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우펀. Day 15(1)
여행이 끝나가는 게 아쉬워서였을까.
밤에 3시에 깨서 쉬이 잠들지 못하고 멍하니 있다가 5시가 넘어서야 다시 잠들었다.
여행 중에 이런 적이 한 번도 없었는데.
원래대로였다면 오전에 지우펀에서 진과스로 넘어가는 일정이었는데 어제 너무 늦게 와서 지우펀 거리의 모습을 제대로 못 본 게 아쉽다. 지우펀 유명 먹거리도 못 먹었는데. 여행에서 아쉬우면 하라고 김시우 선생이 그랬다.
출국하기 전 마지막 날이니 지인 선물은 지우펀의 기념품 샵에서 사도 좋을 것 같다. 짐이 많으면 들고 다니기 번거로우니 진과스는 살짝 패스하고 밝은 지우펀을 좀 더 즐기다 타이베이로 넘어가자. 음… 그리고… 대만의 대표식당인 ‘딘타이펑’에 가서 샤오롱빠오를 먹고, 타이베이 야경을 좀 즐기다 마지막으로 까르푸에 가서 쇼핑을 하면. 퍼펙트!
그런데 완벽하리라고 생각했던 이 날이 이번 여행에서 가장 힘든 날이 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숙소는 저녁 뷰도 좋고, 아침 뷰도 너무 좋다. 아침은 숙소에서 조식을 먹기로 했다. 빵, 토스트, 샐러드, 차로 구성된 아침식사는 인당 100위엔이라는 합리적인 가격이다. 식사는 각자 테이블로 서빙되고, 호스트님이 돌아다니면서 화로에서 끓인 차를 손님들의 찻잔에 일일이 정성스럽게 따라 준다. 차 맛은 잘 모르지만 갓 끓인 차향이 좋다. 올해 마실 차는 지우펀에서 다 마시는 것 같다.
식당에도 고양이와 강아지가 너무나 자연스레 돌아다니며 쉬고 있다. 아들은 밥도 먹어야 하고, 화로에서 물 끓는 것도 구경해야 하고, 고양이랑 강아지를 따라다녀야 하기도 하고 아침부터 분주하다. 너무나 평화로운 아침 풍경. 정말 위치도, 분위기도 좋아서 다시 한번 오고 싶은 좋은 느낌의 숙소였다.
아쉬운 작별을 하고 다시 씩씩거리면서 가파른 오르막길을 올라간다. 아침의 지우펀 거리는 홍등이 켜져 있던 어제와는 전혀 다른 또 다른 분위기이다. 어두워서 가지 않았던 골목길로 걷다 보니 멀리 바다가 보이는 전망대가 있었다. 아침부터 눈이 시원시원 호강한다.
"땅콩 아이스크림집이 도대체 어디 있는 거야?"
가이드 북을 보고 찍어 두었던 몇몇 가게 들은 돌아다니다 보면 찾겠지 했는데, 생각보다 복잡해서 찾을 수가 없다. 가게가 다닥다닥 붙어 있어서 구글 맵도 작동이 잘 안 된다. 잠시 생각하다, 가장 아날로그 적인 방식을 택한다. 바로 번지수를 찾는 것. 가이드북에 나온 가게의 번지수를 보고 가게 앞에 붙은 번지수 “지산지에 0번지(基山街00号)” 숫자를 찾아간다.
“시우야, 이 앞에 숫자 13이 쓰여 있는 곳을 찾아야 해. 그래야 아이스크림을 먹을 수 있어”
아이는 갑작스러운 미션에 오히려 재미있어했다.
“엄마 말해주지 마! 이쪽으로 가면 숫자가 점점 작아지니까, 이… 쪽으로 가야겠다!”
결국 아주언니 땅콩아이스크림롤(阿珠雪在燒)이라고 한국어로 큼직하게 쓰여있는 가게를 찾아내는데 성공! 우선 네모 반듯한 커다란 엿을 대패 같은 칼로 갈아 가루로 만든다. 커다란 그릇 위에 밀전병을 깔고, 그 위에 방금 곱게 간 땅콩가루와 아이스크림을 올리고 밀전병을 말아서 준다. 진짜 보는 재미가 있는 아이스크림 가게다. 밀전병을 말기 전에 사진 찍으라고 접시를 내주는데, 사진을 찍으려는 찰나 갑자기 몰려드는 단체 관광객들에 후퇴한다. 급히 접시를 반납했더니 전병을 돌돌 말아서 들고 먹을 수 있게 종이에 싸준다. 고소한 땅콩 맛과 달달한 아이스크림, 그리고 쫄깃한 식감이 어우러지고 씹을 때마다 사각사각 땅콩 씹히는 소리가 난다. 고수를 넣어서 먹을 수도 있고 넣지 않고 먹을 수도 있다. 고수와 아이스크림은 뭔가 매치가 안 되는 느낌이라서 우리는 빼고 먹었다.
먹고 싶은 것은 많은데 아침을 먹고 왔더니 많이 못 먹겠다. 떡집에서는 포장을 했고, 둘이서 어제 가이드북을 보고 가보자고 했던 식당을 발견했지만 배불러서 구경만 했다. 아. 이따가 생각날 것 같은데. 지우펀은 빈속에 지갑만 들고 왔었어야 하나 봐.
먹거리가 아니더라도 기념품 샵, 장난감 가게, 오카리나 가게…. 지우펀 라오지에는 충분히 재미있는 곳이다. 그리고 지인들 선물 사기에도 좋다. 스린야시장, 지우펀 라오지에가 타이베이이의 기념품 가게보다는 저렴하다고 한다.
우리도 선물용으로 펑리수 두 박스와 누가과자 일곱 박스를 구입하고, 그동안 큰 사고 없이 열심히 여행한 우리 스스로에게 주는 기념 선물을 산다. 나는 대만에서 굳이 가오나시가 그려진 에코백을 사고, 아들은 타이완 기념 부채를 고른다. 어쨌든 선물을 받으니 기분이 한껏 좋아진다. 아들도 만족스러운지 길거리에서 ‘부채춤’을 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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