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아르코 선정작 단편소설 1
안나가 하룻밤 숙소로 앤하우스를 택한 건 안마의자 때문이었다. 롯데타워를 배경으로 놓인 안마의자. 저기에 앉으면 어떤 느낌일까? 언니도 좋아할 거야, 요즘 피곤하고 여기저기 아프다고 했는데. 안나는 중얼거렸다. 오랜만에 언니랑 수다도 실컷 떨고, 선율이와 지호는 편안하게 놀고. 다음날 일찍 일어나 롯데월드에 가서 레이저쇼 할 때까지 신나게 놀아야지.
롯데월드 가까이 있는 에어비앤비 숙소는 차고도 넘쳤다. 화면으로 보는 집은 하나같이 넓고 안락해 보였고 모두 롯데월드와 도보로 5분에서 10분 거리라는 점을 강조했다. 안나는 며칠 동안이나 에어비앤비 사이트를 둘러보며 정확한 주소도 없이 몇 장의 집 안 사진으로만 골라야 하는 숙소를 사람들은 대체 어떤 기준으로 선택하는 걸까 생각했다.
사이트 속 사진과 실제가 다르다는 건 물론 알고 있었다. 안나는 전에도 에어비앤비로 숙소를 구했다. 남편을 따라 지방으로 이사 간 대학 때 친구와 하룻밤 묵기 위한 집이었다. 안나는 마티스 액자를 배경으로 커다란 앤틱 샹들리에가 반짝이는 테이블 사진을 보고 그 집을 선택했다. 마포역에서 도보로 5분 거리라고 소개된 그 집은 역에서 20분이 넘게 언덕을 올라야 있는 허름한 다세대 주택이었다. 계단에 알록달록한 사채 명함이 마구 뿌려져 있어 친구에게 민망했다. 집 안은 사진처럼 근사할거라고 생각했지만 좁은 거실 가운데 놓인 테이블은 삐걱거렸고 천장에 걸쇠로 고정된 샹들리에는 금방이라도 떨어질 것처럼 위태했다. 결국 둘은 바닥에 신문지를 깔고 족발과 소주를 마셨다. 대학 때를 추억하며 마치 그 시간으로 돌아간 것 같은 안주와 술, 이야기는 즐거웠지만 안나가 바라던 느낌은 아니었다.
그래도 여긴 달라 보였다. 롯데타워뷰와 안마의자가 있는 거실. 이상하면 어때, 하룻밤만 자는 건데 괜찮지? 안나는 혼잣말하며 기분 좋게 몸을 감싸올 안마의자의 진동을 생각했다.
오늘 아침 서울의 기온은 영하 11도입니다. 체감온도는 14도로 매우 춥습니다.
출발 전 아침 뉴스에서 본 사람들은 두꺼운 패딩에 목도리를 친친 두르고 눈만 내놓은 채 종종걸음으로 걸어갔다. 마치 남의 옷 같은 벙벙한 검은 패딩을 입은 기상캐스터는 모자를 반만 쓴 채 입김을 뿜어내며 엄청난 추위를 설명했다. 패딩 아래로 드러난 살색 다리와 네모난 큐빅 장식이 박힌 흰 구두가 애처롭게 느껴졌다.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스튜디오 대신 밖으로 나온 것 같았다. 안에는 예쁘게 입었을 텐데 속상하겠다, 그나저나 뭘 입지? 전날 입으려고 생각해 둔 옷은 너무 추울 것 같았다. 안나는 간만의 서울 나들이를 위해 옷차림에 신경을 썼다. 자라에서 지난가을 세일에 산 잔잔한 플로럴 패턴의 맥시 원피스에 굵은 짜임의 브라운 니트와 오버사이즈 코트를 입으려고 했다. 출산 후 점점 불어나는 살을 커버하면서도 안나의 입장에서 촌스럽지 않은 차림이었다.
‘꾸안꾸’, 안나는 요즘 꾸민 듯 안 꾸민 듯한 이른바 ‘무심 시크’를 추구하는 중이었다. 점점 나이를 먹으며 ‘꾸안꾸’는 관리된 군살 없는 몸매와 좋은 피부, 고급 소재에 기본 디자인으로 잘 만든 비싼 옷으로 완성된다는 걸 깨달았다. 안나는 결국 ‘귀티’가 아닐까 생각했다. 돈이 많아 보인다는 부티보다 ‘본 투 더 노블’인 귀티. 귀티는 여초카페에서도 인기 주제였다.
-압구정 현백에서 귀티 나는 할머니 봤어요. 저도 그렇게 늙고 싶네요. 꼿꼿한 자세랑 머리숱, 피부가 중요한 거 같아요. 그분은 백발인데도 풍성해서 진짜 너무 부러웠네요.
늘 이런 글의 댓글은 반반으로 갈렸다.
-귀티 부티 찾는 거 쉰내 나고 천박함.
-다들 그렇게 보이고 싶지 않나요? 뭐가 천박하죠?
-귀티 부티 찾는 거 손에 물 한 방울 안 튀기고 사는 것처럼 보이고 싶다는 거 아닌가요? 그렇게 보이고 싶으면 그렇게 태어났거나 돈이 많으면 되겠네요. 그렇지도 않으면서 귀티 부티는 왜 찾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