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희 이야기 4 - 행복의 순서

by 서유정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이 말은 그 시절을 살아낸 이들에게는 그냥 영화 제목이 아니었다. 속으로 몇 번이나 삼켰던 외침이자, 그 시절을 버텨낸 모든 아이들에게 건네는 작은 위로였다. 그 시절은 그랬다. 그것은 누군가의 가슴속에서 오래도록 응어리져 있던 말을 누군가 대신 꺼내준 것이었다. 이 제목의 영화가 세상에 나온 데에는, 오로지 성적 하나로 아이들의 미래가 결정되던, 그 숨 막히던 시절이 있었다는 사실이 배경처럼 흐르고 있다.


그 시절, 중학교 3년은 전쟁터였다. 아니, 중학교에 입학하던 날부터 시작된 긴 행군이었다. 고등학교에 가려면 입학시험을 봐야 했고, 그 점수가 일정 기준에 미달하면 야간 고등학교로 밀려났다. 명백한 낙인이었다. 그러니 그 시절의 교실은, 책상보다 긴장감이 먼저 자리 잡고 앉아 있던 공간이었다.

매달 시험이 있었다. 5월과 10월은 중간고사, 7월과 12월은 기말고사. 국영수사과는 물론 음악, 미술, 체육까지도 필기와 실기로 시험을 치렀다. 그 사이사이에도 월말고사가 있었다. 3월, 4월, 6월, 9월, 11월. 시험이라는 단어가 없는 달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았다. 국어, 영어, 수학, 과학, 사회 다섯 과목은 중요 과목이어서 매달 시험을 봐야 한다고 했다. 시험 보고, 정답 맞히고, 또 다음 시험 진도 나가고…

수업은 시험을 위한 예행연습이었고, 시험은 곧 인생의 성적표였다. 시험이라는 말이 너무 익숙해서 어느 순간, ‘사는 것’과 ‘시험 보는 것’의 차이를 잊고 살았다. 숨 돌릴 틈도 없이 반복되는 패턴 속에서, 우리는 점점 사람이 아닌 숫자가 되어갔다. 컴퓨터도 없던 시기에 그 많은 학생의 성적처리를 어떻게 다 했는지 정말 놀랍다.

고등학교 입학시험의 이름은 소위 연합고사라는 시험이었다. 200점 만점에 보통 140점 내외의 커트라인만 넘기면 서울 시내 고등학교에 거주지별로 추첨하는 방식이었다. 정작 학생들을 괴롭힌 것은 연합고사가 아니었다.

학교에서 시험이 끝날 때마다 전교 등수를 중앙현관에 대자보로 써 붙였다. 누가 잘했는지, 누가 밀렸는지, 모두가 다 알 수 있도록. 개인정보 따위는 길바닥 껌보다 우스운 시절이었다. 상위 십 프로 안에 드는 것이니 자랑스러워해야 할 것 같지만 그것이 꼭 그렇지만은 않았다.

인쇄된 것이 아니라 손으로 쓴 대자보에, 전교 1등부터 100등까지의 이름과 반, 총점이 일렬로 붙었다. 학교 중앙현관 한복판에. 등수는 곧 신분증이었고, 이름을 들킨다는 건 자존심을 까발리는 일이었다. 아이들의 순위표를 보고 가는 건 교사와 학생만이 아니었다. 지나가던 동네 아주머니들도, 심심풀이로 보다가 고개를 끄덕이고 갔다.

"어머, 누구네 아들 또 12등 했대."

그 한마디가 당사자에게는 칼날처럼 꽂혔다. 그 안에서 순위가 바뀌지만 백 등 언저리에 있는 아이들은 이름이 사라졌다가 생기기도 하고, 난리도 아니었다. 이게 당사자 입장에서는 보통 스트레스가 아니다. 공부를 조금만 게을리해도 전교 등수 몇십 개가 밀려났다. 우리 반에서도 종종 그런 일이 있었다. 성적이 조금만 떨어져도 전교 등수는 서른, 마흔 계단이 한꺼번에 밀렸다. 어깨를 펴던 아이가 하루아침에 눈을 바닥에 박고 다녔다.

사람은 참 묘한 존재라, 그런 대자보가 붙을 때마다 “안 봐야지” 다짐하면서도 결국 발걸음이 거기로 향했다. 누구는 고개를 숙이고, 누구는 희미하게 웃었고, 누구는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했다. 꿈이 뭐냐는 질문엔 연합고사 140점 넘는 것이라 말해야 했던 시절. 그 점수를 넘겨야만 고등학교를 갈 수 있고, 비로소 사람대접을 받을 수 있는, 참 이상하고 가혹한 시절이었다.

