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먀오(孔廟), 신광미츠코시백화점, 하이안루, 션농지에, Day 6(3)
백화점에서 나와 공자님을 모신 사당인 콩먀오(孔廟공묘) 방향으로 간다.
공자님께는 죄송하지만 사실 콩먀오를 가고 싶다기보다는 근처 분위기 좋기로 소문난 골목인 푸중지에(府中街)에서 커피 한 잔이 간절했기 때문이다. 놀 때는 두 시간이고 세 시간이고 놀 수 있는 녀석이 걸어가자면 그렇게 힘들다고 한다.
가는 길에 선물처럼 발견했지만 멈출 수 없었던 우아한 타이난 시립미술관을 지나, 푸중지에에 도착했다.
아이와 내가 둘 다 만족할 만한 곳을 찾다가 발견한 하이양웨이펑(海洋微風 해양미풍) 카페. 포카리스웨트 느낌의 파랗고 하얀색의 입구, 동전을 넣으면 움직이는 놀이기구, 모래 놀이를 할 수 있는 공간까지 마련해 놓은 어린이 친화적인 카페이다. 내부에도 예쁜 소품이 많아서 눈이 즐겁고 친절한 주인아저씨는 우리가 필요한 게 없는지 연신 우리를 살펴본다. 아.. 여기야 여기. 나는 커피, 시우는 바나나 셰이크를 먹으면서 지친 다리를 쉬게 한다.
푸중지에에서는 비교적 한가로이 산책하며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벽화가 그려진 골목이 너무 예쁘고 개성 있는 예쁜 가게도 많고, 벚꽃까지 예쁘게 피었던 그곳을 아쉽게 빠져나오니 바로 앞에 콩먀오의 입구가 떡하니 나온다.
일부러 갈 생각은 없었지만 앞에 있으니 한번 들어가 볼까? 들어가려는데 아들이 주저주저하더니
“엄마 여기 좀 무서운 곳 아니야?”
“왜?”
“묘면 무덤이잖아!”
“그게… 묘라기보다는 공자님을 기리고 제사 지내는 곳이야.”
대답을 듣고야 그제야 좀 안심하는 겁 많은 아들. 피식 웃음이 난다.
이곳은 1665년 대만에서 최초로 지어진 공자 사당이라고 한다. 잎이 무성한 커다란 나무들에서 그 세월이 느껴진다. 콩먀오는 공원 같은 느낌으로, 곳곳에 예스러운 건물이 있다. 과거 학교였다는 명륜당 전면에는 한자로 빼곡히 뭐라고 쓰여있다.
“엄마, 저기 뭐라고 쓰여 있는지 다 읽을 수 있어?”
“엄마도 이런 옛날 글자를 다 알지는 못하지.”
엄마가 모른다고 좋아한.... 다?
한자에서 꾸역꾸역 자기가 아는 글자를 찾아내서 짚어 가며 크게 읽는다.
“엄마, 이거 사람인, 이거 아들 자”
그래, 그래. 대만 오기 전에 한자시험 7급 통과한 어린이였지. 기특해라. 뿌듯한 미소를 띠고 의자에 앉아있었더니 아들이 그 앞에서 큰 절을 한다. 왠지 절을 해야 할 것 같은 분위기라나. 지나가던 할머니가 시우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면 크게 웃으신다. 아. 여기서 이러시면 안 됩니다.
사당인 대성전만 유료로 입장이다.
딱딱한 공간 일 줄 알았는데 사람들이 쉴 수 있는 편안한 공간이다. 여행 중에 벤치에 앉아있는 이런 여유 너무 좋다. 콩먀오의 야트막한 담 너머로 학교가 있고 학교 옆에는 작은 운동장이 있다. 그 운동장에는 아들이 좋아하는 트랙이 있고, 트랙에서는 어르신들이 운동을 하고 있다.
“나 저기 갈래!”
무작정 담장을 뛰어넘어간다. 하… 옆으로 가면 문이라는 게 있단다.
