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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의 진담

[28] 취중

by 은조

앉아서 꾸벅꾸벅 졸고 있다는 걸 스스로가 느낄 만큼 무거워진 눈꺼풀을 이겨내지 못한 채 푹 잠에 들었는데, 아침까지 달콤할듯했던 무거운 잠기운은 금세 다 사라져 버리고 뒤척 뒤 척이며 다시 현실로 돌아와 눈만 감고 있게 되었다.


이럴 때 나름 노하우가 생겨 빈틈을 노리는 잡생각들의 물꼬리를 트면 아침까지 생각에 생각으로 잠을 설친다는 걸 알아 아무런 생각하지 않으려는 생각 하며 자야지, 자야지 되뇌고 있던 그때, 현관문에서 비밀번호를 누르는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그 번호 하나하나 눌리는 소리를 듣고 있으니 애써 감고 있던 눈이 떠졌지만 바로 쳐다보지 않고 등을 돌린 채 남편이 들어오는 소리에 집중하며 잠자코 누워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온 남편은 역시나 내가 비밀번호 누르는 속도감과 평소와는 다른 리듬감으로 이미 예상했듯 술을 힘껏 마시고 왔고 내가 자는 줄 아는 남편은 곧장 샤워를 시작하는데 어쩜 술 먹고 씻을 때는 물소리도 흐름도 다르게 들리는지 참 신기했다


남편이 씻는 사이, 잠이 들어 확인하지 못한 문자를 확인해 보니 역시나 한잔 잡수시고 온다는 남편의 메시지가 남아있었고 화까지는 아니지만 많이 마신 것에 대한 작은 짜증이 올라올 때쯤 다 씻은 남편이 방으로 들어와 평소처럼 침대에 누웠다.


핸드폰 화면을 이리저리 만지니 뿜어져 나오는 빛 속으로 자는 줄 알았던 눈을 뜨고 있는 나를 발견한 남편은 놀랐지만 놀라지 않은 척 안 자고 있었냐며 말을 걸기 시작했다.


졸리니까 자라고 퉁명스럽게 대답하곤 다시 눈을 감았는데

보고 있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 어느 때보다도 따뜻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며 말하고 있을 남편의 모습을


- 당신 요즘 마음이 힘드니 내 마음도 너무 힘들어

- 당신 힘든 거 보니 너무 안쓰러워


작은 떨림 속 어두운 공간에서 울려 퍼지는 남편의 위로가

정말 진심으로 느껴지며 내 마음까지 시릴정도로 나로 인해 아픔을 느끼고 있을 남편에게 너무 미안하면서 나를 이토록 진심으로 생각해 주는 사람은 남편뿐이라는 것을 마음속 다시 한번 새겨 넣는 계기가 되었다


다음 날 아침, 본인이 무슨 말을 했는지 아는지 모르는지

술 많이 안 마셨다며 말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어대는 남편을 보며 헛기침이 나왔지만 취중진담, 그 어느 때보다 가장 진심이 담겨있음이 너와 나, 마음과 마음이 통했으니 봐준다.

많이 마셨지만 안 마신 걸로 기꺼이 넘어가 주겠어-

상당히 과음이었지만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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