성적은, 마치 돼지고기 등급처럼 적나라하게 삶을 분류했다. 누가 어디에 속하느냐는 문제는, 그저 점수 몇 점 차이였다. 행복이고 뭐고 성적순으로 사람이 평가받는 세상이었다. 사실 사람이 너무 많아서 하찮게 여겨질 정도로 흔하디 흔한 존재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인간적인 입시제도 아래 모든 사람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연합고사의 커트라인을 넘겨야 고등학교를 갈 수 있었다. 비합리적인 조건이어도 원하는 사람이 넘치는 세상이니 어쩔 수 없었다. 그 소용돌이 속에서도 인간의 사랑은 꽃을 피우고 있었다. 누군가는 몰래 누군가를 좋아했고, 누군가는 말없이 누군가를 기다렸고, 그리고 또 누군가는, 한 생명을 품었다. 내 짝, 은정이. 그녀가 임신을 한 것이다.


처음 들었을 땐 믿기지 않았다. 사실 난 그때까지 ‘임신’이라는 말을 교과서로만 배웠다. 가정 시간에 배 속에서 아기가 어떻게 자란다느니, 출산 예정일은 마지막 생리 시작일 기준으로 몇 주째라느니… 그런 말들은 외웠지만, 그것이 진짜 현실이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성교육이라고는 제대로 받은 적도 없고, 동영상도, 잡지도, 유튜브도 없던 시절이다. 그냥 학교 다니다 보면 ‘뭔가 알게 되겠지’ 하는 막연함뿐이었다. 모두가 모르는 척했고, 때가 되면 저절로 알게 되는 그 무엇이었다. 누군가는 물론 너무 일찍 알아버렸다.

담임선생님이 말씀하셨다.

“은정이는 다음 주부터 학교에 나오지 않습니다.”

부모님이 자퇴서를 냈고, 결국 우리 반, 나중에는 전교생이 알게 됐다. 은정이는 수업 시간에 자주 졸았고, 늘 피곤해 보였는데, 나는 그저 공부하느라 피곤해서 그런 줄만 알았다. 눈치 없는 내가, 짝의 배가 부풀어 오르는 것도 알아채지 못했다. 너무 무심했던 걸까. 아니면 너무 어렸던 걸까. 나는 너무 무심했고, 그녀는 너무 조용했다. 그 작은 몸에, 작은 생명이 자라고 있다는 게 그저 믿어지지 않았다. 부모님 동의 하에 결혼할 수 있는 나이가 16세라는 것도 그때 처음 알았다.


점심시간, 은정이와 마지막으로 도시락을 같이 먹었다. 나이 어린 아기 엄마와 마주 앉았다.

“아기 낳을 수 있어?”

“아니, 좀 무섭긴 한데...., 오빠가 손 잡아 주기로 했어.”

“결혼할 거야?”

“응, 올 가을에 아기 낳고, 내년 봄에. 사실 지금 너무 행복해. 배 만져볼래? 아기가 움직인다.”

나는 조심스럽게 그녀의 배에 손을 얹었다. 정말로 아기가 꿈틀거리며 움직였다. 말로만 듣던 태동. 신기했다. 감격스러웠다. 5교시에 수학 문제를 풀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은정이는 졸고 있었고, 햇살은 그녀의 옆얼굴에 부드럽게 내려앉았다. 햇살을 받은 그녀의 옆모습은 무언가 신성하고 고요했다. 그 순간만큼은 그녀가 너무 아름다웠다. 마치 햇빛이, 그녀에게만 금가루를 뿌려주는 듯했다.

그 오후의 고요함 속에서 나는 삶이 가진 또 다른 얼굴을 보았다.

‘좋은 학교에 가는 것, 성적이 오르는 것, 다 중요하지.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함께 새로운 생명을 맞이하는 것, 그것도 또 하나의 삶의 정답일 수 있지 않을까.’

인생은 정답지 없는 실전 문제이다. 연습문제도 없다. 교과서에 나오는 대로 전개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다만 누군가와 함께 겪고, 웃고, 때론 울며 만들어가는 것이다.

며칠 후, 또다시 중앙현관에 중간고사 전교등수가 붙었다. 여전히 누가 몇 등인지 씌어 있었고, 여전히 아이들은 자기 이름을 찾았다. 하지만 나는 생각했다. 이번만큼은, 맨 위에 있어야 할 이름은 '고은정'이어야 한다고. 그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용기와 사랑으로 새로운 생명을 맞이한 사람. 세상은 여전히 성적순으로 돌아갔지만, 은정이는 누구보다 멋지게 살아냈고, 지금 이 순간에도 진짜로 잘 살고 있을 것이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고, 이 세상은 공부 잘하는 사람만 사는 세상도 아니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사랑하고, 아파하고, 살아간다. 조용히 그러나 단단하게 이 세상을 이끌어간다. 나는 그날 이후 여전히 그녀가 가르쳐준 것을 기억한다. 이 세상엔 성적표보다 중요한 것들이 분명히 존재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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