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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중국어인쌤 Sep 23. 2023

컨디션 난조.여행 중 엄마도 휴식이 필요해.

단수이 홍마오청(紅毛城 ), 위런카페, 쩐리(真理)대학, Day13(2)

 다시 스린역. 


 아침에 배불러서 잠시 미뤄두었던 떠 우화(豆花)식당에 간다. 떠우화는 부드러운 연두부에 토핑을 넣어서 달콤하게 먹는 대만식 디저트이다. 진열장에 있는 것 중에서 맘에 드는 것을 세 개, 손가락으로 가리키면 두부와 함께 넣어 준다. 팥, 젤리 다양한 토핑이 있다. 오~ 시원하고 달콤하니 맛있다. 팥빙수에 빙수 대신 연두부가 들어간 느낌이라고 할까? 시우는 몸에 좋을 것 같은 맛이란다. 

 이제 결정의 시간. 

 타이베이 근교의 단수이냐 시내의 101 타워냐. 지하철의 양 끝단이기 때문에 둘 다 갈 수는 없다. 펑리수 기념품 가게와 또우화 식당의 현지인들도 단수이를 추천하고, 두 군데 다 사람이 많다면 시내보다는 자연을 품고 있는 단수이에 좀 더 끌린다. 아이에게는 101 타워가 더 재미있을 것 같기도 하다. 지하철을 타는 그 순간까지 고민을 하다, 결국 단수이로 결정. 사람이 많아서 지하철에 자리가 없지만, 아들은 이제 자리가 없으면 대충 바닥에 알아서 앉는다. 


 20분 정도만 더 가면 되는데, 여행 십일 차가 넘으니까 나도 슬슬 몸에 무리가 온다. 몸이 물먹은 솜 마냥 무겁고, 고관절이 저려온다. 몸이 안 좋으니 기분이 좋을 리 없다. 만사가 귀찮은 컨디션 난조가 몰려왔다. 도착하면 앉아서 쉬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단수이에는 예상대로 사람들이 가득했다. 가게마다 앉을자리도 없고 편의점에서 음료수 하나 사려고 해도 줄을 길게 서야 한다. 우선 역 앞 공원에 털퍼덕 앉아서 아침에 산 펑리수를 뜯어먹으며 당을 보충한다. 앞쪽으로 초록의 풀밭과 강이 펼쳐져 있고 자전거 타는 사람에, 노래하는 사람, 이에 맞추어 춤추는 사람들 모두가 즐거운 표정으로 휴일을 즐기고 있다. 평소였으면 너무나 좋았을 그런 분위기가 내가 힘드니 시끄럽기만 하다. 자리를 옮겨야겠다.   


 버스를 타고 홍마오청(紅毛城 홍모성) 쪽으로 가볼까? 교통체증 때문에 버스도 느릿느릿 움직이는데 10분 정도 되는 그 잠깐 사이에 꾸벅꾸벅 졸았다. 

 “이제 내리자.” 

 아드님이 그림 그리느라 정신이 팔려서 “잠깐만!”을 외친다. 

 “아니 버스가 기다리겠냐고!” 

 욱! 해서 아이에게 소리를 버럭 지르니 주변의 대만인들 놀라서 쳐다본다. 아이코. 소리 지르는 한국인 처음 보셨죠? 내가 상태가 안 좋으니 감정 조절도 잘 안 된다. 그러고 나니 아이에게 미안하고 또 속상하고.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눈에 보이는 커피숍으로 무작정 들어가서 야외 2층에 자리를 잡았다. 다행히 강이 보이는 전망 좋은 커피숍이다. 커피값은 다른 곳에 비해서 다소 비싸지만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앉아있을 곳이 필요해. 둘이서 말없이 앉았는데 아이가 엄마 눈치를 보느라고 기죽어 있는 게 안쓰럽다. 어떻게 하지? 솔직하게 말하자.

   

 “시우야, 엄마가 지금 몸이 좀 힘들어. 그래서 짜증이 많이 나는 것 같아. 너도 내려야 하는데 안   내리고 있으면 어떻게 해. 버스는 너를 기다려 줄 리 없잖아. 엄마가 몇 번이나 말했는데 네가 움직이지 않아서 너무 화가 났어.” 

