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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 생긴 일

[29] 한 방향

by 은조

다시 한번 평범한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느꼈던 하루.


평일 중 수요일은 나에게 엄청난 매력적인 요일이다.

토요일도 출근하기에 평일 하루 쉬는 수요일, 그 하루 쉬는 것이 나에겐 아주 달콤할 수밖에 없는데..


문제는, 그 하루가 너무 소중하면서도 벅차다는 것이다.

안 그러고 싶지만 평일에 못했던 집안일, 특히 반찬과 냉장고정리 등 다 해치워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지 못해 때론 버겁다고 느끼면서도 꾸역꾸역 다 해내고 마는 것이다.

그래야 스스로에게 그 하루를 잘 살아냈다고 말할 수 있으니 말이다.


근데 이번 쉬는 날에는 침대에 누워있고 싶은 욕구가 너무나도 강하게 치밀어 오르길래 흐름에 맞춰 냅다 몸을 눕혔고,

조금만 조금만 쉬자라고 생각할수록 몸은 더 딱 달라붙어

일어날 수 있는 힘을 막는듯했다.


그 붙은 몸을 일으킨 건 다른 것도 아닌 배고픔이었다.

꼬르륵 울려대는 배를 부여잡고 일어나 요즘 꽂힌 김치만두를 찌며 그 타이밍에 맞춰 나머지 집안일들을 사부작, 사부작 마무리를 지을 수 있었다


만두와 친정 엄마표 겉절이에 돌돌 싸 먹다 보니 커다랗게 울려대던 꼬르륵 소리가 언제 났냐는 듯 배고픔이 싹 가시 고나니 하교하는 딸아이를 데리러 가야 하는 생각이 번쩍!


귀찮다고 생각할 틈 없이 부랴부랴 씻었고 다행히 늦지 않게 딸아이를 만날 수 있었다. 학원 가기 전 편의점에 들러 달콤한 마음으로 공부할 수 있도록 입에 넣으면 사르륵 녹는 캐러멜을 사주고 학원으로 보낸 뒤 모처럼 저녁, 맛있는 거 해주고자 장을 보라 마트를 향하던 중 학교 컴퓨터 방과 후 선생님에게 문자가 왔다.


원래라면 짧게 ‘학생이 입실했습니다’라고 찍혀올 문자가

아들이 아직 컴퓨터 교실에 오지 않았다는 소식의 긴 문자가 왔고 이미 학교는 끝날 시간이기에 전화를 해보았지만 전원이 꺼져있다는 음성만이 흘러나오는데......

순간 교실에 남았나?라는 생각과 함께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조금 뒤 방과 후 컴퓨터 교실에 왔다는 문자를 받았고, 안심하려던 찰나, 아들의 담임 선생님으로부터 문자가 왔다.

하교 전 친구와 부딪힘이 있었고 서로 의견이 달라 내용을 글로 적었다며 집에 가져갔으니 이야기해 보라는 식의 내용-


초조했던 마음은 더욱 초조해졌고 무슨 부딪힘이었을까 어떤 상황이었을까 걱정과 많은 생각이 겹치면서 마음이 복잡해졌다. 다행히 방과 후 끝난 아들과 학원 가기 전 만날 수 있었고 아들은 나를 보자마자 종이를 건넸는데 예상과는 달리 그 종이는 아들이 쓴 것이 아닌 상대편 아이가 쓴 것이었다.


아들 얼굴도 보고 내용도 짧게 듣고 그 종이를 받으니 걱정스럽기만 했던 마음은 조금 나아졌지만 이런 일이 있어난다는 것이 너무 싫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살아가면서 아무하고도 부딪히지 않을 수 없다는 현실적인 생각도 함께 들어 잘 해결하는 법을 알려주는 것이 현명한 것이니 그렇게 알려주고자 마음을 다잡았다.


학원이 끝나고 집에 온 아들에게 오랜만에 든든한 전복 잔뜩 넣은 닭다리 삼계탕을 차려 주면서 이런저런 말을 해주었는데 나의 이야기를 쭉 들은 아들은 살짝 놀라며 엄마가 화낼 줄 알았다고 그러는 것이다. 순간 내가 아들에게 너무 잔소리를 많이 했구나 하는 마음에 머쓱해지기도 했지만 아들이 마음을 잘 열고 듣고 있구나, 진심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에 감사했다.


자주가 아닌 어쩌다 있을까 말까 한 학교에서의 문제들.

그럼에도 학교에서 일어나는 일에는 많은 신경이 쓰이고 예민하게 생각하게 되는 건 어쩔 수 없는 거 같다.


그 일이 있고 다음날 아들이 사과하고 서로 찝찝함 없이 잘 마무리 됐다는 아들 말에 잘됐네 하면서도 그 상대방 애도 미안하다고 했어?라고 물어보는 못난 엄마. 못났다, 못났어


그래도 이럴 때 같이 위로해 주고 같이 욕할 수 있는 나와 같은 마음으로 아들을 사랑하는 남편이 있어 오히려 나의 마음에 있던 찝찝함이 자연스레 소화되는 느낌을 받았고, 이런 게 얼마나 큰 행복일까? 생각하는 순간이았다.


한 마음으로 자식을 진심으로 생각하고 사랑하며 한 방향을 가진 울타리에서 함께 살아가는 이 현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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