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 박수남, 2017
다큐멘터리 영화 <침묵>은 오랜 기간 이어져 온 위안부 피해자들의 투쟁 과정을 경험담과 사진, 영상 등 다양한 기록을 통해 보여준다. <침묵>은 핸드헬드 카메라 기법과 인터뷰를 주로 사용하는 다큐멘터리의 형식을 보여주며, 실제 당시를 기록한 자료와 출연자들의 인터뷰를 사용해 영화에 현장감과 생생함을 더한다. 때로는 인물의 얼굴을 클로즈업함으로써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확대하거나 강조하기도 한다. 그러나 인상 깊었던 점은 작가의 설명을 덧붙임에도 불구하고 다큐멘터리에서 흔히 등장하는 내레이션은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인물에 대한 설명이나 상황에 대한 설명 등, 작가의 말을 통해 구체적인 설명이 자막으로 등장하는 부분은 내레이션을 포함해 비디제시스 사운드와 디제시스가 모두 제거된 정적의 상태에서 표현되며, 이는 인물의 경험담을 들려주는 장면과 같은 청각적 요소가 두드러지는 다른 장면들과 차별화되어 오히려 강조되는 듯한 인상을 준다. 침묵하고 있던, 혹은 어떠한 압력에 의해 묵인되었던 이야기는 영화 속에서 침묵의 방식을 통해 말해지고 분명해진다. 소리가 제거된 틈은 관객을 영화 속으로, 사유 속으로 유도한다. 영화 속에서 인물들의 이야기가 들려오는 동안 그들의 말을 쫓기 바쁘던 관객은 갑작스러운 정적과 함께 중요한 사실을 알려주는 정보인 자막과 정적인 화면만이 남자, 갑작스러운 상황에 당혹감을 느끼게 되며 무언가를 듣거나 말해야 할 것 같은 욕구를 느끼게 된다. 청각적 요소가 사라진 순간 속에서 갑작스럽게 결여된 틈을 느끼고 눈앞에 놓인 시각적 이미지들에 대해 사유할 기회와 시간을 얻게 되는 것이다. 끊임없이 인물의 말을 들으려는 청자, 즉 객체였던 관객은 정적의 순간을 맞이한 순간 많은 인파에 둘러싸여 있다가 한순간에 덩그러니 남겨진 듯한 허전함을 느끼며 그러한 허전함과 비어 있는 듯한 공백 속에서 무언가를 말하고 생각하고 듣고 싶은 욕구 싶은 느끼거나 호기심을 가지는 주체가 된다.
<침묵>은 위안부 피해자들이 피해 보상을 위한 투쟁한 기록을 보여주는 한편, 일본과 한국을 단순히 가해자와 피해자라는 이분법적인 관점으로 조명하지 않음으로써 어느 한쪽의 편에 서지 않는다. 영화는 계속해서 무산되는 약속과 투쟁하는 어르신들의 모습을 좇으며 무책임하게 역사를 덮으려 하는 일본 정부의 모습을 보여주려는 듯 하지만, 교복을 입는 학생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고, 학생들이 그것을 귀 기울여 듣는 모습을 등장시키며 그러한 정부 아래에서도 피해자들과 함께 투쟁하고, 위안부 역사에 관한 진실을 깨우치고자 하는 시민들도 있었음을 보여준다. 또한, 한국의 이야기를 할 때도 힘이 닿는 데까지 맞서는 위안부 피해자들과 그 사실을 기억하고 도우려는 단체도 있는 반면, 그들이 어떠한 일을 벌이든, 어떠한 보상을 받든 무관심하게 두는 사람들이 존재함을 드러내며, 두 국가 간의 잘잘못을 따지기보단 그를 둘러싼 권력과 이해관계, 위안부들의 삶에 더욱 집중하려는 태도를 보인다.
<침묵>은 어떠한 압력에 의해, 혹은 다른 어떠한 이유로든 그동안 침묵 되어왔던, 침묵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인물들의 말을 통해 사실적으로 생생하게 드러내며, 침묵의 태도를 취함으로써 우리가 이야기를 듣고 말하는 것에 동참하게 만든다. 또한, 이분법적으로 두 국가를 구분하지 않는 영화의 시선은, 관객이 재판관이 되어 상황을 바라보고 평가하게 하는 대신, 그를 둘러싼 관계 중 한 명이 되어 이야기를 듣고 함께 생각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