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베이 근교. 지우펀(九分), Day 14(3)
모를 때는 인포메이션 센터.
아침의 뤠이팡 역에서 지우펀 가는 버스로 갈아타야 한다. 어디서 타야 하는지는... 인포메이션센터에 물어보자. 역시나 준비되어 있는 지도와 친절한 설명. 버스 노선까지 한국어로 친절하게 적혀있다.
버스에 올라타며 늘 하듯이 내가 가야 할 목적지를 외친다.
“지우펀 파출소, 지우펀 폴리스스테이션 가나요?”
기사아저씨는 “가요”, “안 가요” 도 아니고 도착하면 알려주겠다고 무심하게 툭 말씀하신다. 어머, 아줌마 설레게.
버스를 타고 가다가 어느 순간 길을 꺾으면 빨간 불빛이 켜진 모두가 “와!” 하고 감탄하는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진다. 너무 가보고 싶었던 곳이라 기대가 되어 심장이 두근두근하다.
써니룸은 뷰 좋은 지우펀 숙소로 한국인 카페에서 꽤나 유명한 곳이다. 버스에서 내려 계단을 내려가야 하는데, 캐리어를 들고 왔다면 꽤나 힘들었을 것 같다. 조금은 황량한 계단을 내려가는데, 이 길이 맞나? 싶을 때마다 숙소를 가리키는 팻말이 보인다.
도착하니 유쾌한 호스트님이 오늘 체크인하는 마지막 손님이라며 맞아 주신다.
방도 넓고 뷰가 정말 좋다. 창문 없고 좁은 방에 있다가 여기 오니 궁궐이구나. 열 수 있는 창문은 아니지만, 그야말로 액자 뷰다! 다만 창문 앞에 사람들이 왔다 갔다 해서 커튼을 계속 열어 놓을 수 없는 부분은 아쉽다. 다음에는 2층을 노려보자. 욕실 바닥은 돌을 활용해서 만들어 놓았는데 시우는 지압이 되는 욕실이라며 좋아한다.
젖은 신발이 거의 안 말랐다. 고전적인 방식으로 신문을 넣고 말리려는데. 앗! 방에 너무너무 반가운 제습기가 있다. 역시 여행 중에는 제습기가 최고! 깨끗하게 입겠다고 약속했지만 이미 꾀죄죄 더러워진 시우 티셔츠도 빨 수 있겠다!
오늘의 마지막 일정. 지우펀 라오지에로 간다. 숙소에서부터 버스를 내렸던 정류장을 거쳐 다시 쭈욱 올라가면 바로 그 유명한 수치루가 나온다. 지우펀 최고의 하이라이트를 지우펀 투어를 시작하자마자 만났다.
붉은 등이 켜진 길이 정말 환상적으로 아름다운데 가파른 계단이 만만치가 않다. 다리가 너무 아프다고 투덜거리는 아드님. 다리는 아파도 눈이 행복하잖니.
우선 식사할 곳부터 찾아보자. 그런데 많은 상점이 이미 문을 닫았고 닫고 있다. 혹시 연휴 다음날이라서 많이 쉬는 거냐고 물었더니 7시가 넘으면 원래 문을 닫는다고 한다. 지우펀은 야경이 메인 아닌가? 문을 왜 이리 빨리 닫지? 급히 열려 있는 식당 중에서 맛있어 보이는 곳을 스캔해서 들어간다.
‘찐쯔홍조로우위엔(金枝红糟肉圆)’ Since 1994 이라는데 1994년부터 면 이제 오래된 식당에 들어가는 건가 보다. 암튼 따뜻한 완자탕에, 대만식 미트볼이라고 하는, 로우위엔(肉圆)을 주문한다.로우위엔은 겉이 매우 쫄깃쫄깃하고 안에 만두처럼 소가 들어가 있었는데 막 베어 물면 뜨거운 즙이 나와 입을 델 수 있으니 조심해야겠다. 약간 느끼해서 내 스타일은 아니지만 시우는 맛있다고 했다. 나중에 타이완 관광책자에서 지우펀 추천 맛집으로 등재되어 있는 걸 보고 아들이랑 엄청 반가워했었다.
천천히 둘러보기에는 전반적으로 폐장 분위기에 쓰레기 차가 좁은 골목길을 누비고 있다.
처음에는 자동차 후진할 때 나는 멜로디 소리가 계속 들려서 이게 무슨 소리인가 궁금했는데 그건 바로 쓰레기 차의 등장을 알리는 소리였다. 차기 천천히 지나가면 가게 주인들이 사방에서 쓰레기를 들고 나와 차에 던진다. 여기저기서 커다란 쓰레기 봉지를 들고 나와 던지는 모습이 한국에서는 볼 수 없는 진기한 풍경이라 벨 소리만 나면 우리는 고개를 번쩍 들고 “쓰레기 차다!” 하고 달려가 구경하곤 했다.
