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아르코 선정작 단편소설3
아이는 분수가 신기한 모양이었다. 대리석 기둥 사이사이 조각되어있는 이름 모를 신들과 하프를 켜는 소년의 조각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이거 로마에 가면 더 크고 똑같은 게 있대. 선율이는 거기 꼭 가봐. 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안나는 뒤로 메고 있던 가방을 끌러 옆으로 놓았다. 하룻밤만 자는 거라도 챙길 짐은 꽤 많았다. 짐은 챙기다 보면 늘 그랬다.
방학을 맞아 아이들과 롯데월드에 가자는 건 언니의 제안이었다. 우리 지호 롯데월드 한 번도 못 가봤어. 선율이도 마찬가지잖아. 안나는 귀찮았지만, 곧 그것도 괜찮을 것 같았다.
꿈의 나라 사랑의 세계 여기는 롯데월드.
옛날에 TV서 지겹게 들었던 씨엠송이 생각났다. 너구리 두 마리가 드레스와 연미복을 입고 성을 뛰어다니며 부르던 노래. 강원도 시골에 살던 안나와 언니는 오직 TV와 책으로 세상을 배웠다. TV에 채널이 딱 네 개만 나오던 시절이었다. 롯데월드는 어딘가에 존재하지만 가볼 수 없는 곳이었다. 가볼 수 없으니 가보고 싶지도 않은 곳.
아이를 위해. 요즘 안나의 명제는 아이를 위한 삶이었다. 남편에게도 틈만 나면 아이의 행복을 강조했다. 선율이가 좋아하잖아. 선율이가 원하는 거. 선율이를 위해서. 남편은 안나가 같은 말을 매번 해도 입매에 힘을 준 특유의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안나는 그 표정 때문에 남편이 생각이 많고 진중한 사람이라고 오해했다. 그 하나의 오해가 얼마나 많은 걸 변하게 했는지 안나는 가끔 생각해보며 놀라곤 했다.
자기 오늘도 친구 만날 거야? 그저께도 만났으니까 오늘은 쉬어. 안나는 생각난 김에 남편에게 톡을 보냈다. 남편은 확인만 하고 대꾸가 없었다. 남편은 일주일에 두 번 정도 근처에 사는 고등학교 친구들을 만나 당구를 쳤다. 안나는 남편의 친구들이 남편의 사회적 지위와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별 비전도 없어 보이는 직장마저도 자주 옮겼고 아직도 스무 살 때처럼 살고 있었다. 게다가 모두 이혼남이었다. 안나는 친구들과 만나기만 하면 술을 진탕 마시고 들어오는 남편에게 자기도 이혼남 되고 싶어? 라는 농담을 하기도 했지만 얼마 전부터는 남편이 그것을 진심으로 원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삼가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