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수이, 스린 야시장, Day13(3)
어느덧 해가 해가 뉘엿뉘엿 저물어 간다.
일몰 맛집으로 소문난 단수이인지라 이미 많은 사람들이 강가를 따라 다닥다닥 자리를 잡고 있다. 위에서 점점이 보이는 사람들의 모습이 개미 같아 재미있다.
우리는 시크하게 일몰은 패스하고 갈 예정이었는데 교통 정체로 버스가 올 생각도 하지 않는다. 어쩌지? 그럼 우리도 일몰 보지 뭐. 남들은 시간 맞춰 오기도 하는데. 막상 이제 와서 자리를 찾아보려니 뷰가 좋은 식당, 커피숍 자리는 일찌감치 만석이다. 강변을 따라 천천히 걸어간다.
아이에게 자리 좀 찾아보라고 했더니 당당하게 자기가 봐둔 곳이 있다며 따라오라고 한다. 오! 믿음직스러운데? 따라갔더니… 강변에 배 묶어 놓는 말뚝을 가리킨다.
“여기 앉으라고? 그럼 난 어디 앉아?”
“엄마는 조~ 옆에”
“그럼 우리 이~ 만큼이나 떨어져서 앉아 있어?”
“좀… 그런가?”
“여기는 좀... 그렇지 않아?”
첫날 곱창 국숫집에서 길거리에 앉아서 먹으라고 했더니 눈망울이 흔들리던 우리 시우가 이렇게 여행에 적응했어요!
다행히 운이 좋게도 강가의 빈 벤치를 찾을 수 있었다. 근처 식당에서 오징어, 국수, 계란 전을 사 와서 먹으며 우리도 일몰 감상 대열에 합류한다.
"엄마, 저기서 사람을 그려줘!"
시우는 일몰 보다, 밥보다도 길거리 화가에게 푹 빠져서 그 앞을 지키고 서 있다.
음악을 크게 틀어 놓고 구경하는 사람 중에 한 명을 그려주는데 재미있는 것은 그게 누구인지 모른다는 것이다. 다 그리고 나서야 자신이 그린 사람을 앞으로 데리고 나온다. 보는 재미도 있고, 누구인지 맞춰보는 재미도 있고, ‘혹시 나?’ 하는 설렘도 있는 퍼포먼스다.
해가 지는 단수이 강과 아들을 번갈아 가면서 보고 있는데 갑자기 화가가 아들을 앞으로 데리고 나온다. 어? 깜짝 놀라 가방을 후다닥 챙겨 뛰어가는데 그 사이에 아들이 신이 나서 깡충깡충 뛰어온다.
“엄마! 저 아저씨가 나를 그렸어! 내가 아닌 줄 알았는데 나중에 보니까 나였어!”
그림은 가져가고 싶지만 아쉽게도 다시 그 위에 다른 그림을 그리는 찰나의 예술이라 가져갈 수 없다.
단수이에서 이런 재미있는 선물을 받게 되다니. 정말 깜짝 선물이다! 우리 안 가기를 잘했다. 멋진 선물에 대한 감사함의 표시로 약간의 돈을 넣고 왔는데 오더니 나에게 큰 소리로 말한다.
“엄마 그 사람 돈 되게 많이 벌었어. 모자가 가득 찼어!”
돈을 넣지 않을 수 없는 시스템이다.
어둑어둑 해지는 단수이가 참 좋다.
곳곳에서 하고 있는 버스킹을 들으며 느긋하게 움직인다. 아들이 야시장 갈 때마다 하고 싶어 했던 풍선 맞추기 게임도 하고, 고무줄로 하늘에 높이 쏘는 장난감도 사준다. 휘웅~ 소리를 내면서 반짝이며 하늘 높이 날아가던 LED 장난감이다. 아쉽게도 금방 고장 났지만 20분의 행복을 안겨줬더랬지. 날리면서 앞으로, 앞으로 조금씩 전진할 수 있었다. 원래 먹으려고 했던 대왕 카스텔라도 못 먹고, 유람선도 못 타고, 빠리 오징어 튀김도 못 먹었지만 괜찮다. 둘 다 컨디션 괜찮고 둘 다 즐거우면 다 좋지.
그렇게 느릿느릿 단수이 역에 도착한다. 낮에는 힘들었는데 저녁이 되니 오히려 기운이 난다. 일몰을 보고 귀가하려는 사람이 많았는지 단수이 역이 종점이었음에도 사람이 가득하다.
가는 길에 스린역을 지나가는데... 스린역에는 스린 야시장이 있지.
