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아르코 선정작 단편소설 4
안나는 두리번거리며 5번 출구를 찾다가 화장품 로드샵 아르바이트생에게 물었고 그녀의 익숙하다는 듯 맥없는 손으로 가리킨 방향을 따라 나왔다. 밖엔 강한 바람이 불고 있었다. 안나는 아이의 파카를 다시 여미고 모자를 씌웠다. 고작 출구를 나온 것뿐인데도 온 기운이 다 빠졌다. 막막한 기분으로 앤하우스가 있다는 잠실나루역 방향을 찾았지만 도통 알 수 없었다. 길 건너편으로 길쭉이 솟은 유선형의 롯데월드타워가 보였다. 주변 건물 사이에서 삐쭉 솟아올라 번쩍거리는 모습은 어쩐지 어색했다. 마치 아파트 조감도에서 방금 튀어나온 듯한 모습이랄까. 남편은 지난 명절 가평 시댁에 갈 때 멀리 보이는 롯데타워를 가리키며 외국인 유명 건축가가 동양의 붓에서 영감을 얻어 설계한 건물이라고 말했다. 붓? 고등어 아니야? 유명한 사람이 설계 안 했으면 욕먹었을거 같은데. 안나는 쾌활하게 말했고 남편은 별 대꾸않고 운전을 계속했다.
걸어서 10분 거리라는 말을 기억해 내고 안나는 지도 앱을 켜 앤하우스 주소를 입력했다. 트레센빌 아파트 307동. 곧 도보 경로와 함께 걸어서 20분이라고 떴다. 10분이라고 했는데 웬 20분? 안나는 지도 앱을 보며 가야 할 길을 가늠했지만 도통 감이 오지 않았다. 자신의 위치를 표시하는 파란색 동그란 점이 깜박거렸다. 어느 방향일까 아이의 손을 잡고 몸을 돌릴 때마다 파란색 동그라미도 반짝이며 방향을 바꿨다.
안나는 심한 길치였다. 눈치는 사회생활을 하며 늘었지만 타고난 방향감각은 어쩔 수가 없었다. 어렸을 때는 자신에게 방향감각이 없다는 걸 알 길이 없었다. 시골은 정해진 길로만 다니면 됐다. 학교와 집을 걸어서 오가는 길은 하나였고 산을 오르지 않는 한 길을 잃어버릴 일이 없었다.
서울에 있는 대학에 오고 나서야 방향감각이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지하철의 노선 방향을 헷갈려 반대편으로 가길 일쑤였고 학교 앞 식당이나 술집 같은 다른 친구들은 잘만 찾아다니는 길을 잘 몰라서 늘 헤매고 다녔다. 그 길이 익숙해질 때쯤 학교를 졸업했다. 광화문에 있던 회사로 가는 길도 복잡하긴 마찬가지였다. 골목골목이 익숙해질 무렵 남편을 만나 결혼했고 아이를 낳고 회사를 관뒀다. 지금 사는 도시는 집값이 안 오른다는 것만 빼고 쾌적하고 살기 좋았다. 남편은 서울에서 신혼을 시작하지 않은 것, 집을 사지 않은 걸 후회했다.
그때 우리도 1억만 더 대출받아서 서울에 집사는건데. 은형 선배네 방배 구축 그때 3억짜리 지금은 재건축해서 30억이래. 안나는 그럴 때마다 남편이 자신의 탓을 할까 봐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안나는 서울이 싫었다. 어딘가에도 정을 붙일만한 구석이 없었다. 자신의 선택이 후회될 때면 지금 사는 도시의 장점을 꼽아보았다. 공기가 좋다, 집 앞에 건물이 없어 전망이 좋다, 새가 많다, 딱히 더 보태지는 건 없었지만 안나는 자신에게 늘 지금 동네가 좋다는 최면을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