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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조 Jul 16. 2024

다녀왔습니다!

퇴사가 얼마 안 남았다는 걸 직감한 순간부터 남편과 나눴던 이야기가 있었다. 우리도? 여행 한번 다녀와야 하는 거 아니냐고 말이다.


토요일에도 출근해야 했기에 주말에 놀러 가는 건 무리였다. 그나마 휴가 때만 짧게 여행을 다녀올 수 있었는데, 일 년에 한 번 가는 여행과 달에 한번 가는 여행의 느낌은 천지차이.


더군다나 이번엔 휴가때와도 다르게 시간의 여유가 있었기에 조급하지 않아 마음 편하게 가지고 드디어 아이들이 그렇게 노래, 노래 불렀던 비행기를 타고 제주도에 다녀왔다.

나도, 남편도 몇십 년 만의 제주도였고 아이들에게는 첫 비행이고 첫 제주도였다.


날짜가 정해진 순간부터 아이들은 벌써 제주도를 몇 번이고 다녀온 듯 입만 열면 제주도였고 비행기였다.

여행 가는 날만 기다리며 생각만 해도 설렌다고 말하던 아이들을 보며 나 또한 기대감과 설렘을 가지고 준비하고 있었다.


비행기 다음으로 아이들이 말했던 건 수영이었다. 꼭 수영을 하고 싶다며 수영 많이 할 수 있는 곳으로 가자고 말이다.

그 기대에 부흥하기 위해 우린 수영장이 있는 호텔을 찾기 시작했고 그랬기에 비싸지만 과감히 ‘신라호텔’로 예약을 잡았다.


짐 싸는 건 내 스타일이 아니라 가기 전까지 최대한 미루고 미뤄 전날 드디어 짐 싸기를 완료했다.

전날 아침, “오늘만 버티면 내일 비행기 타고 논다”라고 인내하며 등교하는 아들을 보며 웃기기도 슬프기도 했고 짐을 싸야 하는 동기유발도 되었다


그래서 나는 더욱 완벽하게 놀고 싶어졌다. 아들의 그 애잔한 마음을 보상해주고 싶었으니 말이다.


혹시 못 일어날까 봐 시간대별로 단단히 준비하며 알람을 맞췄는데 당일 아침, 첫 번째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모두가 일어난 것이다.


비행기 시간이 오전 10시 30분이라 이른 새벽부터 무리하지 않아도 됐었는데 새벽 6시도 되기 전에 가족 모두의 눈은 떠졌고 그 누구도 힘들어하는 기색 없이 침대에서 벗어나 씻고 준비를 금방 마쳤다.


준비도 다 끝냈고 서로 말은 안 했지만 아이들만큼이나 우리 부부도 신난 마음이 무언가의 벅참으로 피어올라 남은 시간까지 집에 있기는 힘들 거 같아 생각보다 이른 시간에 ‘김포공항’행 택시를 불렀고 빠르게 집 안에 끄고, 빼고 가야 하는 전기 코드며 가스밸브며 확인해야 할 것들을 확인한 뒤 설레는 마음으로 택시를 탔다.


집에서 김포공항 가기까지 1시간 넘게 걸리는데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마냥 신나 하던 아이들의 모습은 사라져 갔고

지친감을 내비치기도 했지만 ‘비행기’ 탄다며 신나 하는 아이들에겐 그 정도는 버틸만한 순간이었다.


일은 공항에서부터였다. 공항에 도착하면 바로 ‘비행기’를 타는 줄 알았던 아이들은 기다림 속에서 점점 지쳐갔다.

공항 카페에서 아이스크림도 사주고 이리저리 구경하며 시간도 끌어봤지만 아이들의 징징거림은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그럴수록 한껏 올라간 나의 목소리 데시벨도 멈추지 않았고  엎친데 덮친 격으로 비행기 시간마저 계속 연착되고 있었다.

결국 우린, 비행기를 아직 타지도 않았는데 모두 지쳐있는 상태가 되어버렸다


모두 저기압이었지만 드디어 그토록 기다려온 비행기를 탑승하는 순간엔 모두 설레하는 모습으로 바뀌었고 웃으며 올라탈 수 있었다.


비즈니스석까지는 아니어도 꼭 아이들에게 창문으로 땅과 하늘, 구름을 꼭 보여주고 싶었기에 창가 쪽으로 자리를 미리 잡아놨다. 추가비용은 더 들어갔지만 아이들의 얼굴을 보니 그 돈은 몇 번이라도 더 쓸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비행기에 앉은 것만으로도 떨려하던 아이들.

