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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조 Jul 02. 2024

불안이 다시 꽃피는 어느 날

1일 차


백수의 첫 시작이 월요일이라 그나마 위안을 느끼며 하루를 시작했다. 출근해야 하는 날이라면 어림도 없을 시간, 아침 8시가 다되어서야 일어났으니 말이다. 그것도 아주 겨우 겨우


그러면서 그동안 아침, 특히 일주일의 첫 시작이며 전날 빨리 잤음에도 가장 피곤한 월요일 새벽부터 일찍 일어나 부지런히 어떻게 몸을 움직였을까? 하는 앙큼한 마음마저 들던 아침. 아이들만 부지런히 준비시켜 등굣길에 나섰다.


아이들과 함께 하는 등교는 참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었는데 참 별거인 순간이었던 것이다. 내 눈으로 교문을 통과하는 것을 직접 보는 것과 잘 등교했다고 전해 듣는 것과는 아주 다른 감정이란 걸 알게 되었으니 말이다.


앞만 보며 걸어가던 아이들이 갑자기 뭔가가 생각난 듯 동시에 뒤를 휙 돌아 기분 좋은 얼굴로 나를 바라보며 손을 쫙 펼쳐 손바닥을 보이며 휘적휘적 흔들어주고 할 일 다 했다는 듯가벼운 발걸음으로 걸어가는 아이들의 뒷모습에 쫄랑쫄랑 달린 책가방을 한눈에 보고 있노라면 아닌 걸 스스로가 뻔히 알고 있음에도 그때만큼은 되게 여유 있는 엄마, 거기다 되게 인자한 엄마가 된 듯한 착각이 들었는데 그것마저 좋게 느껴지는 순간이다


작은 미소를 머금고  다시 집으로 돌아온다.

원래 아침에 만나 친밀한 관계를 나눌 엄마들도 없기에 차 한잔의 여유는 등굣길에 무사히 애들을 데려다주고 집으로 돌아오며 테이크아웃해 온 커피로 대신한다.


집이 엉망이어도 괜찮다는 마음이 드는 건 이때뿐. 여유롭게 치울 수 있으니 더러운 꼴을 보지 못하지만 그럼에도 괜찮다. 나를 응원해 주는 듯한 느낌의 시원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한 모금 쭉 빨아 마시고 사부작 살짝 움직이고 또 쭉 빨아 마시고 마시고의 반복.


순간, 매일 아침 출근길에도 사들고 출근해서 이렇게 홀짝홀짝 마셨던 상황이 딱, 떠올라 약간은 서러워졌다.


‘나는 이제 출근할 직장이 없구나’

‘나는 이제 쉬고 다시 돌아갈 곳이 없구나’

드는 이런 생각들로 인해-


어딘가 내가 갈 곳이 있다는 게 참 감사하다는 건 진작에 알고 있었고 이렇게 갈 곳이 사라지면 허한 마음이 드는 것도

이미  알고 있었는데, 이런 알고 있음의 감정은 언제 겪어도 나아지기는커녕 더욱 큰 공허함으로 다가오는 건 왜일까?


그래서 오늘 하루를 더욱 스스로를 못살게 굴었다

일을 하지 않고 있다고  해서 시간을, 순간을 별 의미 없게 보내기가 싫었다. 그건 나약한 존재라고 나 스스로를 인정하는 거 같아서 말이다. 그래서 더욱 빠릿 움직이며 걷고, 또 걷고 청소기를 돌리고 또 돌리며 일을 하지 않아도 나는 영향력 있게 돌아가고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그 보임이 처음엔 남편에게 그리고 나를 지켜보는 주변 사람들에게 드러내고 싶었던 거라고 생각하며 하루를 보내던 중

오후가 되고 저녁이 되고 난 순간에야 그 보임은 나 스스로에게 보이고 싶었던 것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이미 마음에 불안함의 감정이 쫙 깔려 있다고  생각하는 나에게 그렇지만 잘하고 있다고 느끼게 하고 싶었던 것이었을까

아직 하루인데. 이제 고작 하루인데?라고 생각할 수 없는 나는 조금의 여유도 가지지 못한 채 불안함의 감정에 휘청이고 있던 것이다


이렇게 지내다 내가 취직을 못하면 어쩌나 하는 그 불안감-

취직을 하더라도 잘 적응하지 못하는 내 모습을 다시 대면하게 되면 어쩌나, 그럼 정말 주변에서 어떻게 생각하고 받아들일까 불안하고 불안하다.


왜 이렇게 스스로를 믿지 못하고 불안함으로 가득 차 있는 걸까 자신감의 부족인가… 생각하다 안 좋았던 기억이 떠올랐다. 최근 소아과에서 일하기 직전 동네에 있는 안과에서 일을 했었다. 남자의사였는데 정신적으로 너무 고통스럽게 하는 것이다.


거기다 2년 차 조무사까지 심적으로 압박하는데 매일 그만둘 거라며 다짐하며 갔지만 그 말조차 꺼내지 못하고 억지로 버티며 힘들게 지내던 중 코로나19가 터졌고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것이 이유가 되어 자연스럽게 그만두게 되었다.


너무 고통스러워서 잘 그만뒀다고 생각하고 싶었고 마음이 편해질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막상 내 마음은 그 마음이 아니었다. 주변에는 의지력 없고 힘듦을 견디지 못하는 나약한 존재로 보이는 거 같다는 생각이 나를 휩쓸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최근 소아과에서 일할 때는 무조건 버티고 싶었고 2년 넘게 잘 버텨냈고 그 안에서 조금은 자신감을 찾아가던 중 병원 폐업으로 다시 실직자가 되었고 나는 다시 또 직장을 구하고 여러 도전을 해야 하기에 불안의 감정이 부담으로 다가온 것이다. 그때에 안 좋은 기억이 다시 피어올랐기에-


그래서 백수 1일 차가 된 오늘, 계속 머릿속을 비우려고 노력했다. 어디서부터 내려오는지 알 수 없는 불안감 속에서 헤쳐나가고자 끊임없이 쏟아지는 질문에서 벗어나고자 생각의 전환을 필요해서 노력했고 괜찮다고 다독이며 아무렇지 않은 척 보이려고 애쓴 그런 하루였다.


내일이 된다고 이 마음에서 크게 벗어나진 않겠지만 그렇지만 나는 조금 더 다른 방향으로 생각의 전환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스스로에게, 하루 더 나아가는 시간에 작지만 간절한 희망의 끈을 매어본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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