 “조금만 그리면 다 그리는 거라서 그랬어요.” 

 “다음에는 내릴 때는 바로 내려줘… 우리 사이좋게 지내자.” 

 악수. 사랑해 강아지. 

 같이 싸워도 아이는 빨리 풀린다. 항상 꿍하고 있는 건 철이 안 든 엄마다. 가만히 있으면 불안한 성격이라서 여행에서도 자꾸 직진만 하게 된다. 많이 보고 싶고, 많이 하고 싶고, 좋으니까 무리하게 되고 맘을 비우려고 하는데도 자꾸 실패하고 그러다 보니 이렇게 이쯤에서 브레이크가 한 번 걸린 듯하다. 한 템포 쉬어 가자.

  

 시우는 아까 그리던 그림을 마무리하고, 나는 커피숍에 있는 잡지를 보고 정리도 하며 각자의 시간을 갖는다. 약속한 것도 아닌데 서로 말도 시키지 않는다. 

 단수이 강변에 있는 예쁜 카페들 중에 우리가 얼떨결에 찾아가서 잘 쉬었던 위런카페(漁人咖啡), 어부커피숍. 음료수의 맛보다는 우리에게 쉼을 주었던 커피숍, 다른 의미로 기억에 남을 것 같다. 동그란 조명이 촘촘히 붙어 있는 걸 보니 밤에는 더 예쁘겠다. 위에서 내려다보니 강변을 따라 자전거 길이 잘 되어 있어서 자전거 타는 사람도 많다. 따릉이 같은 유바이크, 공유 자전거 시스템도 잘 갖춰져 있으니 시간이 되면 자전거 투어에 도전해 봐도 좋겠다.

 그런데 여기 한국 사람들에게 유명한 곳인가? 단수이가 한국사람들에게 유명한 것인가? 가게 내의 80% 이상이 한국인. 여기가 한국인지 대만인지 헷갈릴 지경이다. 


 한 시간이 넘게 앉아 있더니 우리 어린이는 어느덧 충전이 끝나고 잠깐 내려갔다 오겠다고 한다. 다다다~ 내려가더니 1층에서 “엄마!” 부르고 웃으며 힘차게 손을 흔든다. 언제 무슨 일이 있었냐 하는 해맑은 얼굴. 이런 얼굴 보려고 여행하는 건데. 다시 총총총 올라와서 엄마도 내려가보라고 하지 않았으면 더 좋았을 텐데. 으쌰. 움직여 볼까나.





 단수이에서 유명한 코스인 홍마오청(红毛城 홍모성)은 1629년 스페인이 대만의 지배를 하기 위해 설립한 기지로 포트 산도밍고(fort san domingo)라고도 불린다. 1867년부터 백여 년간은 영국의 영사관으로 쓰였다고 한다. 그래서 홍마오청에는 영국과 스페인의 느낌이 둘 다 있다. 홍마오(红毛)는 빨간 머리카락을 뜻하는데, 대만 사람들이 외국인의 머리색을 보고 그들이 거주하는 성이라 뜻으로 이렇게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오르막길을 가면 귀여운 영국 군인 모형과 멋진 건물이 우리를 맞아 준다. 미로 같은 요새의 내부도 재미있지만 군데군데 실제 사람크기로 만들어 놓은 동상이 아들 취향 저격이다. 동상을 찌르며 괴롭히거나 포즈를 따라 하며 즐거워한다. 


 요새 앞 잔디밭에서 뭔가 아들의 관심을 끌었는지 쪼그리고 앉아 한참을 들여다본다. 저기는 잠시 전진 불가 구역이다. 몸이 다시 경고하기 전에 릴랙스 하자. 아들이 보이는 곳에서 시원한 바람을 맞으면서 햇빛에 반짝이는 단수이 강을 내려다보며 앉아있는데 한참이 지나서야 아들이 나에게 뛰어온다. 


 “엄마! 여기 네 잎 클로버 같은 것이 있는데 이렇게 작아. 그리고 잎도 더 많아. 빨리 찍어줘. 신기하지?” 