“엄마, 엄마! 나 (한 바퀴 도는데) 얼마나 걸리는지 시간 좀 재 줘”
이미 트랙을 따라 한 바퀴 돌고 왔다.
“힘들지 않아? 힘을 좀 아껴 두지 그래?”
방금 전까지 다리 아프다고 하지 않았던가? 됐고, 동영상을 찍으란다. 그… 그래… 또 한 바퀴 달리는 트랙 러버.
시간을 재며 앉아있는 나의 눈에 들어온 것은 바로 커린 만두 집(克林台包극린대포). 저 귀요미 마스코트 언니! 모르고 그냥 봐도 범상치 않은 간판의 가게지만, 가이드 북 한 면을 차지하고 있는 유명 만두집이다. 봤으면 먹어야지. 잊고 있었어! 오늘 먹방 투어의 날이었지.
트랙을 한 바퀴를 또 뛰고 온 아들은 “엄마 심장이 엄청 빨리 뛰어” 그러면서 바닥에 눕는다. 그러니까 도대체 왜 뛰는 건데? 그러거나 말거나.
“시우야 근데 저거 만두집인데, 진짜 맛있대”
“그래? 맛있으면 먹어야지”.
찌찌뽕! 이럴 때 보면 정말 나랑 잘 맞아.
아들을 좀 진정시키고 길을 건너려는데 가게 앞에 뭔가 아이들이 잔뜩 몰려있다.
“혹시.. 재네도 만두 먹으러 가는 거 아니야?”
그 정도의 맛집인가? 설마. 다시 보니 하교시간인지 아이들이 줄을 지어 신호등이 바뀌기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그러고 보니 우리 옆에도 아이들이 줄을 서있네. 재잘재잘. 끊임없이 떠드는 귀여운 어린이들.
아이들과 함께 길을 건너 만두집에 도착. 매장에서 박스에 포장되어 있는 만두를 사가지고 갈 수도 있고, 카운터에서 갓 구운 김이 모락모락 나는 만두를 사가지고 갈 수도 있다. 우리는 돼지고기만두와 고구마 만두를 선택했다.
원래 숙소에 가서 좀 쉬려고 했는데 이미 5시가 되어 백화점부터 가기로 한다.
드디어 택시를 불러보자! 우버 택시가 좋다고 하기에 한국에서 다운 받아 왔었는데... 이런. 처음 사용하다 보니 설정이 아직도 한국으로 되어 있고, 손에 안 익고, 인터넷도 매우 느리다. 길거리에서 애는 옆에 있는데 또 핸드폰 보고 있으려니 선천적 기계치는 나는 머리가 지끈거린다. 에잇! 몸으로 부딪치자. 그냥 길에서 택시를 잡아보자. 그 많던 택시가 또 타려면 안 보이지. 큰길로 나가서 우리 쪽으로 오는 택시를 향해 손을 흔들고 아들은 또 춤을 춘다.
"캐리어 주세요!"
신광미츠코시 백화점(新光三越).
여성 가방을 파는 곳에서 물어봤더니 자기네의 작고 예쁜 캐리어를 보여준다. 언니… 우리는 그거 안 돼요. 큰 거 큰 거. 언니가 말해주는 방향으로 갔더니 그 유명한 샘소…, 스위스 십자가 그려진 애들… 있는 데가 나왔다. 오! 좋다! 그런데 갑자기 4만 위엔? 이제 50위엔, 100위엔 이 정도 환율 계산은 익숙해졌는데 갑자기 4만 위엔 이라니 머리가 하얗게 된다. 대략 40을 곱하면… 에잇. 이런 문과 브레인. 환율 계산기를 꺼내든다. 뭐? 170만 원? 급 작아지네. 좋기는 한데, 좀 둘러보고 올게요.
예상치 못한 지출에 비싸다고 징징거리는 엄마를 아들이 위로해 준다.
“우와~ 진짜 비싸다. 한국 돈으로 4만 원이면 좋을 텐데.”
“오 기발한데? 맞아. 한국 돈이면 정말 좋겠다.”