치즈 마니아인 우리가 대만에 오면 먹고 싶었던 것 중에 하나가 스린 야시장의 ‘왕자치즈감자’였다. 엄청나게 많은 양의 치즈가 녹아 있지만 느끼하지 않고 맛있다고 소문난 그 감자. 사진으로 보기에도 칼로리가 느껴지는 그 감자. 늦었지만 지나는 길이니 살짝 먹고 오기로 의견을 함께한다. 난 스린 역에서 내리면 바로 야시장이 있는 줄 알았지……
스린역에 내린 시간 8시경. 스린 시장이라고 되어 있는 사인을 따라서 가는데 너무 어둡다. 야시장이 이렇게 어둡다고? 방향을 틀어서 밝은 불빛이 있는 쪽으로 간다(불나방도 아니고). 혹시나 해서 지나가는 언니에게 물어보았더니 자기도 안 가봤다며 미안해한다. 주춤주춤 가는데 아까 길을 물어봤던 언니가 달려와서 숨을 헐떡이며 지도를 보여 줬다.
“이쪽 방향이 아니에요!”
그냥 갈 수도 있는데 끝까지 알려주는 친절한 대만 사람들. 한두 명이 아니다. 어떻게 그런 거지? 학교 다닐 때 이런 교육을 받는 건가? 궁금해진다. 여행자는 마냥 감사할 뿐.
어두운 주차장을 지나니 자동차가 다니는 번화하고 밝은 길이 나온다. 5분 정도 걸어가니 스린 야시장이 나오고 거짓말처럼 입구에 바로 왕자 감자 등장.
야시장에 왔으니 과일주스를 입에 하나씩 물고 구경을 시작한다. 거리 음식을 파는 곳이 있고, 옷, 액세서리, 기념품 등을 파는 곳이 있고 또 놀거리가 있는 곳이 있다.
“아.. 이걸 어떻게 설명해줘야 하지…”
마술 도구들 파는 곳의 주인아저씨가 아이가 중국어를 못 알아들으니 시범을 보이며 난감해한다. 하필 구경하는 사람도 아들 한 명이다. 옆에서 웃음을 꾹 참고 보고 있다가 아들손을 잡아끈다.
"나 저거 아는데.. 아는데...."
원래 스린 야시장은 타이베이에서 가장 큰 규모로, 지하도 있고, 우리가 갔던 곳 뒤편으로도 이어진다고 하나 우리는 체력과 시간의 한계로 이 정도에 만족하고 기대하던 치즈감자를 먹으러 간다. 줄을 서있으니 한글로 되어 있는 메뉴판을 보여준다. 시우는 보통 사람들이 많이 먹는 종합 감자가 아니라 파인애플 감자를 먹겠다고 했다. 감자와 파인애플의 조합은 그다지 맘에 들지 않았지만 네가 좋다면 한번 먹어보자.
와. 정말 치즈가 어마어마. 행복하게도 치즈가 줄줄 흘러서 먹기 불편할 정도다. 맛만 보고 나머지는 숙소에 가서 먹기로 하고 만족스럽게 스린 역을 떠난다.
“맛있네”
“오길 잘했다.”
숙소로 돌아와서 씻고 쉬려다가 당연히 있을 것으로 생각했던 시우의 요요우 카드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머리의 회로가 돌아가기 시작한다. 숙소에 없다고? 어제 2층 버스를 탈 때는 있었는데 그렇다면… 혹시 마사지할 때? 옷 갈아입으면서 떨어뜨렸을까?
“시우야 잠깐만 있어 봐.”
잠옷 위에 옷을 대충 걸치고 후다닥 나간다. 어제 숙소에서 가까운데 곳으로 가길 잘했다.
오늘도 만석인 마사지샵. 카운터에는 아무도 없고 여자 마사지사가 마사지를 하면서 나에게 무슨 일이냐고 묻는다. 오픈형이라서 안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나를 쳐다본다. 아. 민망하다.
“저… 기… 제 아들이 어제 여기 카드를 흘리고 간 것 같아요…”
“어제 아이와 같이 왔었어요?(끄덕), 어느 나라 사람이에요?”
“한국사람이요.”
마사지를 멈추고 나오더니 카운터 쪽으로 간다. 그러더니 한 번 더 물어본다.
“무슨 색깔이에요?”
앗! 있나 봐!
“분홍색이요.”
언니가 카운터에서 익숙한 모양의 카드를 꺼내며 싱긋 웃어준다.
“와~ 감사해요, 감사해요”
몇 번이고 인사를 하고 나온다. 분실물을 찾을 수 있다니. 대만 좋은 나라야.
편의점에 들러 그 요요우 카드로 맥주와 푸딩을 산다. 방에서 신경 쓰며 기다리고 있던 아들도 환호. 치즈감자와 함께 기쁨의 야식 파티를 한다. 감자는 듣던 대로 식어도 맛있기는 하지만 치즈 마니아도 두 개 먹기는 부담스러운데? 하나정도로 둘이 먹기에 딱 좋았던 것 같다.
내일은 아침 일찍 나갈 계획이라 어느새 이 사연 많은 숙소 와도 이별 예정. 추후에 절반정도를 환불해 줘서 하루 비용으로 이틀 묵은 셈이다. 여행경비에는 도움이 되었지만 그래도 창문이 없는 건 싫다. 숙소를 별로 중시하지 않거나 새벽 도착으로 잠깐 쉬었다 이동하는 숙소로 찾는다면 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