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아르코 선정작 단편소설 5
안나는 택시를 부르려다 바로 앞의 버스 정류장을 보고 마음을 바꿨다. 지도 앱을 도보에서 대중교통으로 변경하자 타야 할 버스 번호와 내려야 할 정류장이 표시되었다. 두 정거장을 지나 잠실 나루역에서 10분을 더 걸어야 했다. 안나는 호스트가 처음부터 잠실나루역에서 내리라고 하지 않은 걸 괘씸하게 생각했다. 그나저나 잠실나루역은 뭘까, 안나는 지도 앱을 켜고 다시 확인했다. 잠실 새내역-잠실역-잠실 나루역. 왜 이렇게 잠실이 많아, 신천역은 없어졌나? 궁금해하는 중에 버스가 도착했다. 아이는 제일 뒷자리로 뛰어갔다. 안나는 곧 내려야 할 텐데 생각하면서도 아이의 옆으로 가 앉았다. 자리에 앉자 버스 안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들은 뭐랄까 무심해 보였다. 눈치를 보지 않는 사람들.
잠실나루역 정류장에 내려서 안나는 지도 앱을 다시 켰다. 곧 안나가 서 있는 자리에 파란색 점이 반짝였다. 지도는 확대하면 확대할수록 빌딩 사이로 거미가 실을 뿜듯 길을 만들어냈다. 안나는 막막해졌다. 파란색으로 안나가 가야 할 길이 표시되었지만 동서남북 어딘지 알 수 없었다. 바람이 많이 불었다. 아이는 연신 추워를 반복했다. 안나도 덜덜 몸이 떨렸다.
안나는 선 자리에서 빙 돌며 지도 앱의 파란 점이 올바른 방향을 가리키는지 확인했다. 아이는 까르르 웃으며 안나와 함께 빙 돌았다. 옆으로 사람들이 휙휙 지나쳐갔다.
표시된 대로 걷기만 하면 되잖아? 왜 앱을 켜고도 못 찾아와? 남편은 안나를 이해하지 못했다. 작년 결혼기념일에 남편 회사 앞에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가 무려 사십 분이 늦었을 때 남편이 한 말이었다. 안나는 남편에게 미안했지만 억울하기도 했다. 지도 앱은 안나의 입장에서 길을 가르쳐주지 않았다. 앞으로 뻗은 길을 따라가다 보면 그 길은 어느새 목적지로 가는 길이 아니게 되곤 했다.
안나는 아이의 손을 꼭 잡았다. 엄마 또 길 잃었어? 안나는 아이를 바라보며 웃었다. 얼굴이 얼어서 미소도 힘들었다. 아니야, 다 왔어.
건물이 우리 앞으로 걸어오면 좋겠어.
건물은 무거워서 움직이기 힘드니까 가벼운 우리가 가야지.
안나는 트레센빌 아파트가 어딘지 물어보고 싶었지만, 여기 사는 사람이 아니란 걸 알려주는 것 같아 싫었다. 아이의 손을 잡고 동그란 점이 움직이는 방향을 따라 묵묵히 걸었다. 엄마, 추워. 이제 다 왔어? 를 다섯 번은 반복했을까. 저 멀리 우뚝 솟은 아파트가 보였다. 왠지 그 아파트가 안나를 끌어당기는 것 같았다. 가까이 가니 로고가 보였다. 아, 트레센빌이 맞았다! 안나는 보폭을 넓게 했다. 직사각형 여러 개가 겹친 것 같은 정문을 지나 드디어 공동 현관 앞으로 도착한 안나는 호스트에게 받은 문자를 다시 확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