 싸우며 27살 때부터 4년째 청소일을 계속하고 있는 김예지 작가님의 책이다. 청소일을 시작하게 된 계기에서부터 사람들의 편견과의 싸움 스스로가 겪었던 자괴감, 그 직업의 경제적이고 정신적인 보람까지 그녀 스스로가 겪은 이야기들을 글과 그림으로 풀어낸다. 솔직하고 꾸밈없으며 술술 읽히는 이 이야기를 아이들은 재미있게 읽어 나간다. 특별하지 않기에 더욱더 몰입하고 공부로 얻은 직업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자신의 생계를 유지해 나가는 '이만하면 행복한' 삶의 방식을 보며 스스로의 삶을 위로하고 때로 안도한다. 한 사람의 경험이 책이라는 매체를 통해 세상에 나와 다른 이들의 뿌리 깊은 선입견을 무너뜨리고 때로 안도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책을 권하는 자의 특권이다.

.

2. 원도 '경찰관속으로'


아이들에게 꿈을 물어보면 열 명 중에 한 명쯤은 경찰관이 되고 싶다는 이야기를 한다. 아이들에게 경찰관은 영웅이 없는 시대의 영웅이자 사회의 질서를 무너뜨리는 악당을 잡아들이는 정의의 사도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근엄하고 인자한 모습으로 그려지는 경찰관들이 실제로 담당하는 일들은 아직도 의도적으로 혹은 관습적으로 많이 감추어져 있다.


'어쩌다, 언니', '농협 본점 앞에서 만나' 등 개성 있고 진솔한 이야기를 써 나가는 원도 작가님이 언니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으로 자신의 직업인 경찰관의 업무와 고충 등을 써 내려간 책이다. 흔히 볼 수 있고 다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경찰관이라는 직업의 속사정은 눈물 없이는 읽을 수 없는 각종 사연들의 총체이다. 이 책을 덮고 나면 경찰관의 이야기이자 우리 이웃의 이야기들을, 무관심 속에서 잊혀져 간 많은 피해자들을 가슴으로 안아주고 싶다.




새해다. 나는 요즘 입학하는 중학교 1학년 아이들의 손을 이끌고 도서관으로 갈 날을 꿈꾼다. 알고리즘의 영향력이 미치지 않는 그곳에서 전혀 본 적 없는 새로운 영감의 원천을 만나 전혀 다른 미래도 꿈꿔 볼 수 있도록 책과 도서관이라는 열린 공간으로 그들을 데려갈 갈 날을 꿈꾼다.


이전 10화 국어 교사 엄마는 어떤 책을 읽힐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