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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중국어인쌤 Aug 20. 2023

낮에 봐도 밤에 봐도 매력적.

션농지에(神农街), 츠칸로우(赤崁楼 ), 린바이훠(林百货),Day6(2)

 타이난에 4일 체류하면서 3일은 타이난 근교를 보면서 틈틈이 타이난 시내 투어를 하고, 1일은 까오슝(高雄)이나 소류구(小琉球) 섬을 갔다 오는 게 나의 계획이었더랬지. 그러나 현실은 타이난 근교에 나갔다 오면 지쳐서 시내 투어는 커녕 집에 오기에도 벅찼다. 그래서 오늘은 아예 시내 투어의 날로 정했다. 

 

 바쁜 아침을 보내고,  드디어 배낭을 메고 설렁설렁 밖으로 밖으로 나왔다. 숙소에서 조금만 가면 예쁜 골목으로 유명한 션농지에(神農街)가 나온다. 개성 있는 상점들이 많고 예쁘기는 하지만 오전에는 열지 않은 가게도 많고, 사백 미터 남짓 짧은 편이라 큰 기대하고 온다면 실망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하루를 시작하며, 가게 앞에 제단을 차려놓고 향을 피우고 기도를 하는 주인 아저씨의 모습은 이곳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일상을 보여주는 것 같아 인상적이었다. 

 짠내투어에서 박명수씨가 극찬을 했던 망고 빙수집 ‘이핀탕’(一品糖 일품당)으로 간다. 타이베이에서 과일 빙수에 실망했던지라 조심스럽게 물어봤다.

 “냉동 망고인데 맛있어요?”

 활기 넘치고 친절한 주인아주머니가 타이난에는 진즉에 망고 나왔다고, 냉동 아니라고 손을 내 저으며 대답한다.   

 “시우야! 이거 냉동 망고 아니래!” 

 둘이 마주 보며 신나 한다. 사실 한국에서는 냉동 망고도 없어서 못 먹는 2인이다. 추천해주는 200위엔의 망고 한 접시를 주문한다. 


 잠시 후, 그릇 가득 큼직한 망고와 푸딩이 올라가 있는 빙수를 가져다준다. 오우~ 비주얼 자체가 예술이다! 푸딩과 망고를 어느 정도 먹자 아주머니가 테이블로 와서 빙수 위에 뭔가를 마구마구 뿌려 준다. 100% 망고 원액이라고 한다. 빙수가 녹으면서 싱거워질 것을 고려한 특별 서비스인 듯. 

 두 명이 먹기에 충분한 양이라서 나눠 먹으려고 그릇 하나 더 달라고 했더니 투박한 쇠 밥그릇을 주시는데 완전 여기... 내 스타일이다!


 “여기 한국 텔레비전에 나왔어요. 한국 사람 많이 오죠?” 

 “우리 TV에 많이 나왔어. 한국인뿐만 아니라 다른 외국인들도 많이 와” 

 아주머니의 음성에서 자부심이 묻어난다. 오우. 글로벌 맛집이었구나. 

 “왜 지금 나왔어? 여기는 저녁이 돼야 볼 게 많은데. 숙소 어디야? 근처면 이거 먹고 좀 쉬다가 나와." 

 “방금 나왔는걸요. 하하”  

 다음 목적지는 ‘동선상’ 시우가 대만 오기 전부터 먹고 싶어 하던 오징어 쌀국숫집이다. 

 “엄마, 나 지금 배 안 고픈데?” 

 “오늘은 배가 안 고파도 먹는 날이야. 맛집 투어의 날.”

 가는 길에 시장도 있고, 대만 분위기 물씬 나는 예쁜 골목도 있고, 그 골목 안에 자연스럽게 자리 잡고 있는 작은 사당도 있어서 무료할 겨를이 없다. 이렇게 걷다 보면 길게 줄이 늘어서있는 곳이 보인다. 

