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베이 딘타이펑, Day 15(3)
샤오롱빠오 먹으러 딘타이펑 신생점으로 출발!
딘타이펑은 미슐랭에 3년 연속 선정되었다는 대만의 대표 만두집으로, 한국에도 매장이 있다. 그래도 대만에 왔으니 원조의 맛을 봐야 하지 않겠어? 나 몰랐는데 원조 엄청 좋아하네.
보통 한 시간 대기는 기본이라 한다. 식사 시간이 지나서 사람이 없지 않을까 기대했지만 그래도 사십 분 정도는 대기하란다. 그 앞에서 차례를 마냥 기다리면 너무 지겨울 것 같고, 차례가 되었는지 볼 수 있는 ‘딘타이펑 웨이팅’ 앱도 깔아 두었으니 어디가 있을까?
주변을 둘러보니 길 건너편에 공원이 있다. 따안선린꽁위엔(大安森林公園 대안삼림공원). 얼마나 나무가 많으면 공원 이름에 삼림이 들어가는 거야? 오늘은 날씨가 좋아서 꽃 구경하러 온 사람들도 많다. 저기 공원에 가서 우아하게 주문을 해보자.
벤치에 앉아 대기표에 있는 주문 QR 코드를 스캔해 본다. 어머! 친절하게 메뉴마다 사진도 있고 한국어 설명까지 있다. 둘이 앉아서 시험문제 풀듯이 주문을 하고 제출까지 완료하니 뭔가 해낸 듯 뿌듯하다. 이제 대기 번호 기다려서 먹기만 하면 되겠다!
그제야 앉아서 공원 구경, 사람 구경을 한다. 아! 시우가 좋아하는 트랙이 있다.
“야. 저기 네가 좋아하는 트랙이 있다.”
“엄마, 나 한 바퀴 돌고 올게”
“너 그러다 엄마 못 찾고 그러는 거 아냐?”(입이 방정)
“에이 설마 그럴 리가요.”
나한테 얼마나 걸리는지 재 보라며 쓸데없이 또 뛰기 시작한다. 알겠어. 달려가는 모습을 한 장 찍고, 성의 없이 손에 타이머를 쥐고 앉아서 가이드 북을 뒤적거린다. 먹고 어디를 가야 할까나. 둘러보니 저 멀리서 아들이 뛰다가 다시 왔던 길로 돌아간다. 아... 다시 왔던 길로 돌아오려나 보다. 트랙 따라 그대로 오면 되니까 괜찮겠지.
기다리는데… 왜 이렇게 오래 걸리지? 뭔가 느낌이 싸하다가 갑자기 심장이 덜컹. 전화번호 알고 있으니까 뭔 일 있으면 전화하겠지. 애써 스스로를 안심시킨다. 그런데. 헉! 전화번호가 적힌 가방이 여기 있네. 내가 어제 팔에다 전화번호를 적어줬었는데 그게 아직도 있으려나?
벌떡 일어나서 아들이 갔던 트랙을 따라 달리기 시작한다. 트랙이 끊긴다? 작은 공원이라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넓었다. 날이 좋아서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꽃을 구경하며 웃으며 사진 찍고 있는데 그 사이에서 패닉 상태에 빠졌다.
“김시우! 김시우!”
정신없이 아들의 이름을 부르며 두리번거리며 걸어간다. 이쯤에서는 공포심이 몰려온다.
부스에 앉아 게시는 할아버지에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경으로 이야기한다.
“혹시 파란 옷 입은 아이 못 보셨어요? 아이를 잃어버렸어요. 아이는 한국인인데, 중국어 못해요.”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떨려 나왔다. 할아버지가 오토바이를 타고 지나가던 경찰 아저씨에게 말을 전하니 경찰아저씨가 돌아다니면서 찾아보겠다고 하고 간다. 어… 이제 어쩌지? 아이가 벤치로 오면 어쩌지? 가방이 있는 벤치 쪽으로 가려는데 할아버지가 가지 말라고, 이렇게 서로 움직이면 오히려 어긋날 수 있다고 한다. 괜찮을 거라며 여기 서서 조금만 기다려 보라고 하는데 내게 그 순간이 억만년 같이 느껴진다.
어쩌지. 어쩌지. 정말 오만가지 생각이 다 스쳐 지나간다. 내가 왜 아이와 같이 둘이서 대만에 온다고 했을까. 내가 뭘 한 거지. 모르는 사람을 따라가지는 않았을까. 말도 안 통하는 곳에서. 정신이 멍해진다. 그때 이쪽으로 오시던 어느 아주머니가 자기가 봤다고, 길 잃은 아이 봤다며, 자기를 따라오라고 한다. 빛이다. 정신없이 아주머니를 따라가니… 어떤 할아버지, 할머니를 붙들고 울고 있는 시우가 있었다.
