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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수정 Oct 28. 2024

무중력 스페셜

2024년 아르코 선정작 단편소설 8

 -안녕하세요 1604호시죠.

 -네 그런데요.

 -네 경비원이예요. 지금 아래층에서 민원이 들어와서요. 좀 시끄럽다고 하시네요.

 -네 알겠습니다.


 안나는 전화를 끊고 숨을 돌렸다. 방안에서 아이의 까르륵 대는 소리가 들렸다. 선율아! 뛰면 안 된대! 진짜 방음 엉망이네, 안나는 의자에서 일어나 공연히 바닥을 보며 신경질을 냈다.      


 배달을 시켜놓으라는 언니의 말을 기억해내고 안나는 마트앱을 클릭했다. 너무 비싸네. 이것도 비싸다. 안나는 어린 시절부터 버릇처럼 혼잣말을 했다. 혼자 묻고 혼자 대답하고. 당신은 중얼거리는 버릇 좀 고쳐. 남편은 연애 때는 안나의 혼잣말을 귀엽다고 했지만, 요즘은 질색한다. 


 뭘 사야하지, 안나는 나이를 먹을수록 사소한 결정을 내리는게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로 소비에 관한 일이었다. 쇼핑, 아이 학원, 학습지 같은 결정은 점점 어려워졌다. 안나는 요즘 자신의 역할이 최대한 잘 소비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하곤 했다. 생필품, 반찬 같은 것부터 아이 교육에 관한 것까지 최대한 모든 정보를 취합해 최선의 판단을 내리는 것. 인생의 중요한 결정은 고민할 새도 없이 흐름에 맡기면서 왜 이렇게 사소한 일에 집착하느냐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요즘 들어 안나는 유능감을 느낄 수 있는 일이 없다는 사실이 힘들었다. 예전에 직장을 다닐 때 느꼈던 매우 주관적인 감정. 뭔진 모르겠지만 뭔가 해내고 있다고 느꼈던 기억들. 동료들과 상사 험담이나 회사 욕 같은 별거 없는 대화를 나누며 느꼈던 공감대. 퇴근 후, 주말의 해방감. 아이의 유치원 상담을 하러 갔다가 교사가 신고 있는 뒤축이 닳은 고무 슬리퍼를 보고 안나는 문득 할 일이 있고 돈을 버는 교사가 부러웠다. 유튜브를 보며 그럴싸한 요리를 하고 거실을 먼지 하나 없이 닦고 아이의 영어와 한글 공부를 봐주는 거로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이 싫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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