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아르코 선정작 단편소설 2
안나는 뭐라 설명할 수 없지만 그 글이 천박하다는 것엔 동의했고, 자신이 귀티 있어 보이고 싶어 한다는 욕망도 인정했다.
안나는 구스 패딩과 홈쇼핑에서 산 기모 바지를 입을까 고민하다가 원피스에 코트를 입었다. 춥더라도 예쁘게 보이고 싶었다. 아이는 기모가 들어간 목폴라에 패딩 바지와 파카를 입혔다. 제일 추울 때만 입는 옷이었다.
패딩바지는 못생겨서 싫은데.
일곱 살 딸아이가 툴툴거렸다. 안나는 웃음이 나오려는 걸 꾹 참은 채 말했다.
추워서 그래. 그리고 못생겨서 싫다는 말은 나쁜 말이야.
왜? 아이는 의아한 표정이었다.
못생겼다고 하면 상처받는단 말이야.
옷에 그런 건데?
옷도 상처받지.
옷이 어떻게 생각해?
원래 그래.
아이는 여전히 얼굴에 물음표를 띄운 채로 안나를 쳐다보았지만 별말을 하지 않았다. 안나는 대답이 궁할 때마다 원래 그래, 라는 말을 달고 살았다. 겨울은 왜 추워? 원래 그래. 나뭇잎은 왜 초록색이야? 원래 그래.
원래 그래가 좀 궁해졌다 싶으면 되물었다. 선율이는 왜 그렇게 생각해? 하면 아이는 골똘히 궁리하는 표정을 지었다. 안나는 저맘때 자신은 어땠나 생각했다. 어릴 때 밤이 되어 이불을 덮고 눈을 감으면 내일이 온다는 걸 믿을 수 없었다. 내일은 대체 어디서 왔다가 오늘이 되고 어제로 사라져버리는 걸까, 생각하다 잠이 들곤 했다.
밖은 정말이지 추웠다. 마을버스에서 내린 안나는 오들오들 떨며 아이를 뒤에서 안 듯이 감싸고 지하철역으로 들어섰다. 평일 낮인데도 지하철은 사람들로 붐볐다. 둘은 가까스로 자리를 잡았다. 의자가 따뜻했다. 안나는 금방 노곤해졌다. 아이는 두꺼운 옷이 불편한 모양이었다. 몸을 이리저리 비틀며 칭얼댔다. 좀만 참아. 안나는 아이에게 핸드폰을 주고 귀에는 이어폰을 꽂아줬다. 아이는 곧 유튜브의 세계로 빠져들었다.
잠실에 가는 건 거의 20년 만이다. 결혼 전엔 회사와 가까운 마포에서 자취했고 결혼하고는 경기도에 살았던 안나는 강남쪽으로 갈 일이 없었다. 친구들과도 주로 광화문에서 만났다.
엄마 나 더워. 핸드폰을 보는 아이의 이마에 송골송골 땀이 맺혀있었다. 안나는 원피스 소매로 땀을 닦아주었다. 안나는 지하철 안이 따뜻할 거라는 생각을 못 한 자신을 자책했다. 얇게 입은 안나도 등 뒤로 땀이 났다. 안나는 아이의 어깨를 감싸안고 자꾸 감기는 눈을 뜨려고 부릅떴다. 지하철은 덜컹거리며 계속 달리고 멈추기를 반복했다.
앤하우스 - 잠실역 5번 출구 잠실나루역 방향 도보 10분
안나는 호스트에게 받은 문자를 확인하며 많은 사람 틈에 섞여 5번 출구를 찾기 시작했다. 롯데 백화점 쪽으로 이어진 문이 보였고 안나는 무심코 그쪽으로 향했다. 둥근 광장 안쪽으로 분수대가 보였다. 로마의 트레비 분수를 축소해서 만들었다는 분수였다. 광장 안은 할인 행사 중이었고 사람들로 가득했다. 안나는 매대 앞에 바글대는 사람들을 보며 아이의 손을 잡고 기웃댔다. 하나같이 안나가 모르는 것들이었고 그렇기에 갖고 싶지도 않았다. 가질 수 없는 것에 욕심도 내지 않는 것. 안나가 마흔 가까이 된 지금까지도 삶을 지탱해온 방식이었다. 안나는 그런 자신이 대견하다고 생각했다. 난 물욕이 없어. 언젠가 친구들과 술을 마시다 나온 얘기였다. 난 너희 다 있는 루이비통 3초 백도 없었잖아. 잠깐 그 가방이 물욕이랑 무슨 상관이냐는 얼굴을 하던 친구들은 곧 다른 얘길 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