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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유 Sep 06. 2023

그녀의 이름(1)

제165회 월간문학 신인작품상 당선작(2023.03)

다른 이름으로 불러 달라 했단다, 다른 이름으로. 

남겨진 이의 이별은 떠난 이의 것보다 느리고 더뎌서 누군가 부르는 낯선 이의 같은 이름 앞에서 아직도 몸이 멈춰 서는데 다른 이름으로 불러 달라 했단다. 성별을 착각하기 쉽다거나 민망한 의미라는 이유로 한 해 십오만 건의 법원 개명 신청 건수가 있다지만 그녀는 이름을 바꾼 것이 아니다. 또 하나의 이름을 얻었다. 

사람의 이름엔 지은 이의 바람과 뜻, 지어진 배경, 지나온 세월이 모두 담겨 있다. 개개인의 자아와 독자성을 드러내는 이름은 또한 타인에게로 통하는 문이기도 하다. 김춘수 시인의 시 ‘꽃’에서처럼 우리는 이름이 불리어짐으로써 존재의 의미를 확인받고 진정한 관계를 형성할 수 있다.

그녀를 생각하면 애틋하고 아렸다. 함께 했던 시간들이 툭, 툭 나팔꽃처럼 터졌다. 생의 힘든 때를 지나게 해준 고맙고 따뜻한 이름이었다. 그 소중하고 귀한 이름을 놓아야 한다.


그녀를 만난 건 대학원에서였다. 삶의 빈 곳을 채워보자며 뒤늦게 시작한 공부였다. 나보다 세 살 아래인 그녀는 밝고 착하고 사람을 잘 챙기는 살갑고 예쁜 사람이었다. 나중에서야 그녀가 부모의 이혼 후 어린 동생들을 돌보며 실질적인 엄마 역할을 해왔다는 것을 알았다.

건강 상 학교를 휴학하고 집에 누워있는 시간이 많았던 내게 그녀는 전화로 이런저런 학교 소식을 전해주었고 우리는 깔깔대며 오랜 시간 수다를 떨곤 했다. 나는 그녀의 전화를 낚싯대로 비유하곤 했다. 물 속 침대에 누워 해저의 깊은 고요 속에 잠겨있으면 낚싯줄 같은 그녀의 목소리가 내려오고 그 목소리를 물고 나는 세상으로 나왔다. 그러면 희미했던 사물들이 윤곽을 찾고 아파트 복도를 지나는 사람들의 말소리와 발자국 소리가 선명하게 들려왔다.  

그러던 중 그녀의 집안에 예기치 않은 큰 일이 생겼고 그녀는 주변과의 모든 연락을 끊었다. 몇 년 후, 그녀의 출가 소식이 들려왔다. 생의 어떤 고비에서는 버티기 위해, 살아내기 위해 해야 하는 선택이 있다. 그녀의 선택도 그런 거라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마음은 그렇지 못했다. 가끔씩 그녀의 근황이 들렸고 그럴 때마다 하루가 휘청거렸다. 마음 한편에서는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다시 돌아오기를, 예전처럼 차를 마시고 여행을 가고 토론을 하는 평범한 일상의 한 부분을 공유하기를, 그 동안 쌓아놓은 우정이 있는데 그렇게 떠나가는 게 어디 있냐고 씩씩거리며 마주본 뒤 풍선처럼 부푼 웃음을 터뜨리기를.   


십 년이 흘렀다. 

원하는 게 뭐냐 했더니 ** 스님으로 불러 달래. 그녀를 만나고 온 친구가 말했다. 선을 긋는구나. 그곳에 머물 것임을 단호하게 말하고 있구나. 진짜 이별이구나. 인정해야 했다. 그녀는 돌아오지 않는다. 누군가의 변화를 받아들이고 새로운 길을 응원하는 게 이리도 힘든 줄 몰랐다. 어리석은 욕심이고 먼지 같은 집착이라고 스스로에게 매운 말을 쏟아내도 그녀를 만나러 가자는 친구의 말에 선뜻 답하지 못했다. 잿빛 승복을 입은, 다른 이름의 그녀를 만나 두 손으로 합장하고 담소를 나누기엔 나는 여전히 그녀의 옛 이름을 들고 있었다. 그렇게라도 속세의 그녀를 놓고 싶지 않았는지 모른다. 

그러나 쓰리고 아파도 보내주어야 한다고, 엉엉 울면서도 움켜잡은 손을 풀어야 한다고 크고 까만 눈의 작은 짐승이 말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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