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중국어인쌤 Aug 20. 2023

여행 중에 자꾸 미션이 생긴다.

타이난 시내: 빨래와 아침식사. Day 6(1)

 우선 오늘의 첫 번째 해결 과제 빨래. 

 

 여행 와서 빨래하기는 싫지만, 장기 여행 중에는 빨래거리가 쌓일 수밖에 없다. 중간중간 조금씩 하는 부지런한 성격도 아니고, 모아두었다가 빨래방을 이용할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시내투어를 하는 오늘이 바로 적당한 날인 듯하여 주섬주섬 챙겨본다. 여섯 번째 날인데 생각보다 많네. 


 배낭에, 종이백에 욱여넣고 난생처음 10분 정도 거리의 코인 빨래방에 간다. 세제는 자동판매기에서 살 수 있는데 나는 굳이 집에서 챙겨 왔다. 알뜰한 주부라며 스스로 매우 만족한다. 이것도 잠깐. 세탁과 건조가 동시에 되는 기계도 있었는데, 아무 생각 없이 세탁기에 넣고 시작 버튼을 눌렀다. 아우. 나중에 다시 건조기에 넣고 또 기다려야 하잖아. 한 번에 끝낼 수 있는 것을. 머리를 못 쓰니 몸이 고생하는구나. 


 빨래를 넣어두고 아침을 먹으러 근처의 또우나이종(豆奶宗)이라는 식당을 찾아간다. 허름하지만 맛집의 기운이 느껴지는 노점이다. 현지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불편한 의자에 앉아 로우쏭(肉鬆)*만두, 계란떡, 두유, 쌀 우유를 먹는다. 모두 무던하게 먹을 수 있는 맛. 역시 남이 해주는 밥은 다 맛있다. 

*로우쏭: 고기를 말려서 분말형태로 만든 식재료.

 밥을 먹고 다시 빨래방으로 간다. 이제 세탁이 끝나서 건조기에 넣고 보니 아… 표준이 없네? 얼마나 돌릴지 시간을 정해야 한다. 5분당 10위엔. 항상 집에서도 표준을 지향하는 나인지라 몇 분으로 정해야 할지가 이 순간 지상 최대의 고민거리가 된다. 제대로 안 마르면 또 기다려야 하는데… 

 건조기 옆에서 또 한참을 검색하여 중온-40분으로 하고 뒤를 돌아보니, 눈이 부은 머리 부스스한 어린이가 보인다. 빨래방 구석에서 어제산 장난감을 가지고 놀고 있는 아이가 왜 이리 짠한 건지. 


 끝날 때까지 기다리는 건 무리가 될 듯하여 우선 숙소로 복귀해서 침대에 빨래처럼 널브러져 쉰다. 서로 신경 쓰지 않고 있는 보내는 여유와 정적. 좋다. 아무것도 안 하는데 40분은 쏜살같이 흐른다. 아이 학교 갔다가 올 올 때처럼 시간이 잘 간다. 

 세탁물은 그냥 혼자 후딱 찾아와야겠다.  

 “엄마 빨래 찾으러 갔다 올게. 혼자 있을 수 있겠어?” 

 “응, 괜찮아.” 

 오? 어지간히 걷기 싫은지 차라리 혼자 있겠다고 한다. 


 대만에 온 후, 처음으로 가지게 된 짧은 분리 시간. 내 속도에 맞게 걸을 수 있으니 나쁘지 않네... 가 아니라 신난다. 그것도 잠깐.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불안한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방에만 있는데 별일이 있겠어.’ 

 맘은 그렇지만 발걸음이 점점 빨라진다. 


 다행히 빨래는 잘 말랐다. “중온-40분.” 잘했어. 칭찬해. 옷 보따리를 혼자 들고 걸어가려니 가려니 처음에는 괜찮았지만 점점 무거워진다. 갑자기 일손 하나가 아쉽네. 날씨는 점점 더워지고 등에서 땀이 주르륵 흐른다. 방에 도착해서 아이의 안전을 확인하자마자 빨래를 던져 놓고 다시 침대에 눕는다.

 오늘의 두 번째 해결 과제, 망가진 가방.

 어제 미뤄두었던 가방 문제를 오늘은 해결해야 했다. 서울에 있는 남편과 통화하면서 징징거리며 말했더니 남편이 단칼에 말한다.

 “당장 백화점에 가서 하나 사. 그리고 더 이상 고민하지 마, 시간 아까워”. 

 그래도, 백화점은 좀. 

 우리 숙소 직원에게도 도움을 요청해 본다. 

 “캐리어가 고장 났는데 여기 주변에 가방 가게 있을까요?” 

 “백화점에 가서 사세요.”

 하고 가까운 백화점을 알려준다. 백화점… 을 가야 하는 상황인가.

  

 그래! 이따 숙소에 들어오면서 하나 사자. 

 까짓, 가지 뭐 백화점.


 여행에서는 즐겁게 보내는 게 제일 중요하니까. 놀자 놀자!!


이전 17화 타이난의 운수 좋은 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