 치우지아 샤오쥐엔 미펀(邱家小卷米粉). 가이드 북에서는 한 시간 대기는 기본이라고 해서 마음의 준비를 했는데 다행히 오늘은 그 정도는 아니다.

 식당 앞에 주인아주머니가 커다란 냄비에서 국수와 오징어를 삶으면서 동시에 주문도 받는다. 파를 넣을 것인지 아닌지 돈을 받으면서 칠판에 자석으로 척척 표시를 해 놓고 거기에 맞춰서 순서대로 접시에 국수를 담아준다. 달인의 아우라가 느껴진다.  


 또 다른 직원이 식당 옆에 다른 공간에도(사람이 너무 많아서 추후에 만든 것으로 추정되는) 자리가 있다며 한 명은 거기에 자리를 맡고 한 명은 줄을 서 있으라고 안내한다. 아. 마음에 드는 효율성. 말 잘 듣는 우리는 아들이 자리를 맡고 내가 국수를 가지고 가기로 했다. 


 통통하고 큼직한 오징어가 둥둥 떠있는 국수의 아름다운 비주얼. 두근두근. 먹어 봅시다. 냄비에서 오래 끓였을 텐데 오징어가 질기지 않다! 오징어 쌀국수라고 해서 베트남 쌀국수의 얇은 면발을 생각했는데 그것과는 달리 두툼한 면이 입안에서 똑똑 끊어진다. 자극적이지 않고 아이들이 먹기에도 좋은 맛이다. 

 “엄마 맛있어!” 

 배가 안 고파도 먹을 수 있지? 거봐. 국수 마니아 아들은 말할 것도 없고 나도 만족스럽다. 


 이제는 너무도 익숙한 츠칸로우(赤崁楼 적감루)로 간다. 타이난에 와서 처음 둘러본 것도 여기였고, 녹색터널에 갈 때도 츠칸로우 정류장에서 탔었기 때문에 익숙한 곳이긴 하지만 실제로 들어가 보기는 처음이다. 이 앞에서 맘을 졸이며 99번 버스를 기다렸었지.   

 

 츠칸로우는 타이완을 점령한 네덜란드가 행정센터와 무기를 보관할 요새의 용도로 지었다. 지진으로 파괴되었다가 복구를 하여 현재의 모습을 갖추었다고 한다. 

 입구로 들어가면 츠칸로우까지 넓고 푸른 풀밭이 펼쳐져있다. 아들은 들어가자마자 풀밭 위를 뛰어다니다가 직원에게 한마디 듣고 입을 내밀고 건물 안으로 들어간다. 안핑 요새처럼 높지는 않지만 계단을 개방해서 가장 높은 곳까지 올라가서 아래를 조망할 수 있었다.

 

 “엄마, 근데 대만에는 높은 데를 다 올라갈 수 있게 해 놓은 것 같아.” 

 “그랬나?”

 “엄마, 기억 안 나? 한국은 대부분 막아놓잖아” 

 그랬나? 이렇게 마음에 쌓아 놨던 걸 보면 아이는 올라가고 싶은데 저지되었던 적이 많았나 보다. 나는 문화재 보호 때문에 못 올라가나 보다 하고 그냥 지나쳤던 것이고. 이렇게 서로 다른 생각을 알아가는 것도 같이 하는 여행의 묘미. 


 츠칸로우에서 조금 이동하면 어제저녁에 감동하면서 봤던 린바이훠(林百货)가 나온다. 한국인들에게는 ‘하야시 백화점’으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1930년대에 지어진 건물인데, 보수를 해서 재 오픈 하긴 했지만 여전히 백화점으로 운영되고 있다. 밤에 조명을 켜 둔 모습도 멋지고 낮에 보는 모습도 그 나름의 고풍스러움을 갖추고 있어서 마음에 든다.  

 둘 다 쇼핑을 별로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밖에만 옛날 모습이고 내부는 그냥 보통 백화점이겠지’ 

 하고 그냥 갈까 하다가, 혹시 여기 캐리어 파는 곳이 있나 해서 들어가 보기로 했다.


