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의 평안을 빌 때 국회의원의 불행을 빈다.
작년 10월에 국회 국정감사에 갔었다. 보건복지위원회에서 내가 발언한 주제는 소아암이었다. 지방에 소아암을 치료할 수 있는 의사가 턱없이 부족함을 알렸다. 현재 전국에 69명뿐이고 이마저도 수도권 병원에 몰려있다. 울산만 하더라도 울산대학병원에 의사가 퇴직한 후로 소아암을 봐줄 의사가 없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치료받는 내내 응급상황이 생길까 봐 마음을 졸인다. 항암치료 중에 작은애가 저녁에 열이 올라 응급실에 간 적이 있다. 대구로 달려갔고 대학병원을 두 군데 가느라 밤을 꼬박 새웠다. 첫 번째 대학병원에서는 등록된 환자가 아니니 봐줄 수 없다 했고 두 번째 대학병원에서는 이번만 봐줄 테니 다음부턴 서울로 가라고 했다. 암담했다. 지방에 소아암 의사가 부족함을 체험했다.
작은애가 아프면서 '소아청소년 혈액종양' 진료과를 처음 알았다. 내가 만난 의사들은 실력으로나 인품으로나 훌륭하셨다. 의사의 소진이 염려될 정도로 환자 수가 포화 상태다. 담당의사의 평안을 빈다. 가파르게 줄어드는 의사와 전국 각지의 소아암 환자를 보며 걸릴 거면 빨리 걸리는 게 낫다는 생각까지 든다. 소아암은 완치율이 높은 편이라 우리나라 현실이 더욱 안타깝다.
가장 좋은 건 거주지에서 치료받을 수 있는 권역별 거점병원이 생기는 것이다. 자녀가 소아암에 걸리면 대부분 엄마가 하던 일을 접고 서울로 옮긴다. 이산가족이 되는 것이다. 1~2년간 집중 치료를 받기 때문에 장기전이다. 나처럼 자녀가 둘 이상이면 이산가족의 아픔은 더 커진다. 주말에는 집에 와 큰애를 살폈다. 치료비보다 교통비가 더 들었다. 평생 탈 기차와 지하철, 택시를 몰아서 탔다. 소아암 쉼터에서 지내 적은 비용으로 머물렀지만 월 30만 원의 주거비가 추가된다. 거기에 심리치료비도 무시 못 한다. 가족의 경제적 부담이 크다.
국정감사에 다녀오고 얼마 뒤 신문사에서 인터뷰 요청이 왔다. 여론이 확산되는 게 좋으니까 흔쾌히 응했다. 이후 언론에서 반짝 다루다가 수그러든 것처럼 보였다. 그러다 최근에 반가운 소식을 들었다. 7월에 '소아청소년암 필수의료체계 구축을 위한 정책토론회'를 연다는 것이다. 국회의원도 4명으로 늘었다. '대한소아혈액종양학회'에서 계속해서 목소리를 내주고 있다. 고군분투하고 계신 의사들께 감사하다. 정책토론회에서 실제적으로 와닿는 정책들이 나오길 바란다.
왜 지방에는 소아암 의사가 부족할까? 단순히 서울이 좋아서? 근데 왜 전체 의사 수도 줄지? 지금의 의사들이 물려줄 후배 의사가 없을 지경이 된 이유가 궁금했다. 안과나 정신과, 피부과에 지원하는 의사들이 많다고 들었다. 돈이 되니까 그렇겠지. 소아청소년과가 전체적으로 전망이 어둡다. 저출산이라서? 돈이 안 돼서? 둘 다인가 보다. 소아청소년과는 어린 환아 치료에 보호자도 상대해야 하니 이중으로 힘들다. 붓는 노력에 비해 수익이 적으니까 소아청소년과 인기가 없나? 특히나 소아암은 성인에 비해 3배의 자원과 시간이 요구된다. 상황이 이런데 슈바이처 정신이 없다고 의사 욕은 하지 말자.
지금의 저수가 구조를 바꿔야 한다. 국가 차원의 소아청소년암 필수의료체계 구축이 필요하다. 나라에서 애 많이 낳으라고 권하면서 막상 애가 아프면 봐줄 의사가 없어서 뚱줄이 탄다. 애가 자라면서 안 아플 수가 있나. 마음 같아서는 국회의원들의 손주들이 소아암에 걸렸으면 좋겠다. 의사의 평안을 빌 때 국회의원의 불행을 빈다.
"라떼는 말이야 소아암 걸리면 서울까지 가고 그랬어." 말하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