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아르코 선정작 단편소설 7
지친 안나는 거실의 소파에 길게 누워 집 안을 살폈다. 사진 속 앤틱 느낌의 고급스러운 가구들은 작은 집에 비해 지나치게 컸다. 안나는 일어서 가구들을 자세히 살폈다. 견고해 보이는 가구들의 브랜드가 궁금했지만, 알 수 없었고 서랍들은 텅 비어있었다. 안나는 왠지 서운했다.
이 집은 얼마나 할까? 안나는 부동산 어플에서 트레센빌을 검색했다. 124는 48평이니까 아니고 84도 아니고 27이 맞을 거야. 12평이네. 12억? 한 평에 1억? 기분이 이상했다. 안나가 사는 집의 3분의 1 크기인 이곳이 안나의 집보다 세 배가 비쌌다. 안나는 남편에게 카톡으로 집 내부 사진을 여러 장 찍어 전송했다. 여기 얼마게? 12억이야 12억. 진짜 미쳤다. 메시지 옆 숫자 1은 바로바로 없어졌지만, 남편은 답이 없었다. 괜히 무안했다.
-나 도착했어 언니.
안나는 언니에게도 톡을 보냈다.
-집은 어때?
안나는 조금 고민하다 좋아, 그런데 잠실나루역에서 내려야돼, 라고 답했다.
-응 나 퇴근하고 가면 8시 정도 될 거 같아.
-내가 장 봐다 놓을까?
-마트까지 뭐하러 가. 걍 배달시켜.
-알았어. 끝나면 전화해.
-어, 지호 데리고 가면서 연락할게.
언니는 동대문 쪽에 살았고 직장도 그쪽이었다. 퇴근하고 아이까지 데려오려면 바쁠텐데 내가 조카를 데려올 걸 그랬나, 좀 신경이 쓰였지만 안나는 고개를 흔들며 안마의자에 가 앉았다. 이게 작동이 되긴 하는건가. 안나는 리모컨 버튼을 살폈다. 기본-휴식-수면-힐링 버튼 아래에 무중력 스페셜이라는 버튼이 보였다. 무중력 스페셜이라니.
중력이 없다면 어떻게 되는 거지? 언젠가 본 다큐멘터리는 중력이 없는 우주에는 방향도 없다고 했다. 그 뒤로 여러 설명이 이어졌지만, 안나에겐 오직 우주에는 방향이 없다는 말만 남았다. 방향이 없다면 어떻게 길을 찾는 걸까? 내가 떠나온 곳, 아니면 가야 할 곳만 남은 채 방향은 없어지는 건가? 그럼 나 같은 길치는 어떻게 되는 거지? 거긴 길치가 없는건가? 머릿속에 말풍선처럼 궁금증이 쌓이는 걸 느끼며 안나는 창밖을 바라봤다. 저 멀리 희붐하게 롯데타워가 보였다. 12억, 이 집의 값엔 창문 끝에 걸린 롯데타워도 포함된 거겠지. 안나는 무중력 스페셜 버튼에 손가락을 갖다댔다.
그때 벽의 인터폰이 울렸다. 화면이 없는 구형 인터폰이었다. 안나는 화들짝 놀라며 일어나 인터폰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