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아르코문학창작기금 선정작(수필)
그날 아이들의 강한 증오는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 또래들 간 집단적인 흥분도 자극이었겠지만 시험성적으로 아이들을 차별하고 무시한 건 그 여선생만이 아니었다. 키가 120 센티미터도 되지 않는 아이들을 때린 건 교무주임만이 아니었다. 아홉 살 작은 아이의 멱살을 잡고 뺨을 때린 선생도 있었다. 그런데 그 여선생만 그런 수모를 당했다. 왜일까? 남녀를 엮는 뒷말들이 다른 선생들에게는 없었다. 결혼을 한 여자가 남편 이외의 다른 남자를 만나면 마을에서 ‘멍석말이’를 했다는 풍습이 멀지 않던 때였다. 짚으로 촘촘하게 엮어 벼나 콩 등 곡식을 널어 말릴 때 쓰는 도톰하고 무거운 멍석. 그 멍석에 사람을 돌돌 말아 몽둥이나 지게 작대기로 때리는 ‘멍석말이’. 그런 벌을 받은 여자들은 대부분 마을에서 쫓겨났다는데 그 여자와 바람이 난 남자가 멍석말이를 당했다는 이야기는 들은 적이 없었다. 그 날, 선생은 ‘선생님’이 아니었다. 수치스러운 짓을 한, ‘벌’을 당해도 싼 ‘여자’였다. 아이들은 그것을 부모와 형제, 이웃과 공동체에서 배웠을 것이다. 열세 살, 그들은 보고 들은 대로 했다.
『삼강행실도』1)같은 책이 만들어져 효부, 효녀, 열녀상이 교육되고 추천되어 국가적으로 지원받은 게 조선시대부터였다. 『조선왕조실록』에는 그에 대한 사례들이 무수하고 그들의 집안에는 조세와 부역을 면제해주고 고을 전체에는 명예를 안겨 주었으니 그 중 집안의 강요로 억지로 열녀가 되어야 했던 여성들도 없지 않았을 것이다. 반면 아내가 남편을 죽이면 여자가 사형당하는 것은 물론 고을이 강등되고 수령이 파직되었다.2)
1636년 병자호란 당시 조선 인구 1천만 명 중 50만 명이 청나라로 끌려갔다. 그 중 몸값을 지불하고 풀려나 고향으로 돌아온 여성들을 ‘환향녀(還鄕女)’라 불렀는데 그들 중 많은 수가 이혼을 당하고 살던 고을에서 손가락질 받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당시에 그들이 처한 상황을 가늠할 수 있는 예가 『인조실록(仁祖實錄)』에 나온다.
신풍부원군(新豐府院君) 장유(張維)가 자신의 외아들 장선징((張善澂)이 청나라에 포로로 잡혀갔다가 돌아온 그의 처와 이혼하게 해달라는 청을 예조에 올렸다. 좌의정 최명길은 “만약 이혼해도 된다는 명이 있게 되면 반드시 속환(贖還)3)을 원하는 사람이 없게 될 것”이고 “이것은 허다한 부녀자들을 영원히 이역의 귀신이 되게 하는 것”이라며 반대한다. 그러나 실록은 “이 뒤로는 사대부집 자제는 모두 다시 장가들고 다시 합하는 자가 없었다.” “사로잡혀 갔던 부녀들은, 비록 그녀들의 본심은 아니었다고 하더라도 변을 만나 죽지 않았으니, 절의를 잃지 않았다고 할 수 있겠는가. 이미 절개를 잃었으면 남편의 집과는 의리가 이미 끊어진 것이니, 억지로 다시 합하게 해서 사대부의 가풍을 더럽힐 수는 절대로 없는 것이다.”라고 기록한다. 죽지 않았다고, 자신들의 잘못도 아닌 전쟁에 포로가 되어 이역만리로 끌려갔다가 천신만고 끝에 돌아왔는데 ‘가풍’을 더럽히는 수치스러운 존재가 되어버린 것이다.
