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시유 Sep 06. 2023

달(1)

제24회 전원생활 수기 공모 우수작(2023.03)

삽과 곡괭이를 챙겨 손수레에 싣고 대문을 나선다. 앵두나무 많던 소꿉친구네 집을 지나 살금살금 걸어가도 어떻게든 알아채고 웡- 웡- 짓는 커다란 리트리버가 뛰어다니는 집을 지나, 평생 고향을 떠난 적 없는 토박이 먼 친척 집을 지나 느티나무, 밤나무 줄지어선 계곡 길을 오른다. 

마을 앞 농경지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논과 밭이 골짜기나 산비탈에 있는 고향. 요즘도 아는 이들끼리는 땅의 번지가 아니라 땅의 위치, 특성에 따른 옛 이름을 부른다. 

지금 내가 오르고 있는 곳은 말골이다. 그곳에 가면 달이 있다. 밤하늘이 아니라 움푹 패인 계곡에 박혀있는 커다란 반달이 있다.


논은 휴경 중이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얼마 동안은 농사를 지었지만 경사가 심한 다랑이 논이라 임차를 주려 해도 나서는 이가 없었다. 

수십 년 동안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논엔 전나무와 버드나무, 신나무, 뽕나무가 키를 높이고 관목이 우거졌다. 관리되지 않은 개울둑은 무너져 물길은 논 가운데로 났고 억새가 무성하였다. 산짐승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놀이터이자 쉼터였다. 그네들에게는 그대로가 좋았겠지만 장마철마다 토사유출이 반복되고 넓어진 농로에 계곡 안까지 콘크리트 포장이 되면서 오가는 사람들이 쓰레기를 버렸다. 고향에서 다시 농사를 시작한 지 십 년, 언제나 숙제처럼 남아있던 논을 굴착기 운전하는 옆 마을 친구에게 부탁해 밭으로 만든 게 올 봄이었다. 

나무를 베고 잡목을 걷어내니 무너지고 파인 곳이 많았다. 다랑이 형체는 찾을 수 없고 맨 윗배미에만 어슴푸레 누운 사람의 등처럼 논두렁의 흔적이 남아있었다. 다시 논으로 만들어 벼를 재배할 상황이 아니었다. 밭으로 이용하려면 성토를 해야 했으나 마을길이 좁아 흙차가 들어올 수 없었다. 결국 몇 년 동안은 논을 밭으로 만드는 과정이라 여기자며 일을 벌였다. 일곱 개의 다랑이는 세 개가 되었다. 돌도 많았다. 언니와 나는 시간 날 때마다 돌을 골라냈다. 

호미 끝으로 돌을 파내고 있으면 나는 아버지의 뼈를 건져내는 느낌이었다. 검은 논흙이 아버지의 살이었고 부수수 떨어지는 흙이 아버지의 속살이었다. 배어나는 물기가 아버지의 땀과 눈물이었다. 벚나무에 싹이 돋고 잎이 나고 꽃이 피는 동안 나는 엎드려 아버지를 발굴했다. 아버지의 등을 밟고 삽질을 했고 아버지의 어깨 위에서 쉬었다. 나는 아버지의 몸 위에서 걷고 일했다. 아버지는 그렇게 다시 내게 왔다.


오랫동안 아버지 생각을 하지 않으려 했다. 장자(長子)에 대한 아버지의 기울어진 사랑으로 딸들은 모진 마음고생을 했다. 아버지가 잠시 도시에서 생활하던 중에 태어난 이복오빠는 이곳에서 중학교도 마치지 않고 도시 유학을 갔다. 아버지는 맏아들의 교육에 모든 것을 쏟아 부었고, 농촌에서 소 팔고 논밭 팔아 자식들 대학등록금을 내던 시절이었으니 집안 살림살이는 말이 아니었다. 늦둥이 막내딸로 그러한 사정을 제대로 알지도 느끼지도 못한 나와는 달리 언니는 상급학교 진학을 포기해야 했고 평생 한으로 간직해야 했다. 

어린 내 눈에도 아버지는 일을 하고 일을 하고 또 일을 했다. 개울 따라 한참을 올라야 하는 이 길을 아버지는 거름 지게를 지고 올랐다. 지금처럼 넓고 포장된 길이 아닌 꼬불꼬불 굽은 비탈길이었다. 소똥과 짚을 썰어 섞은 거름은 말라도 무게가 만만치 않았다. 일곱 개의 다랑이에 한 짐 한 짐 날라 거름을 부려놓고 아버지는 쟁기질을 하고 써레질을 했다. 한 삽 한 삽 흙을 떠서 논두렁을 만들고 물길을 냈다. 새참을 머리에 인 엄마를 따라 막걸리 주전자를 들고 올라오면 나는 숨이 찼고 아버지는 철벅철벅 논에서 걸어 나와 진흙이 잔뜩 묻은 손과 장화를 씻고 벚나무 아래 앉아 새참을 드셨다. 연두 빛깔로 부풀어 오르는 산엔 진달래와 철쭉이 피고 뻐꾸기가 울었다.  

모내기철이 되면 온 마을 사람들이 함께 모내기를 했는데 못줄 앞에 줄지어 선 어른들의 흥겨운 노래와 농담, 웃음소리가 계곡에 떠들썩했다. 지금은 대부분 세상을 떠났거나 와병중인 이들의 푸르고 싱싱한 날들이었다. 논바닥마다 파릇한 모들이 심어지면 아버지는 어깨에 비료 통을 메고 비료를 주었다. 곳곳에 샘물이 솟아 장마철이면 논두렁 몇 곳은 무너졌고 아버지는 나뭇가지와 돌, 흙으로 다시 고쳤다. 

추수가 끝나면 누구네 집 어느 논에서 벼가 몇 가마니 나왔는지가 어른들에게 가장 중요한 화제였다. 그에 따라 아버지의 표정도 밝아지거나 어두워졌고 어깨가 올라가거나 내려갔다. 멍석마다 벼를 말려 추곡수매 때 좋은 등급을 받는 것도 중요했다. 알곡을 얼마나 알차게 키워내는가가 농부로서 느끼는 가장 큰 보람이니 당연했다. 추곡수매가 끝나면 아버지는 얼큰하게 술에 취해 흥얼흥얼 노래를 부르며 마을 앞 고개를 넘어오셨다. 마당무탱이라 불리던 그 고개는 지금 마을 앞을 지나는 도로에 수용되어 동네와 외부를 잇는 굴다리가 되었다. 

이전 03화 마중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