오늘의 마지막 하이라이트인 아메이 차관으로 간다. 입구와 건물 자체가 화려해서 지우펀이나 대만을 소개하는 영상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곳이다.
아메이 차관은 영화 ‘비정성시’의 배경으로 유명세를 탔고, 일본 애니메이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배경인 온천장의 모티브가 된 곳이고, 또 한국인에게는 드라마 ‘온에어’ 촬영지로도 유명하다고 한다. 내가 본 건 ‘센과 치히로’ 뿐이지만, 사실 아무것도 안 봤어도 그 자체로도 충분히 구경할 가치가 있다. 건너편의 하이위엔로우 찻집의 명성은 아메이차관에 살짝 밀리지만 사실 아메이차관과 수치루를 두루 굽어볼 수 있는 위치라서 인기가 많다. 그런데 영업 종료로 입장 금지 라인이 쳐 있다. 입구 앞에서 구경하는 것 정도는 허용해 준다. 아… 지우펀의 워라벨이 원망스럽다.
이제는 붉은 등불을 뿜어내는 아메이차관 안으로 기세 좋게 들어간다. 입구의 주인아저씨가 인당 300위엔인 우롱차를 마셔야 한다고 안내해 준다.
“아이도요?”
레몬티 같은 것을 먹으면 되는데 가격이 200위엔 정도 한단다. 와! 저녁도 아니고 방금 버블티까지 마셨는데 500위엔이라니. 차 별로 안 좋아하는데… 잠시 망설이다 뒤돌아 계단을 내려가는데 자꾸 돌아보게 된다.
“좀 아쉽다."
“뭐 여행 왔는데 아쉬우면 해 봐야지.”
아들의 한마디. 내가 딱 지금 듣고 싶었던 말이다. 그 어느 명언보다 감동적으로 다가온다.
‘그래, 내가 언제 여기 또 오겠냐. 아쉬우면 해봐야지. 고마워 아들!’
다시 아이 손을 잡아끌고 가파른 계단을 올라가서 외친다.
“아저씨 저 다시 왔어요!”
직원이 수치루와 멀리 바다가 굽어 보이는 멋진 야외 자리로 안내해 준다. 보통 2층의 이런 좋은 전망 자리에 앉기 힘들다는데 우리는 운이 좋다. 바람이 약간 쌀쌀했지만 풍경도 아름답고 분위기도 좋고. 그냥 다 너무 좋았다. 가지 않고 돌아와서 정말 다행이었어....
여행이 거의 끝나가는 시점이라서 지난 대만 여행을 돌아보며 아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도 가질 수 있었다.
“그때는 우리 거기 갔었잖아.”
“맞아! 그거 맛있었는데. 근데 엄마가…”
의도치는 않았지만 지우펀 일정을 거의 마지막으로 정한 과거의 나, 매우 칭찬해.
직원이 아이는 안 시키고 내가 주문하는 우롱차를 같이 먹어도 된다고 해서 한층 더 기분이 좋아진다.
직원이 다기 세트를 가져오더니 어떻게 먹어야 하는지 설명해 준다. 뜨거운 물로 다기를 씻어내고, 주전자에 우롱차 1/3 정도를 채우고 뜨거운 물을 넣고 마시면 된다. 다섯 번을 우려먹을 수 있는데 향을 맡고 처음에는 15초, 다음번 우릴 때에는 20초, 25초… 점점 차를 우리는 시간을 길게 해야 한다. 밑에 진짜 화로가 있어서 물을 계속 따뜻하게 데울 수 있다.
간단한 다과도 함께 나와서 아들이 매우 좋아했다. 찻잔으로 짠! 을 하고 우롱차를 배부르게 마신다. 사실 이 타이밍, 이 분위기에는 맥주가 딱인데.
더 오래 있고 싶은데 불안하게 자꾸 옆에서 청소를 한다. 사장님! 얘네 보래요! 몇 시에 문을 닫냐고 물어봤더니 9시 30분에 문을 닫는다고 한다.
“수치루의 홍등은 언제까지 켜져 있나요?”
“저희 찻집이 문을 닫으면 꺼져요. 저희가 여기서 지우펀에서 가장 늦게 닫아요.”
깜깜해지기 전에는 가야겠다.
마감 시간이 되기 전에 나와서 아쉬운 마음으로 천천히 내려온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북적거렸던 사람들이 거짓말처럼 순식간에 사라지고, 이 붉은 등의 고요한 골목은 또 다른 매력적인 분위기를 뿜어낸다. 비현실적인 한적함. 너희도 오늘 수고했어. 좀 쉬어.
그때 이 분위기를 깨는 아들의 한 마디.
“엄마. 나 화장실”
“야! 찻집에 있을 때 갔어야지!”
하나마나한 말을 하고 뛰어내려 간다.
하…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야밤에 이 한적하고 멋진 지우펀에서 뛰고 있는 우리라니. 시트콤의 한 장면 같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