 들어가는 순간. 와! 절로 탄성이 나온다. 안 들어왔으면 정말 아쉬울 뻔했다. 정말 그 시대에 들어와 있는 느낌이다. 밖에는 전차가 다닐 것 같고, 거리에서는 신여성을 만날 수 있을 것 같다. 음악도 그 시대의 일본풍 음악을 선정하여 틀어 놨고(‘오빠는 풍각쟁이야.’ 같은 느낌의 음악… 이랄까), 전시해 놓은 소품이나 가구가 너무도 잘 어울린다.

 복고풍 정점은 엘리베이터. 현재 엘리베이터의 위치가 시계처럼 바늘로 표시된다. 엘리베이터 앞에서 바늘이 움직이는 것을 한참을 쳐다보고 있으니 큰 메트로놈 같다. 저기에 탈 것이라 생각하니 설렌다. 한참을 기다려 탑승. 엘리베이터 수용 가능 인원이 다섯 명. 좁고… 느리다. 사람이 많으면 못 타겠다. 가장 마지막 층인 5층에는 커피나 식사를 즐기며 타이난 시내를 볼 수 있는 카페가 있다. 계단을 올라가면 전망대가 있다. 전망대를 가보려는데. 그런데 여기 변수가 생긴다.

 

 전망대 올라가는 계단 바로 앞에 옛날 놀이 체험 구간이 있었다. 구슬을 튕겨서 점수 높은 곳에 넣기, 제기차기, 딱딱 소리 내는 장난감, 던져서 나무망치 위에 공을 올려놓기. 손주들을 데리고 놀러 온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아이들에게 옛날놀이를 가르쳐 주며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이런 놀이들이 백화점의 옛날 콘셉트와도 너무 잘 어울리기는 하나 우리 아드님의 전진을 더디게 만든다. 눈이 동그래지며 하나씩 천천히 가지고 놀기 시작한다. 성공하는지 보라고 하고, 점수를 계산하라고도 하며 나에게 자꾸 미션을 준다.

 나는 전망대가 보고 싶은데... 혼자 전망대를 둘러보고 오겠다고 했더니 무척이나 즐거운지 눈길도 안 주고 그러라고 한다.


 서로의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끝이 나지 않을 것은 시간을 보내는 아들을 잘 구슬려서 내려갔는데. 이런! 4층에도 이런 옛날 놀이거리들이 잔뜩 있었다. 토끼를 세워서 볼링 치기, 돌로 이름 만들기 등등의 놀잇감에 다시 신이 난 아드님. 

 에잇. 화장실이나 갔다 오자. 오모~ 여기는 화장실까지도 사진 찍고 싶을 만큼 예쁘다. 아이가 무엇인가에 흠뻑 빠져 있을 때 함께 해줄 수 있는 엄마가 되면 좋겠지만 1시간이 지나가니 이제 그만 나가고 싶어 진다. 


 “시우야, 시우야~, 이제 가자~ 엄마 당 떨어졌어. 커피 먹고 싶어.” 

 “엄마 오늘은 커피를 안 마시는 날로 해봐. 몸에도 안 좋은데” 

 “……그럼 넌 푸딩을 끊을 거야?” 

 “잠깐만 이것만.” 

 에효. 그래. 놀아라, 놀아. 


 타이난 시내를 돌아다니다 보면 주요 관광지들 간의 거리가 좀 애매하다. 나 같이 걷기 좋아하는 성인이면 괜찮을 것 같은데, 아이와 걷기에는 조금 멀고, 택시를 타자니 가깝고, 버스를 타자니 정류장을 찾아야 하고(정류장을 찾아갈 시간에 차라리 목적지로 바로 가는 게 더 빠르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주구장창 걸었다. 타이난 거리와 건물이 신기하고 예뻐서 구경도 할 겸 계속 걸어가다 보니 ‘가벼운’ 시내 투어의 날이었는데, 그렇게 가볍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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