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가 언제 쏟아졌는지

깨통닭

마음이 헛헛한지 날씨가 쌀쌀해서 그런지 계속 배가 고프다. 쌀쌀해진 만큼 남편과 사이에서 냉기가 돈다. 평소엔 이러쿵저러쿵 여러 이야기로  매일 몇 번의 전화통화를 하는 남편이지만 여전히 냉탕에 들어가서 나올 생각을 하지 않고 있다. 주요 사건의 발단은 남편이 부탁한 것을 내가 들어주지 않았다는 이유 때문에 냉전이 시작됐다. 서로 지지 않으려는 동갑내기 부부라 그런지 유치하기 짝이 없다. 치킨을 고를 때도 서로 자신이 좋아하는 브랜드를 고집한다. 남편이 좋아하는 치킨은 내가 좋아하지 않고 내가 좋아하는 치킨은 남편이 좋아하지 않는다. 서로의 치킨 맛집을 권유하지만 달갑지 않다. 내 입맛에는 겉은 바삭하고 카레향이 나는 치킨을 선호한다. 내가 선호하는 맛의 치킨은 전주에 솜리치킨이라는 곳이다.     

이곳의 치킨은 옛날 통닭 느낌처럼 양이 푸짐하다. 치킨의 고소하고 바삭한 느낌의 치킨은 과자 같기도 하다. 치킨에 깨의 모습은 고소한 맛의 비주얼을 담당하고 있다. 특히 카레향이 은은하게 나는 부분은 잡냄새가 나지 않아서 좋다. 솜리치킨은 바로 먹어도 맛있고 시간이 조금 지나고 먹어도 맛있다. 치킨의 양이 푸짐해서 한 번에 다 먹지 못한 경우라도 냉장고에 넣어두고 다음날 꺼내서 에어프라이기에 돌려 먹어도 맛있다. 튀김옷의 바삭함과 닭의 조화가 환상적이다. 우리 부부의 조합도 환상적이어야 하는데 자주 삐끗거리게 된다. 이번 해는 우리 둘 다 바쁜 한 해였고 여유도 없었다. 그래서 자주 여행도 가지 못했고 제대로 가족끼리 시간을 보내지 못한 것 같다.     

이런 상황을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투덜거렸다. 올해 우리 가족 함께 여행도 안 가고 이게 뭐냐고 말이다. 이 일로 크게 서운한 맘은 아니었지만 나름 소통하고자 하는 투덜거림이었다. 그렇게라도 투덜거리니 좋았다. 우리가 부부로 지내는지 10년이 넘었고 하루 건너 하루 내 꿈에 등장하는 남편이다. 미워죽겠는 날도 좋은 날도 공존한다. 어차피 지나갈 냉탕이다. 오늘 저녁 치킨 맛집을 양보하지 못했지만 남편을 냉탕에서 끌고 나와볼 예정이다. 깨가 언제 쏟아졌는지 기억이 나질 않지만 나의 최애 깨 치킨과 무를 전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