몇 군데를 둘러보니 8천 위엔 정도 되는 캐리어가 그나마 최적인 듯하다.
흑. 오래도록 잘 쓰면 되지, 남은 여행 가방 걱정하지 말고 재미나게 하면 되지. 스스로 위로하며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하여 가져갔던 카드로 결제했다.
“우리 여행 중인데, 살생각도 없었는데…”
엄한 판매원 언니에게 징징거렸더니 세금 환급을 받을 수 있다며 여권 있냐고 묻는다. 세금 환급? 여권? 호기롭게 복사본만 가지고 다니고 있는데요? 어딘가로 전화를 해보더니 실물 여권이 있어야만 세금 환급을 조금이나마 받을 수 있다고 한다. 실망한 내 표정을 보더니
“삼백 위엔 정도밖에 안 돼요.”
하며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한다. 그… 그런가? 언제 또 여기를 오겠어. 그런데 이 언니. 숙소가 어디냐고 물어보더니
“그 정도면 가깝네요! 영수증 줄 테니까 여권 가져와서 여기로 가세요!”
한다. 어? 가까운가? 귀가 팔랑팔랑. 빈 캐리어를 끌고 나오며 아들한테 이야기해 줬다.
“힘든데 그거 그냥 받지 말까?”
“얼마라고?”
“한 만 오천 원쯤 될 것 같다는데?”
“그럼 받아야지.”
쏘 심플. 엄마만 복잡하지. 우선 숙소로 가자.
백화점 앞에 대기하고 있는 택시를 타고 우선 숙소로 갔다. 오면서 보니까 정말 그렇게 멀지는 않다. 대충 걸음 빠른 어른은 후딱 갔다 올 수 있겠다. 숙소에 도착하니 거의 6시가 거의 다 된 시간. 우선 방에서 아까 산 만두를 나눠 먹는다. 어?! 맛있어! 금방 밥 먹으려고 두 개만 샀는데, 하나 씩 더 살 것을 그랬다는데 의견을 함께 했다.
그래도 먹으니 힘이 난다. 비싼 가방을 샀는데 환급을 조금이라도 받기로 마음먹었다. 나는 알뜰한 주부니까. 구글 맵으로 15분 정도. 머리가 아프니 타이레놀 하나 챙겨 먹고, 시우는 방에서 좀 있으라고 하고 혼자 나온다. 하루의 수미상관 구조. 뭔가 아침 빨래방 갔다 올 때와 비슷한 상황이긴 한데 밤이라서 아이를 방에 혼자 두고 나오는 마음이 더 불안하다.
“시우야 엄마 금방 갔다 올 게, 한 시간 안에 올 거야. 아무도 열어주지 마”
그러라고 하면서도 살짝 불안한지 한 시간 알람 설정을 해 놓는다.
6시 20분 출발! 길은 단순하다. 큰길에서 두 번만 꺾으면 된다. 반은 걷고 반은 뛴다. 나. 지금 대만에서 뭐 하고 있는 거지? 오늘은 가벼운 시내투어 날이었는데? 이미 2만 보가 넘었네?
가는 길에 가방가게를 발견했다. 대형 캐리어 가격을 살짝 확인하고 정신이 혼미해진다. 백화점의 1/3 가격. 반품을 잠시 고민하다, 더 열심히 안 찾아본 나를 원망하며 씩씩대며 백화점에 도착한다. 환급액은 300위엔 정도 된다. 에잇. 수수료도 받잖아.
후다닥 걸어 가려다가 백화점 앞의 버스 정류장을 발견한다. 10분 후에 집 근처까지 가는 버스가 온다. 타자. 머리를 써서 몸을 좀 편하게 해 주자.
가만히 정류장에 앉아있으려니… 건너편의 BCP란샤이투 원촹위엔취(BCP藍晒圖文創園區-블루문창원구)의 랜드마크인 파란빛으로 만든 집 모형이 길 건너편에 있는 게 눈에 들어온다. 낡은 목조 건물을 리모델링하여 만들었다는 복합예술문화단지. 오늘은 휴무라더니 조명은 켜두나 보다. 그 와중에 또 예쁠 건 뭐람. 어찌어찌 이렇게도 보게 되는구나.