이륙하는 동시에 아이들의 얼굴은 입을 떡 벌리며 아주 크게 미소 짓고 있었다. 두 눈은 긴장한 듯 동 그렇게 뜨고 있었지만 그 까만 눈동자 속에서 찬란하게 비추는 빛들이 나와 남편에겐 모든 순간들이 위로가 되어 돌아왔다.


그 찰나에 모습을 놓치고 싶지 않아 얼른 카메라를 켜서 찰칵찰칵. 몇 번이고 찍어댔다. 아무래도 사진이 그 실제 모습만큼 담지 못하는 거 같아 아쉬웠다가도 이렇게 일주일도 훨씬 지난 지금까지도 그 모습이 생생하게 떠오르며 기억되는 거 보니 오랫동안 쉽게 잊지는 못할 듯하다.


생각보다 빨리 제주도에 도착했고 서울과의 날씨와는 다르게 비가 주룩주룩 내리고 있었다. 하지만 날씨가 우울하게 처진다 하여도  우리는 절대 가라앉을 수 없었다.


공항에서 바로 택시를 잡아타고 ‘갈치’를 먹으러 갔다.

우리가 아주 신중하게 따지고 찾고 했던 거에 비하면 엄청난 맛집은 아니었지만, 끝엔 맛있게 잘 먹었다 생각이 들었으니 그걸로 만족했고 그곳에서 다시 택시를 잡아타고 신라호텔로 들어갔다. 시간이 딱 잘 맞아떨어져 우린 체크인을 하자마자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수영장으로 향했다.


비가 내려도 실내 수영장이 있으니 아무 문제없었다. 거기 다평일, 수요일이라는 애매한 날짜와 요일 덕에 사람들로 북적이지 않아 너무 한적하고 유유히 즐길 수 있었다


그 상황에서 내가 가장 놀랐던 건 아이들의 수영하는 모습이었는데 딸아이야 뭐,, 워낙 겁도 없고 물을 좋아하는 걸 알고 있었던 일인데 세상에나, 내가 너무 놀란 부분은 아들이 수영을 즐기는 모습이었다


그것도 전혀 무서워하지 않고 구명조끼를 딱 입더니만 튜브 따윈 거들떠보지도 않고 물이 목까지 올라와도 놀라지 않던 그 모습이 나에겐 신세계였다.


물을 무서워하고 겁내하던 아들은 매번 즐기지 못하고 십 분 정도 놀곤 그만 놀자고 가자고 했었는데 이렇게 물속에서 재미있게 놀다니 감격스럽기까지 했다.

그러니 이번에는 2시간이 지났음에도 더 놀자며 나갈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다. 너무 신기하고 너무 기특하고 정말 많이 컸구나 싶어 대견했다.


우리가 있는 삼일동안 제주도는 비가 내렸다. 장마인 거 알면서도 갔고 어차피 우린 호텔에서 보낼 것이란 걸 계획하고 갔음에도 우리가 돌아오는 아침, 쨍쨍 내리쬐는 햇볕 날씨가 조금은 야속하기도 했다.


그렇게 우린 조금의 아쉬움을 남기고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예전에는 여행의 즐거움을 느끼지 못했다. 가면 돈만 쓰고 짐 싸야 하고 짐 풀러야 하고 잠자리도 편치 않고 모든 상황이 불편함으로 다가오기만 했는데 한 번 두 번 여행을 다니면서 점차 알게 되었다. 여행의 순간들이 현실을 살아가게 하는 힘이어 마어마하다는 것을 말이다.


이번주 아이들의 방학이 시작된다.

과연 내가 얼마동안 집에서 아이들을 케어할 수 있게 될지는 모르지만 아이들과 함께 지내는 첫 방학이라 조금 기대되기도 한다.


물론, 많은 시간 붙어있어야 한다는 것에 벌써 걱정이기도 하고 매번 멀리는 못 가겠지만 이번에는 아이들과 많은 경험을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생겨났다. 여행하면서-


이번 여행은 많은 것들을 경험해 볼 수 있는 순간들이 지속되어서 그랬는지 내 마음에서도 많은 울렁임이 지속되었다

아이들 또한 이 감정을 느끼면 좋겠다는 소망이 생겨났다.

이렇게 경험하면서 생각하면서 또 다른 생각을 할 수 있는 힘을 가지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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