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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유 Sep 09. 2023

손등(1)

2023년 아르코문학창작기금 선정작(수필)

눈이 왔다. 화단의 주목나무에도 잔디에도 축구골대 위에도 함박눈이 소복했다. 남자 아이들이 운동장에서 눈싸움을 했다. 한 학년에 한 반, 전교생이 백 명도 채 되지 않는 작은 시골학교.


선생들이 교문에 들어설 때마다 몇 개의 눈뭉치가 날아갔다. 선생들은 뒤돌아 “이놈들-” 했지만 크게 화낸 것은 아니었다. 장난이었고 아이들은 금방 멈췄다. 그 여선생이 교문에 나타났을 때는 달랐다. 운동장에 있던 아이들이 뛰기 시작했고 교실에 있던 아이들까지 달려 나갔다. 아이들은 교문에서 교무실로 가는 길에 길게 늘어서서 눈을 던졌다. 선생의 등에 목에 머리에 퍽- 퍽- 눈뭉치가 날아갔다. 작은 돌멩이를 숨긴 꼭꼭 다져진 눈뭉치도 있을 거라고 짐작했다. 아이들은 선생의 이름을 따서 지은 별명을 큰소리로 부르며 웃었다. 개인이 아닌 집단이 된 아이들의 장난이 짓궂음을 넘어 잔인해지는 경우는 많았다. 선생의 곱슬머리가 젖고 겨울 외투의 어깨와 등에 부서진 눈 자국이 주먹처럼 남아 있을 터였다. “봤냐? 울더라아-.” 아이들이 눈을 반짝이며 교실로 들어왔다. 뺨이 빨갛게 달아있었다. 교무실에 들어서자마자 선생이 주저앉아 통곡을 했다고 나중에 들었다. 


선생은 수업이 끝난 빈 교실에서 교무주임의 얼굴을 무릎에 올려놓고 여드름을 짜준다고 했다. 보았다고 했지만 누가 보았는지는 몰랐다. 교무주임은 자기보다 몸집 큰 부인의 머리를 밤마다 벽에 쿵쿵 박는다고 했다. 교무주임 가족이 살고 있는 주인집 손자가 한 말이라 했다. 소문은 점점 가지를 치며 뻗어나갔고 아이들의 수군거림은 멈추지 않았다. 진실은 몰랐다. 선생은 시험 성적이 낮은 아이들을 무시하는 것 때문에, 교무주임은 이성을 잃은 광포한 체벌 때문에 미움을 받고 있었다.  



내가 좋아하던 선생은 아니었다. 오히려 싫어했다는 게 맞다. 선생은 내게 수치심(羞恥心)을 안겨준 적이 있었다. 


“어머, 너는 손이 왜 그러니?”


방과 후 교실 청소가 끝났다고 보고하러 간 교무실에서였다. 내 손등의 흉터를 보고는 큰소리로 말했다. 걱정하는 말투가 아니었다. 이상하거나 징그러운 것을 본, 놀라고 당황한 새된 외침이었다. 다른 선생들이 ‘무슨 일인가?’ 자리에서 고개를 빼고 쳐다보았다. 무안함과 창피함에 얼굴이 뜨거워졌다. 우등생이라 자부하던 나의 자존심은 순식간에 구겨졌고 쪼그라드는 당당함을 간신히 붙들어야 했다. 목소리가 떨리지 않게 뒷목에 힘을 주며 “생일날, 미역국에요.”라고는 교무실을 나왔다. 몸도 마음도 나무처럼 딱딱해져 있었다.  


우리 반 아이들 어느 누구도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 나는 덴 자국이 창피하지 않았었다. 시골 아이들은 긁히거나 베이거나 데인, 몸 어딘가에 상처나 흉터 하나씩은 가지고 있었고 보기 흉하게 큰 아이들도 있었지만 그런 것으로 서로를 놀리지는 않았다. 내게는 화상을 입은 날의 기억이 없었다. 거뭇한 자국이 왜 생겼는지 자라면서 들었고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런데 선생의 말투와 태도로 갑자기 덴 자국은 부끄러운 것이 되었고 나의 잘못이 되었다. 텅 빈 운동장 지나 구불구불 집으로 오는 길. 동네 처녀가 빠져죽었다는 버드나무 옆 웅덩이를 지나 아카시아 나무들이 무리지어 있는 개울가를 지나, 여자아이도 남자아이도 “슈-퍼맨-”을 외치며 뛰어내리던 낮은 다리를 건너, 길은 네 갈래인데 ‘삼거리마당’이라 불리는 곳에 다다라서야 고개를 들었다. 화가 났다. 선생님이었다, 어른이었다. 외롭고 쓸쓸했던 감정은 분노로 바뀌어 있었다. 화는 쉽게 풀리지 않았다. 나는 눈뭉치를 들지 않았다. 교실에서 창문을 통해 그 장면을 보고 있었다. 나에게 상처를 준 선생이 당하는 봉변에 통쾌하다는 생각은 없었다. 그러나 선생이 안됐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사소한 경험이 사소한 결과만을 낳는 것은 아니다. 사회적 지탄과는 비할 바가 아니지만 내가 느꼈던 수치심도 흔적이 남았다. 예민한 청소년기에는 펄펄 끓는 미역국이 불쑥불쑥 손등으로 쏟아졌다. 낯선 사람 앞에 손을 내밀었다 제풀에 놀라 움츠렸다. 죽은 세포의 거무스름한 색깔은 겨울이면 더 짙어졌고 그럴 때마다 콩알만큼 몸집이 작아져 감춰지고 싶던 ‘그 때 그 순간’에 마음이 데었다. 시멘트 천정을 오르던 철사처럼 가는 목소리, 붉게 달궈진 난로, 노란 주전자 부리에서 쿨럭쿨럭 넘치던 물, 책꽂이 너머 올라오던 선생들의 머리. 타박타박 걷던 겨울 흙길에 마른 흙먼지가 다시 뿌옇게 일었다. 


세월이 흘러 손등도 나이를 먹었다. 흉터는 옅어지고 부끄러움은 없어졌지만 눈 온 날의 운동장은 오히려 더 선명하고 더 뚜렷해졌다. “와-.” 소리 지르며 달려 나가던 아이들, 치켜든 팔과 허공을 날아가는 눈뭉치들, 아이들의 고함소리에 떠밀리듯 걸어가던 선생. 쌓인 눈에 박힌 신발자국의 홈처럼 깊었다. 불편한 마음과 껄끄러움이 더해갔다. 학교는 작고 희미해지는데 선생이 걷던 길은 길고 뚜렷해졌다. 동그란 열매 때문에 꿀밤나무라 부르던 커다란 플라타너스 한 그루가 서있던 교문에서 철봉과 시소와 그네를 지나 한 발 한 발 꾹꾹 눌러 딛고 올라야 했던 삼십 여 개의 계단. 스물셋이나 되었을까. 선생이 느꼈을 수치심과 모욕감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궁금했다. 후문 옆에 살았기에 그 날도 후문으로 들어온 교무주임이 정문으로 왔다면 눈을 맞았을까. 어린 제자들의 적의에 찬 눈뭉치를 어깨와 등에 맞으며 놀림과 조롱을 당했을까. 동창 모임에서 선생의 소식을 물었으나 아무도 알지 못했다. 교무주임은 교감이 되었고 나중에는 장학사가 되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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