 그래 그래, 홍마오청보다는 바닥의 이름 모를 풀이 더 재미있을 수도 있는 게 더 신기하다.

 옆 건물에서 당시 여기에 살았던 서양인들의 생활을 엿볼 수 있는 생활관이 있다. 거실, 침실, 아이들 방, 화장실, 유모가 기거하던 방 등을 가구와 함께 재현해 놓았다. 그들이 입었던 옷도 전시되어 있어, 그 옷을 입고 여기서 생활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눈앞에 그려진다. 드레스 입고 우아하게 차를 마시면서 단수이 강을 내려 봤겠구나. 



 출구로 나가서 오르막길을 조금 올라가면 ‘쩐리따쉬에(真理大學 진리대학)’가 있다. 오. 학교 이름이 대학교 이름으로 제격인데? 진리의 대학. 이름이 멋진 이 대학은 영국의 옥스퍼드 대학을 본 따서 만들어졌다고 한다. 영화 ‘말할 수 없는 비밀’에 나와서 유명해졌다는데 교문 모양부터가 예사롭지 않다. 교정도 참 예쁜데 교문이 굳게 닫혀있어서 사람들이 밖에서 서성거린다. 안에 관광객도 있는 것 같은데 그들은 어떻게 들어간 거지? 


 옆에 있던 대만 아주머니에게 물어본다. 

 “여기 어떻게 들어가는 거예요?” 

 “나도 처음 왔어요. 몰라요.”

 그냥 이렇게 지나가려는데 누군가 나가면서 문이 열리고 그 김에 얼떨결에 들어갔다. 들어오고 나서 문이 다시 철컹 잠겼다. 아까 그 대만 아줌마가 오더니 밖에서 어떻게 들어갔는지 물어본다. 

 "누가 열어줬어요. 제가… (열어드리려다가) 어? 안에서 열 수가 없어요!” 

 가만… 우리 나갈 수는 있는 거지? 어쨌든 들어왔으니까 나가는 건 나중에 걱정하지 뭐. 

 

 “엄마, 이거 봐 봐, 거북이야! 이거 찍어야 돼!” 

 고풍스러운 분위기의 교정이 영화 세트장 같다. 시우는 들어오자마자 연못으로 직진하며 거북이를 보고 흥분한다. 어렵게 들어와서 거북이라니. 아예 바닥에 배를 대고 누워 본격적으로 거북이 탐방부터 시작한다. 


 학교 안에는 학생보다 관광객들이 더 많은 것 같은 느낌이다. 

 연못의 한쪽에서는 너무나 귀여운 아가가 돌 위에 앉아서 칭얼대고 있다. 아빠가 카메라로 아기 사진 찍어주기에 열을 올리는데 아가가 영 비협조적이다. 그런데 연못을 따라 걷고 있던 시우를 보더니 아가가 울음을 뚝 그친다. 

 “아기가 네가 좋은가 보다.” 

 “그래?” 

 웃음 욕심이 있는 아들은 쪼르르 아기 옆으로 가서 이상한 표정을 지어 보이자 아기가 신기해서 쳐다보며 웃는다! 예쁜 교정에서 마주 보고 웃는 아이들이 그림 같이 예쁘다. 그 모습에 대만 아빠, 한국 엄마는 카메라 버튼을 누르느라 정신없다. 우리 오늘의 샷 하나씩 건졌네요. 하하하! 


 학교를 천천히 둘러보고 교문쪽으로 가니 교문 앞에 또 한 무리의 사람들이 모여 있다. 나가고 싶은데 나갈 수 없는 사람들. 나도 그 무리에 껴서 두리번두리번하고, 시우는 거미줄이 무성한 좁은 틈으로 나가겠다고 한다. 날씬한 너만 나갈 수 있겠구나. 엄마는 어쩌라고. 

 어디선가 또 학교 학생증을 가진 누군가가 짠! 등장하여 문을 열어준다. 저 사람은 누구였을까? 직원일까? 자원 봉사자일까? 학생일까? 궁금증을 가진채 우르르 사람들과 함께 밖으로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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