한국전쟁 이후 ‘양색시’ ‘양공주’로 멸시받던 여성들. 주로 한국에 와 있던 미군을 상대로 매춘을 하는 여성들이었던 이들이 일하던 기지촌은 대한민국 정부가 조성하고 관리하고 운영하는 곳이었다. 1960년대 당시 기지촌 여성들이 성매매로 벌어들인 달러가 국민총생산의 4분의 1을 차지할 정도였다. 국가가 여성을 외화벌이의 수단으로 여긴 것이었으나 사회적 편견과 무시, 차별은 1만 3천 여 명 기지촌 여성들의 몫이었다.4)
집단이나 국가의 도덕, 규범, 전통을 내세워 여성들을 희생시킨 건 오래된 옛일도 아니고 한 나라만의 일도 아니다. 일명 ‘명예(名譽)’라는 이름으로 벌어지는 살인(殺人, 영어로 honor killing)은 가족이나 부족, 공동체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이유로 집단 내 구성원이 다른 구성원을 죽이는 행위를 말한다. 주로 중동지역과 남아시아, 유럽과 미국의 이민자 사회에서 공동체의 규범과 어긋나는 행동이나 간통, 결혼 전 성관계나 임신, 성적 행위 등을 했다고 비난받는 여성들이 피해자가 된다. 2017년 7월, 파키스탄에서 스물여섯 살의 찬딜 발로치(본명 포우지아 아짐 Fouzia Azeem)라는 여성이 친오빠인 와심 아짐에게 목이 졸려 살해당했다. 모델이자 소셜 미디어에서 활발하게 활동했던 그녀가 전통을 따르지 않았다는 이유에서였다. 세계보건기구(WHO)나 유엔인구기금(UNFPA)에 의하면 오늘도 열 명 이상의 여성이 가족과 친족에 의해 살해당하고 있다.
수치심은 “매우 창피하고 부끄러운 마음”(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이다. 식욕이나 성욕처럼 생래적이고 본능적인 게 아니라 사회적·문화적으로 습득되어 내면화하는 감정이다. 자기를 성찰하게 하여 자아성장의 발판이 되기도 하지만 굴욕감과 치욕스러운 감정을 함께 느끼게 해 저항을 무력화시킨다. 나아가 자존감을 무너뜨려 자신을 없어도 되는 무가치한 존재로 여기게 만든다. 권력관계가 작동하여 남성이 여성에게, 강자가 약자에게, 다수가 소수자에게 강요하고 여성과 장애인, 노인, 성소수자, 가난한 자, 신체적 능력이 약한 남성 등을 차별하고 억압하는 것을 정당화한다.
젊은 여선생은 자신의 경솔한 행동이 불러일으킨 제자의 수치심을 몰랐을 것이다. 또한 자신이 아이들에게 왜 그런 조롱과 수모를 당했는지도 몰랐을 것이다. 흙길과 눈길은 그렇게 겹쳐져 선생은 이제 손등 위에 있다. 기지촌 여성이었던 늙은 인권활동가의 죽음5)에도, 디지털 성범죄를 당한 피해자가 극단선택을 했을 때에도 선생은 고개를 숙이고 퍽- 퍽- 눈을 맞으며 내 손등을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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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유교 윤리 서적. 1434년(세종 16년) 왕명으로 직제학 설순 등이 우리나라와 중국의 서적에서 군신(君臣)·부자(父子)·부부(夫婦)의 도리(삼강(三剛))에 모범이 될 만한 충신, 효자, 열녀의 행실을 모아 간행한 책. 『삼강행실효자도』『삼강행실충신도』『삼강행실열녀도』 3부작으로 되어 있다.
2) 현종 11년(1670년) “이조가 아뢰기를, "남편을 죽인 죄인 율옥(栗玉)이 당시 살았던 고을은 의당 호칭을 강등시키고 수령을 파직해야 합니다. ……." 하니, 상이 그렇게 하라고 하였다.” (『현종실록』 18권)
숙종 7년(1681년) “배천(白川)의 천녀(賤女) 춘단(春丹)이 지아비를 죽인 것으로써 …… 사형에 처하고, 고을을 강등하고, 수령을 파직하였다.”(『숙종실록』 11권)
3) 돈을 주고 풀려남.
4) “뜯기는 달러에의 과녁” <매일경제> 1969. 04. 24. 해당기사는 오산 기지촌의 회관 벽에 ‘명심하자! 지금 우리의 마음씨, 몸차림, 행동이 그대로 3천만 민족의 흥망과 직결되어 있음을!’이란 슬로건이 달려있다며 “비록 몸은 위안부라는 명예롭지 못한 칭호를 달고 있지만 우리를 도우러 우리나라를 지켜주러 멀리 타국에서 온 군인들을 국가를 대신해서 위안해주는데 대한 자부심을 갖고 국가의 위신을 지키자는 뜻일 게다.”라고 적고 있다.
5) 기지촌 여성이었던 인권활동가 고 엄숙자 씨는 과거 기지촌의 실상을 알리고 기지촌여성지원법안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으며 국가손해배상청구소송에 증인으로도 나섰다. 2022년 1월 9일. 74세의 나이에 불의의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