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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니램프 Oct 04. 2023

외로워서 좋기도 아쉽기도 한

레드데이 부침개

올 해의 추석 연휴는 그야말로 황금연휴였다. 빨간 날이 많아 쉬는 날이 많아져서 좋았다. 시댁은 음식장만을 따로 하지 않으셔서 추석이 다가오기 전에 들려 인사드리고 왔기에 집에서 쭉 쉬기만 해도 됐다. 밀린 논문 수정작업이 많았지만, 빨간 날이 많아 마음의 여유가 생겨 수정작업이 수월하게 진행 됐다. 앉아서 노트북 모니터만 보고 있으니 어디선가 고소한 참기름 냄새가 진동을 했다. 어느덧 제법 선선한 날씨가 되어 바람을 타고 우리 집까지 전해졌다.




어렸을 적 명절엔 친척들이 모두 모여 전을 부치고, 친척 언니, 오빠 동생들과 함께 놀곤 했다. 다 큰 성인이 되고 결혼을 하니 이제 시댁에서 전을 부치려나 싶었지만 우리 시댁은 따로 장만을 하지 않아 결혼생활 11년이 돼 가지만 시댁에서 음식장만을 해본 적이 없다. 처음에는 우리 시댁 문화가 너무 좋았지만, 올해는 들기름과 참기름 향이 솔솔 나는 부침개가 그리워지는 게 웬 말일까? 복에 겨운 소리 같기도 하다. 오죽하면 우리 집 딸이 추석인데 추석음식 같은 것도 안 한다면서 투정을 부린다. 나 혼자라도 아이들을 위해 준비했어야 하나 싶다.     



그렇게 추석연휴를 쉼과 논문수정작업으로만 보냈다. 계속해서 키보드를 두드리는 나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같이 산이나 갔다 오자는 엄마의 말씀에 오늘 말고 다음날 들리겠다고 전화를 끊었다. 엄마와 우리 집의 거리는 5분 거리이지만 아이들과 함께 나가려면 작은 실랑이들을 해야 하기에 여간 성가신 게 아니었다. 이제는 좀 컸다고 친구를 만나러 가기로 했다면서 따라가지 않겠다는 아들과 집에서 좀 쉬자는 딸이 나를 따라나서는걸 흔쾌히 수락하지 않았다. 벌써 나의 손길을 벗어나는 시기인가 싶기도 하여 서운한 감정이 들었다.





아이들의 짐 몇 가지와 나의 짐 몇 가지를 들고 엄마집으로 향했다. 엄마는 내가 전을 먹고 싶다는 말을 들으시고 전을 만들어 놓으셨다. 빈속이었지만 엄마가 해주신 전은 개운하면서도 고소한 맛이 일품이었다. 전을 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엄마와 했다. 엄마는 요즘 사는 게 너무 허무하다고 말씀하신다. 돈이 최고라고 생각하여 아끼고 안 쓰고 살아왔는데, 그러면 뭐 하겠나 어차피 내 뜻대로 다 이뤄지지도 않는다며, 커피 한잔을 시켜도 여럿이서 나눠먹고 그랬던 날을 떠올리시며 굳이 그렇게 해야 할 필요가 있나, 한 사람당 한잔씩 누려도 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하신다고 했다. 그렇게 우리는 인생의 일상에 대해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엄마집 뒷산으로 향했다.





엄마 집 뒷산은 높지도 않은 산책정도 할 수 있는 높이라 마음에 든다. 게다가 나도 요즘 들어 산에 와보고 싶은 마음이 컸기에 기분 좋게 따라나섰다. 슬리퍼를 신고 갔는데 뾰족뾰족한 밤송이들이 발톱에 가시가 찔릴까 작은 염려가 되었다. 엄마는 밤송이를 보고 밤 줍기를 하시며 신이 나셨다. 봉투를 가지고 올 걸 그랬다며 아쉬워하셨지만 청바지 앞 주머니가 터질 듯한 양을 가득히 담고 양손에도 가득 안으셨다. 밤을 주으시는 엄마의 모습을 보고 나도 따라서 한알 두 알 줍기 시작한 것이 적어도 50알 정도 주은 것 같다. 나 또한 바지 두 주머니에 한가득 담았다.





엄마께서 보물찾기 하듯 밤을 찾는 모습을 바라보니, 엄마의 어렸을  놀이였지 않을까 싶고  놀이를 함께 하고 싶은 대상이 이제 우리이지 않을까 싶다. 과거와는 다르게 명절 문화가 외롭게 변해가서 좋기도 하지만 아쉽기도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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