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임수정 Oct 28. 2024

무중력 스페셜

2024년 아르코 선정작 단편소설 9

과자랑 레토르트 음식 몇 개를 장바구니에 담자 칠만 원이 훌쩍 넘었다. 이건 아니다, 안나는 폰을 열어 아파트와 제일 가까운 마트를 검색했다. 편의점도 비싸긴 매한가지일 테니까 웬만하면 마트에 가야겠다는 생각이었다. 여기 사람들도 다 먹고살겠지. 이럴 줄 알았으면 아까 백화점에서 뭘 좀 사 올걸. 아냐, 백화점 슈퍼는 여기보다 훨씬 비쌀 거야. 안나는 중얼댔다. 아파트 뒤편으로 가까운 마트가 있었다. 안나는 벌떡 일어났다. 창밖의 떨어지는 해가 주황색 기운을 뿌리고 있었다. 저 멀리 롯데타워가 여전히 새끼손가락 만하게 보였다.      

 마트 안엔 재즈가 흘렀다. 안나가 사는 동네 대형 마트에선 마트 로고송만 흘러나왔다. ‘아빠는 삐컵~ 엄마는 씨컵’ 이렇게 들려서 기겁하며 찾아봤던 기억이 났다. 알고 보니 피콕이라는 마트 자체 브랜드를 광고하기 위한 노래였다.


 언니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받지 않았다. 카톡에 우리 뭐 먹어? 라고 물었다. 답을 기다리는 동안 카트 위에 앉은 아이에게 물었다.


 선율이는 뭐 먹고 싶어?

 나는 오리고기!


 안나는 훈제 오리고기를 찾아 두리번댔다. 주변 사람들은 바쁘게 움직였지만, 왠지 우아하게 느껴졌다. 여자들은 대부분 광택이 나는 얇은 패딩이나 밍크를 입고 있었다. 안나는 요즘 세상에 밍크를 입으면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 취급받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들은 왠지 달라 보였다. 그래, 귀티. 안나는 갑자기 자신의 오버핏 자라 코트가 부끄러웠다.


 조리 식품도 안나가 사는 동네 마트보다 훨씬 구색이 다양하고 저렴했다. 요즘 비싼 딸기와 체리까지 든 리코타 샐러드가 만 원도 안 했고 지중해식 문어 샐러드 같은 신기한 요리도 많았다. 안나는 여기 마트가 동네보다 더 저렴한 게 이해되지 않았다. 다 좋아 보여서 도무지 뭘 사야 할지 판단이 어려웠다. 언니에게 톡이 오길 기다리며 마트 안을 왔다 갔다 했다.


 -야 나 좀 늦을 거 같아. 갑자기 마무리해야 하는 일이 있어.


 언니의 톡이었다. 언니는 늘 바빴다. 대학에 가지 않고 아르바이트 한 돈으로 6개월짜리 학원에 다닌 후 세무사 사무실에 취업한 언니는 사무실을 옮기며 경력을 쌓았고 이제는 월급도 남부럽지 않았다. 안나는 일찍 사회생활을 시작한 언니가 안타까우면서도 대학을 가지 않은 언니에게 묘한 우월감을 느끼곤 했다. 언니는 내가 경험한 걸 모르지.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거. 하지만 요즘은 언니가 부러웠다. 언니에겐 자기 생활을 꾸려갈 수 있는 능력과 당당함이 있었다.


 -나 마트 왔는데 우리 뭐 먹을까?

 -추운데 걍 시키지. 그걸 어떻게 들고 오려고 그러냐.

 -배달이 너무 비싸서 왔어.

 -아유 못 말려. 야, 우리 닭발 먹을래? 형부는 닭발을 싫어해서 집에선 통 못 먹는다.

 -알았어. 술은?

 -네 맘대로. 난 암거나 마신다.


 와인, 안나는 와인을 마셔야겠다고 생각했다. 언니랑 와인을 마시면 좋을 거야. 옛날얘기도 많이 하고. 안나는 와인 코너에서 한참 고민했다. 평소에 마시던 두 병에 9,900원 하는 와인은 없었다. 닭발에 어울리는 와인은 뭘까. 안나는 멈춰서서 검색했다. 매운 닭발엔 스위트한 모스카토 계열이 어울린다는 블로그 글이 떴다. 골똘히 와인을 보는 안나에게 직원이 다가왔다.


 -뭐 찾으시는 거 있으세요?


 안나는 직원이 비싼 걸 추천하리라는 생각이 들어 어물댔다. 직원은 안나의 마음이라도 읽은 듯 웃으며 말했다.


 -생각하시는 가격대 있으면 맞춰서 추천해 드려요.

 -그냥 보통으로 모스카토요.

 -이게 2016년 와인 페스티벌에서 우승한 건데 맛이 좋아서 인기예요.

 

직원은 망설임 없이 매대의 와인을 가리켰다. 42,000원이었다. 안나가 망설이자 직원은 바로 다른 와인을 가리켰다. 


-다스티 계열이 모스카토 중에서도 유명한데요. 이건 행사라 저렴하게 나왔어요. 샴페인 마시는 느낌이 든다고 고객분들이 몇 병씩 쟁이셔요.


 29,900원. 안나는 순간적으로 와인을 집어 들어 카트에 넣었다. 한 번쯤 마셔 볼 만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맥주도 몇 캔 담은 다음 닭발 파는 곳을 찾았다. 직접 조리했다는 숯불 닭발이 만 칠천 원이었다. 비싸네, 안나는 돌아섰다. 동네에서 시키면 주먹밥이랑 계란찜도 주는데, 안나는 그 앞을 왔다갔다 하며 고민했다.


 손님! 닭발을 파는 여자가 안나를 불렀다.


-이거 만 오천 원에 드릴게요. 가져가세요.

 

안나가 망설인다고 느꼈는지 여자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그럼 천원 더 빼 드릴게요, 했다. 안나가 고개를 끄덕였고 여자가 빠른 손놀림으로 가격 택을 인쇄해 닭발을 랩으로 둘둘 감아서 건넸다. 이제 와인과 어울리는 가벼우면서도 보기도 좋은 음식을 사고 싶었다. 9,900원 리코타 치즈 샐러드와 12,900원 지중해식 문어 샐러드가 고민됐다. 리코타는 애들도 먹을텐데, 아냐 내가 지중해식 문어를 언제 먹어보겠어, 안나는 문어 샐러드를 집어 들었다.


 -엄마, 새우튀김 사줘.


 문어 샐러드 옆으로 11,900원 가격이 붙은 왕새우 튀김이 보였다. 손가락 한 뼘은 족히 될 길이에 머리와 꼬리가 양쪽으로 나온 먹음직스러운 새우튀김이었다. 


 -오리고기 안 먹고?

 -그것도 먹고 이것도 먹고.


 아이는 또래보다 작았고 잘 먹지 않았다. 안나는 문어 샐러드 대신 새우튀김을 집어넣었다. 리코타 샐러드를 살까 생각했다가 오리고기 옆에 조금 담긴 상추와 파채가 보였다. 이것만 먹어도 충분하지 뭐. 안나는 계산대로 향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