버스 정류장에 내려서 숙소로 뛰어 들어간 시간 7시 10분! 한 시간 동안 충전이 되었는지 반색을 하며 반겨주는 아들이다.
“시우야! 엄마 빨리 왔지? 헥헥”
“와 엄마! 알람도 안 울렸는데 정말 빨리 왔네?”
엄마 정말 최선을 다 했어. 아들아.
두 번째 미션 클리어. 완전 클리어.
저녁 먹자, 헥헥.
타이난에서의 마지막 저녁. 타이난의 대표 메뉴 관차이반을 먹으러 숙소 근처 시장의 원조 관차이반(赤崁棺材板)집을 찾아갔다. 나 몰랐는데 ‘원조’ 정말 좋아하네. 시장 안에 위치해서 찾기 어렵다고 하더니 시장이 다 문을 닫아 활기가 느껴지지 않는다.
'시장은 문을 닫을 수 있지만 가게는 하겠지.'
여기가 맞는데… 문이 닫혀 있다!? 다른 문이 있나 찾고 있으니 옆에 있던 아주머니들이 오늘 쉰다고 알려 주셨다. 그리고. 두둥! 내일도 쉰단다. 서운한 마음에 혹시 다른 가게가 있나 해서 찾아보니 츠칸로우쪽에 있는 가게가 검색된다.
“시우야, 엄마 오늘은 거기까지는 정말… 못 가.”
“왜?”
… 왜냐니? 이 공감능력 떨어지는 아들 넘아.
“엄마 오늘은… 너무 힘들어”
“그래도…”
너무너무 아쉬워하는 아들을 달래서 후딱 눈에 보이는 노점 식당에 자리를 잡았다. 구웨이또우화(古味豆花 고미두화), 또우화 전문집 인가보다. 그렇지만 우리는 밥을 먹을 겁니다. 돼지기름밥(猪油饭)과 소시지 돼지기름밥. 오모. 대만에서 보기 드문 반찬도 주는 식당이다. 잘 골랐잖아? 별로 소시지를 좋아하지 않아서 그냥 볶음밥을 시켰는데 소시지 들어간 게 훨씬 맛있다. 결국 추가로 단품 소시지를 하나 더 시킨다.
“우리 소시지 맛있죠?”
한마디 하시는 주인아주머니의 의기양양한 표정. 네… 그렇네요. 몰랐어요.
길 건너편에서 버스킹 공연이 시작된다.
“엄마, 우리 자리 잘 잡았다.”
그러게, 길 건너 1열 관람이시다. 얼굴도 안보이고, 노래도 그렇게 잘하는 것 같지 않지만... 좋다, 좋아. 타이난의 밤이로구나. 소시지까지 있으니 맥주가 딱!이지만 참아야지.
낮에는 반팔을 입고 다닐 정도로 더웠는데 밤이 되니 썰렁하다. 아까 막 걸어 다니니 열이 나서 겉옷을 안 가지고 왔는데 생각보다 춥다고 했더니 아들이 진심이 담기지 않은 목소리로 자기 옷을 내민다.
“이거 입을래요?”
엄마는 괜찮다고 하니 매우 안심하는 표정이다. 귀여운 녀석.
"하이! 하이안(海安)!"
이핀탕 빙수집 아주머니가 말씀하셨던 것처럼 밤의 타이난은 정말 화려하고 매력적이다. 아침에 왔던 하이안루(海安路)도 밤이 되니 색색의 조명으로 불을 밝히며 낮과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홍등이 켜진 션농지에까지. 아침의 그 거리를 다시 한번 돌아본다.
벌써 타이난의 마지막 밤이라니 괜히 숙소로 들어가지 않고 뭉그적 거린다.
예쁜 밤거리. 두근두근.
친구들과 왔으면 이제 시작일 테지만 우리의 고군분투 하루는 여기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