안도감에 달려가서 아이의 등 짝을 정신없이 때린다.
“야! 너 내가…”
말을 끝맺지도 못하고 엉엉 큰소리로 울어버렸다.
“경찰 아저씨한테도 말해야… 하는데… 엉엉”
이러고 울고 있는 나에게 본인들이 말할 테니 걱정 말고 가라고 한다. 주변에서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자신들의 일인 양 괜찮다고 다행이라고 위로해 준다. 정말 지금 생각해도 아찔한 그 순간에 도와주셨던 분들. 너무너무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복 받으실 거예요.
울음이 멈추지 않아 계속 울면서 아이의 손을 꼭 잡고 원래 앉아있었던 벤치로 돌아왔다. 둘이 멍하니 앉아 놀란 가슴을 진정시킨다. 시우가 조금 진정이 되었는지 일어나더니 손가락으로 자기가 지나왔던 길을 가리키며 살펴본다. 아들도 많이 놀랐을 텐데. 등 짝을 때릴 것이 아니라 안아줬어야 하는데. 한참이 지나 내 정신이 좀 돌아오고 나서야 안아 줄 수 있었다. 조심성 많고, 겁 많은 아들이라서 알아서 하겠거니 믿었던 것이 나의 실책이다. 엄마가 미안해. 얼마나 놀랐겠니.
폭풍 같은 시간을 보내고 정신을 차리니 생각나는 딘타이펑.
그 와중에 앱을 보니 이제 우리 차례다. 우선 가자. 다시 아이의 손을 꼭 잡고 딘타이펑으로 간다. 손이 아직도 부들부들 떨린다. 바로 안내를 받고 올라가는데 정신이, 기운이 하나도 없다. 한국 가서도 괜히 딘타이펑은 안 갈 것 같다.
딘타이펑에는 한국어 잘하는 사람이 많아서 소통에 전혀 문제가 없다. 둘이 말없이 멍하니 앉아있으려니 공원에서 열심히 주문했던 음식들이 등장한다.
딘타이펑의 대표 메뉴인 샤오롱빠오는 대나무 찜통에서 쪄낸 중국식 만두로, 대나무찜통 그대로 식탁에 올라온다. 그냥 덥석 먹다가는 육즙에 입이 다 델 수 있기 때문에 테이블에 친절히 안내된 대로 육즙을 살짝 빼서 먼저 마시고 나머지를 먹으면 된다. 딤섬도 먹었는데 역시 딘타이펑은 샤오롱빠오가 더 맛있는 것 같다.
너무 많이 울어서 도저히 다른 곳을 갈 기운이 안 난다. 바로 숙소로 가고 싶었다. 하지만 마지막 밤이라 더 이상 미룰 수 없었기에 꾸역꾸역 시먼역 근처 까르프에 가서 가족, 지인들 선물과 과일을 산다.
아이는 자기 용돈으로 친구들 선물을 사기로 했다. 아들의 픽은 대만 여행 매일 함께했던 푸딩. 슈퍼 구석에 가서 볼펜과 종이에 몇 개를 사면 좋을지, 그러면 용돈에서 얼마가 남을지 한참을 계산하더니 예쁜 미소로 말한다.
"엄마, 남은 돈으로 엄마 선물 사줄게."
나름 기운 빠진 엄마를 위한 응원의 제스처 인가보다. 역시 아이는 나보다 대인배였다! 그렇다면... 사양하지 않고 엄마는 마지막 밤을 함께할 맥주를 골라주지!
한국인들이 많은 동네답게 '꼭 사야 할 것'이라고 명명된, 외국인들이 많이 사는 품목을 모아놓은 섹션이 있으니 시간이 없는 사람들은 여기서만 구입하고 나와도 좋겠다.
씻고 아들은 텔레비전에 나오는 K-pop 가수들의 댄스를 보며 춤 삼매경에 빠져 있고 나는 그걸 보고 피식거리며 맥주를 마시며 소파에 늘어져 있는다. 특별하지는 않았지만 일상적이라 다행인, 나의 생각과는 너무 달랐던 조금은 허무한 여행의 마지막 저녁시간이었다.
우리는 여행하면서 매일 일기를 썼다. 그런데 나는 그날 그 일을 생각하고 싶지 않아서 그냥 ‘엄청난 사건이 있었다’ 정도로만 기록하고 아들 또한 그 일에 대해서는 일기에 한 글자도 쓰지 않았다. 우리 둘에게 언급조차 하고 싶지 않은 여행의 한 장이었던 게지.
지금 우리 함께 있어서 너무 다행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