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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중국어인쌤 Sep 23. 2023

천등 날리기. 큰 행운 줄게, 작은 행운 다오?

핑시선 기차여행, 스펀(十分)에서 천등 날리기, Day 14(1)

 오늘은 타이베이 외곽에 위치한 스펀(十分)과 지우펀(九分)에 가는 날이다. 스펀, 지우펀은 대만 홍보 영상물에 단골로 등장하는 유명한 관광지다. 스펀은 불을 붙여 하늘에 날리는 천등으로 유명하고 지우펀은 일본애니메이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영감을 주었다는 홍등 계단 골목으로 유명하다. 대만을 잘 모르는 우리 오빠도 지우펀은 알고 있더라. 유명한 만큼 사람이 많고, 특히 지우펀은 사람이 많고 비가 오는 날은 ‘지옥펀’이 된다는 명성을 익히 들어서 대만의 연휴를 피해 일정을 잡았다. 


 타이베이의 외곽에 위치하는 주요 관광지인 예류, 스펀, 지우펀, 진과스는 ‘예스지’, ‘예스진지’라는 이름의 버스 패키지 혹은 택시 패키지로 많이 다닌다. 버스나 기차로 갈 수는 있지만 교통이 편하지는 않다는 말이다. 패키지는 별로 선호하지 않는 편이라(비록 남편은 내 일정이 패키지보다 힘들다고 했지만), 고민을 많이 하다가 떨어져 있는 예류는 과감하게 포기하기로 했다. 기차로 스펀과 다른 간이역도 들러보고, 지우펀에 가서 하루 숙박, 다음 날 진과스를 갔다가 다시 타이베이로 돌아가는 일정으로 정했다.

                                                                                      

 숙소에서 체크아웃을 하고 캐리어를 맡긴다. 지우펀에서 하루 숙박을 할 예정이라서 우리가 들고 다녀야 할 짐이 평소보다는 조금 무겁다. 

 “시우야 이 옷 우리 내일도 똑 같이 입어야 하니까 깨끗이 입어야 해” 

 “당연하죠!” 

 여행하면서 뻥만 늘었다. 과연? 믿고 싶은데 믿을 수 없는 현실은, 결국 현실이 되고 만다는.



 타이베이역에서 기차를 타고 뤠이팡 역으로 갔다. 

 핑시선을 타는 뤠이팡 역 플랫폼에 서니 시간이 한 30분 정도 남았다. 급하게 나오느라 아무것도 못 먹었는데 편의점에서 뭐라도 먹자. 

 “내부에 편의점 있나요?” 

 밖으로 나가야 하는데 우리는 티켓이 있으면 나갔다 와도 된다고 하시면 바로 뒷문을 열어 준다. 

 

 막간을 이용해서 뤠이팡 역 주변 구경을 하게 되었다. 역을 나가 편의점까지 가는 길에는 대만의 정겨운 골목 길이 펼쳐져 있다. 기대하지 않았던 여정. 바람은 살짝 불지만 하늘은 파란, 여행하기 좋~은 날씨다. 음료와 간식거리를 사가지고 돌아왔더니 인기 많은 노선답게 어느새 플랫폼에 사람들이 많아졌다.  


 한국 지하철과 비슷하게 생긴 핑시선 기차를 타고 간다. 숲이 펼쳐지고, 손이 닿을 정도로 가깝게 나무 옆을 지나간다. 마치 숲을 뚫고 달려가는 것 같다. 가만, 이거 산림열차잖아? 기분 좋은 여행길이 펼쳐진다. 


 혹시라도 시간이 부족할까 봐 가장 유명한 스펀부터 간다.  

 스펀역에서 내린 사람들이 모두 한 방향으로 우르르 나가고 천등 날리기를 시작한다. 우리도 가려는데…  

 “엄마 급해!” 

 그렇지. 메인 길에서 다소 떨어져 있는 화장실부터 간다. 화장실 옆에는 마을 회관이 있는데 동네 어르신들이 한창 체조를 배우고 있다. 우리도 문 앞에서 서서 살짝 따라 해본다. 스펀에서 체조 한 사람 있으면 나와보라고 해! 


 조금 가다가 보니 엄마는 아침을 못 먹은 아들이 걱정된다. 밥부터 먹자. 체계적이지 않은 우리 투어. 다시 길을 돌아와 스펀의 시그니쳐 메뉴인 닭날개 볶음밥을 먹어본다. 닭날개에 밥이 들어가 있어서 속이 든든해진다. 닭고기를 핫도그처럼 만들어 놓은 닭고기 말이도 먹어본다. 스펀도 한국인들이 많이 찾는 곳이라 기본적으로 한국어 메뉴가 있고 음식은 대체로 우리 입맛에 잘 맞는다. 닭고기는 언제나 옳다.

 

밥을 먹으면서 사람들이 천등 날리는 것을 관찰한다. 우리는 어디서 천등을 날리는 게 좋을까? 기찻길을 중심으로 해서 양쪽으로 비슷한 가게들이 늘어서 있다. 다른 관광객들이 사진에 안 나오고 예쁘게 나오려면 아무래도 가장 끝에 위치한 가게에서 천등을 날리는 게 좋을 것 같다는 개인적인 결론을 내렸다. 다시 입구 쪽으로 이동. 동선이 엉망진창.


