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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유 Sep 06. 2023

그녀의 이름(2)

제165회 월간문학 신인작품상 당선작(2023. 03)

새끼 고양이가 울었다. 배나무 아래 울타리 안에서였다. 삼십 도를 넘는 한낮의 열기가 훅훅한 여름날이었다. 어미는 새끼들의 안전을 위해 자주 이동하니 다음 날이면 다른 곳으로 옮겨가겠지, 했다. 그런데 이틀이 지나도 고양이 울음소리가 멈추지 않았다. 탈진이 걱정되었다. 또 하루가 지났다. 어미는 오지 않았다. 집으로 데려오는 수밖에 없었다. 

번개는 그렇게 왔다. ‘번개’는 홀로 남겨졌지만 건강하게 자라 마을을 쌩쌩 누비라는 의미로 지어준 이름이었다. 방바닥을 아장거리던 번개는 풀줄기 하나에도 씨름하듯 이리 뛰고 저리 뛰며 가을을 보냈고 뒷동산을 오르내리며 겨울을 났다. 그러나 봄을 넘기지 못했다. 오줌을 제대로 누지 못하고 몸이 붓더니 데려간 병원에서 요도 기형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지금까지 산 것도 기적이고 수술을 하지 않으면 염증 때문에 오래 살지 못할 것이라 했다. 지금이었으면 수술하지 않았을 것이다. 통증을 줄여주며 제가 태어나고 자란 곳에서 마지막을 보내게 했을 것이다. 흰 종이상자 안에 누워있는, 굳은 몸 둥글게 털 깎인 맨살을 보는 순간, 감정의 둑이 무너졌다. 벚꽃이 비처럼 쏟아지는 날이었다. 

짐승은 죽을 때를 안다고 했다. 번개도 알고 있었다. 한 번도 가지 않았던 지붕 아래 부서진 산자 속으로 들어갔다. 병원을 가는 날이었다. 마루에 앉아 기다렸다. 두어 시간 후 번개는 엉덩이에 지푸라기를 묻히고 내려와 수돗가에서 물을 마셨다. 마치 이별 준비를 못한 너희에게 시간을 주겠다는 듯 그렇게 병원으로 갔다.

슬픔은 쉽게 가시지 않았다. 뼈가 울리고 살이 아팠다. 머리에 금이 가는 것 같았다. 수술하지 말았어야 했다고 자책했다. 천정이 내려오고 바닥이 올라와 몸을 눌렀다. 침대에서 일어나는 게 버거웠고 밥을 삼킬 수가 없었다. 울고 또 울었다. 그렇게 일주일을 보냈다.    

이별의 대상이 사람이라서 혹은 동물이라서 슬픔의 양이 달라지진 않는다. 오래 만났다고 더 슬프거나 짧게 만났다고 덜 슬픈 것도 아니다. 그녀가 떠난 뒤 십 년 동안 마음 안쪽으로 떨군 눈물과 일 년도 채 살지 못한 고양이를 묻고 일주일 동안 밖으로 쏟아냈던 눈물의 양을 나는 잴 수 없고 비교할 수 없다. 그러나 산 자가 죽은 자를 놓지 않으면 혼은 저승으로 가지 못하고 이승과 저승 사이를 떠도는 원혼이 된다고 했다. 번개를 보냈다. 좀 더 일찍 놓았더라면 낯 선 곳에서 마취와 수술을 반복하다 한밤중 외롭게 떠나지 않았을 걸, 하는 후회는 그녀와의 이별을 돌아보고 또 돌아보게 했다.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 없고 흐르지 않는 것 없다. 자연의 순리다. 나는 그녀에게 매달렸지만 사실은 그녀가 없는 그녀의 헛헛한 과거에 매달려 있었는지 모른다. 주인이 흘려보낸 이름을 건져 들고 뚝뚝 물기를 떨구면서. 그녀가 원한 것이 아니었고 진리를 찾아가는 수도(修道)의 발걸음만 무겁게 했을 것이다. 인연을 맺는 것도 어렵지만 맺어진 인연을 풀어내는 건 몇 배 더 어렵다. 켜켜이 쌓인 감정과 추억을 접어야 한다. 외롭고 쓸쓸하고 슬프지만 제가 어쩌지 못하는 것을 받아들이는 겸손과 겸허의 시간이기도 하다. 떠난 이는 자유로워지고 남은 이는 새로운 사람을 들일 마음의 빈 공간을 얻는다. 만남은 그렇게 이어진다. 

폭설이 내렸다. 눈에 잠긴 산허리에 한 수저만큼 그녀의 이름을 덜고 간다. 언젠가 그녀의 다른 이름을 부를 날이 올 것이다. 서두르지 않는다. 내가 마음을 넓혀가는 동안 바다가 아름다운 섬, 서늘한 새벽 법당에 그녀의 독경소리 붉은 연꽃처럼 피어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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