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정직한 몸뚱이

[30] 시작

by 은조

어쩜 이 몸뚱이는 이렇게나 정확하고 정직한지.


이런 정직함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돌아보면 사실 중학교 때부터 시작된 것이었는데.... 그땐 몰랐지만 서서히 흐르면서 이젠 알게 되었다.


여자에게 규칙적으로 생리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인 거 같지만 경험해 본 사람으로서 사실은 호르몬의 문제이므로 아주 어려운 일이라 생각한다.


얼마나 집안에서 스트레스를 받았는지 어린 나이지만 나는 그때부터 불규칙한 흐름으로 흘러갔고 어느 순간 생리를 하는 것을 횟수로 적어놔야 할 만큼 너무나도 불규칙하게 변해갔다.


점점 이러다 임신을 하지 못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그 모든 것이 당연하다 여기며 살아가던 중 정말 신기하면서도 어이없이 스무 살이 되고 힘들었던 집에서 독립하면서 횟수가 잦아지더니 당연하듯 규칙적으로 하게 된 것이다.


그 과정에서 내가 얼마나 극심한 고통과 스트레스를 받았는지 그러지 말고자 머리로는 굳건히 버티며 산다고 살았지만 이 정직한 몸뚱이를 속일 수는 없었나 보다.


그러나 최근 다시 몸뚱이가 반응을 이상하게 하기 시작했다한달에 한 번 똑같은 날짜에 하던 규칙적임이 사라졌고 머리에선 흰머리가 하나, 두 개 나더니 방심하던 순간 머리카락을 조금 들추면 또 있고 조금 더 넘기니 한가득 쌓은 현상을 맞닥뜨려야 했다.


원래부터 집안 유전이 흰머리가 빨리 난다고는 들었지만

내 나이 32살에 새치염색을 해야 하는 순간을 맞이할 거라고는 상상하지 않았기에 꽤 적지 않게 충격을 받았다.


이렇게 몸이 변한 것은 절대적으로 이유가 있었고 그 이유를 스스로가 아주 잘 알고 있었기에 더 이상 물러설 수 없이 그 이유를 제거하고자 마음을 다져야 했다.


이상하게 떨리는 두근거림을 부여잡고 나는 말했다.

- 그만두겠습니다


이제 3개월 일을 한 상태라 수많은 생각을 해야 했다.

혹시 내가 회피하는 것은 아닌지 의지가 나약한 건 아닌지

참고 다녀야 하는 것일까 죽이 되고 밥이 돼도 버티는 것이

맞는 걸까?! 너무 죽이고 너무 밥인데?!


끊임없이 고민해도 뚜렷한 답은 나머지 않았지만 마음에서 확실히 반응한 건 여긴 아니라는 것.


조금씩 밀리던 규칙적의 텀이 길어져만 갔는데 정말 신기하게도 그 말을 뱉어놓고 조금씩 마음이 편해지는 것을 느끼던 그때 호르몬의 작용이 원활히 시작됐음을 느낄 수 있었다.


남편이 말한다. 이제야 원래 모습으로 돌아왔다고-


내가 어땠는데? 물으니 그렇게 부정적일 수가 없고 매일매일아침에 나갈 때면 너무 고통스러워 보였다면서 확실히 지금 얼굴이 편해 보이는 게 다시 살아났다고 한다.


그 말을 부정할 수 없었다. 이렇게 정직한 몸뚱이가 느끼게 해 주는데 어찌 잡아뗄 수 있을까?! 늘어난 흰머리가 사라지진 않겠지만 어둡게 검은색으로 염색하면 한동안은 깜쪽같이 사라지게 할 수 있을 것이다.


암흙처럼 어둡기만 했던 마음만을 느껴야 했던 이곳에서 답을 얻으려던 마음에 다시 배경을 새롭게 칠한 뒤 나의 새로운 하루를 새롭게 그려나갈 것을 희망과 설렘 속 꿈꾸기로 했다.


새롭게 다시 시작해야 하는 일상이, 하루가 두렵지만은 않다

그걸로 나는 배우며 성장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으니-

keyword
월, 금 연재
이전 29화학교에서 생긴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