 천등도 색깔에 따라서 가격이 다르다. 처음에는 한 가지 색으로 하려고 했는데 또 주인언니가 빨간색은 뭐고, 하얀색은 뭐고… 이렇게 설명을 해준다. 단색 200위엔, 4색 250위엔. 귀 얇은 엄마. 기왕 하는 것 다양한 색으로 하지 뭐. 등을 고르고, 붓에 먹을 묻혀 네 면에 시험 관련, 재물 관련, 건강 관련, 미래 관련 문구를 적는다. 생각보다 등이 커서 큼직하게 쓴다. 

(빨강:건강 / 보라:학업 / 노랑:금전 / 파랑:순리 / 분홍:애정 / 흰색:건강 / 녹색:진급 / 주황:행운)


 “시우, 민서, 호현(곧 고3이 되는 우리 조카) 시험 대대박”- 학업

 “우리 가족 돈 많이 벌게 해 주세요” - 금전

 “우리 가족 건강하게 해 주세요” - 건강

 “우리 모두 행복할 거예요”  - 미래


 정말 단순, 평범한 문구지만 쓸 때는 붓을 들고 무슨 과거 시험 보는 듯 고심해서 썼다. 정말 이 문구대로 이루어졌으면 하는 바람을 담아서. 


 이제 천등을 올릴 차례. 바람이 많이 불어서 세워놓기도 쉽지 않다. 등의 아래쪽에 불을 붙이고 “하나 둘 셋!” 손을 놓으면 두둥실 하늘로 날아올라가는 천등. 괜히 찡해지는 아줌마다. 우리 소원이 꼭 이뤄지게 해 주세요. 우리 가족 모두 모두 행복해요. 

 이런 아름다운 해피 엔딩.일리가 없지.

 시우가 하늘 높이 날아가는 천등을 동영상으로 찍으면서 하늘만 보고 앞으로 걷다가 제법 깊은 물웅덩이에 한쪽 발을 푹 담가버렸다. 청바지 밑단까지 푹 젖어 버렸다. 비 올까 봐 챙겼던 크록스는 타이베이 호텔 짐 안에 고이 모셔져 있지요. 


 이런 관광지에 과연 어린이 신발을 파는 곳이 있을까? 천등을 날리자마자 이런 불행이 찾아오다니. 주인아줌마가 안타깝게 쳐다보며 기념품 파는 가게에 가보라고 한다.

 운동화를 철벅거리며 기념품 가게로 갔더니 슬리퍼 같은 것이 보인다. 어린이 신발은 없고 주인아줌마가 어른 신발 중에 제일 작은 것으로 주었다. 선택의 여지가 없다. 아들은 헐렁한 신발을 신고, 한쪽 바지를 걷고, 핑크색 비닐봉지에 젖은 신발을 넣어 달랑달랑 들고 다녔다. 나중에는 조금이라도 더 마르라고 가방에 신발 한 짝과 양말을 달아 주었다. 나름 배낭 여행자 같고 귀엽네. 

 삼십 분 정도 거리에 있다는 스펀 폭포를 보러 가자. 어떤 사람은 10분이면 다 본다고 해서 스펀(10분) 폭포라고 한다고도 하지만 여행자는 직접 가서 느껴봐야 하지 않겠어? 가는 길은 닭들이 울어 대는 시골길이다. 

 “'시우야!’ 이렇게 우는 것 같은데?” 

 “아닌데 ‘혜연아~!’ 이건 거 같은데?” 

 “'시우야, 사고 좀 치지 마~’그러는데?” 

 뒤끝 있는 엄마다. 


 이런 시시껄렁한 농담을 하면서 가는데 이번에는 내가 배가 아프다. 

 경찰서에 들어가려 했더니 경찰아저씨가 코로나 때문에 들어오면 안 된다고, 편의점으로 가라고 한다. 아저씨. 민중의 지팡이가 너무 하십니다. 애는 그 와중에 샌들에 모래 들어간다고 짜증 내고. 바로 가면 되는 폭포를 우리는 또 돌아간다. 등을 날리고 자꾸 번거로운 일이 생기네. 큰 운이 생기는 대신 작은 운은 없어지는 건가? 


 살짝 돌아가기는 했지만 가는 길이 다채롭다. 작은 폭포도 있고, 무시무시한 흔들 다리도 있는가 하면, 쉴 수 있는 그네도 있다. 그리고 정말 코앞에서, 머리 위에서 기차가 지나가는 것도 볼 수 있다. 기차 좋아하는 친구들은 너무 좋아할 듯하다. 

 이렇게 보고 느끼면서, 먹으면서 쉬면서 가다 보면 예상시간 삼십 분이 훌쩍 지나간다. 예쁜 산책길을 따라 걷다 보면 스펀 폭포에 도착. 

 아이고 시원해라. 그렇게 큰 폭포는 아니지만 폭포가 쏟아지는 소리를 들으며 폭포를 멍하니 쳐다보고 있노라면 여기까지 걸어온 게 하나도 아깝지 않았다. 

 “엄마! 무지개!” 

 아이는 폭포에서 무지개를 발견하고 신나 한다. 폴짝폴짝 폭포 주변을 뛰어다니는 아들. 조심하자. 


 아이스크림을 먹으면서 다시 스펀 역으로 간다. 해가 내리쬐는데 패딩 옷을 주섬주섬 입는다. 

 “왜? 추워?” 

 “아니, 아이스크림은 이렇게 덥게 하고 먹는 거야.” 

 한참 패딩을 입고 가다가 안 되겠다 하더니 다시 벗는다. 아들아 나는 너의 정신세계를 이해할 수 없구나. 지나면서 경찰서를 한번 째려보고 스펀 역 쪽으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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