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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서 떨어진 작은 이름표

하늘에서 글쎄 작은 별이 떨어졌어요!

by 사색가 연두

"뭐였지?"


분명히 누군가가 속삭이는 듯한 목소리가 들렸다.

그런데 주변엔 아무도 없었고 적막만이 복도를 둘러쌀 뿐이었다.

이내 윤하는 잘못 들었나 싶어 개의치 않은 채 도서관으로 향했다.

도서관으로 들어가자 따뜻한 공기와 함께 아늑한 공간의 분위기가 몸을 감싸 안았다.

사서 선생님은 일이 있으신지 자리에 계시지 않았다.

윤하는 마음 편안히 있을 수 있게 되어 좋았다.


"휴우~."


길게 한숨을 내쉰 윤하는 도서관 한 편의 소파에 힘없이 주저앉았다.

창밖의 하늘은 무심할 만큼 맑았고, 햇빛은 유난히 날카롭게 창문을 뚫고 들어와 그녀의 눈을 찔렀다.

윤하는 그 찬란함을 견디지 못한 듯 조용히 일어나 커튼을 잡아내리려 창가로 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창문 쪽으로 다가선 순간 또 정체불명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별이 떨어지는 날에."


윤하는 급히 고개를 돌려 주변을 둘러보았다.

역시나 아무도 없었다. 윤하는 온몸에 소름이 돋은 채 가느다란 목소리를 내뱉었다.


"누... 누구야?"


이번에도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커튼 줄을 쥔 손은 쉴 새 없이 떨어댔다.

그러자 누군가가 일부러 놀리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녀는 순간 흥분을 억누르지 못하고 소리를 질렀다.


"누구냐고!"


띠링-


"누구니?"


그때, 사서 선생님께서 들어오셨다. 윤하는 순간 어쩔 줄 몰라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저... 아... 안녕하세요!"

"응? 윤하니? 여기서 뭐 해?"

"저 그... 그냥 도서관에서 책 읽으려고요!"

"너 지금 수업 시간이잖니."

"그게... 도서관에 일이 있어서..."

"무슨 일인진 모르겠지만 거짓말은 하면 안 되지. 얼른 돌아가."

"제가 몸이 아파서 그래요. 원래는 보건실에 누워있어야 하는데... 가슴이 답답해서 그래요. 여기 있게 해 주세요."


사서 선생님인 유연은 윤하의 그런 애처로운 표정을 보자, 차마 매정하게 돌려보낼 수 없었다.
평소 윤하가 이런 아이가 아님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껏 윤하는 도서관을 자주 찾아오기도 했고, 그래서 다른 학생들보다 훨씬 많은 말을 주고받아 왔다.
그만큼 유연에게도 윤하는 유난히 마음이 가는 아이였다.

하지만, 어쨌거나 교사로서의 책임을 무시할 순 없었다.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였다.


"그럼 보건실에 있어야지. 이렇게 멋대로 도서관에 오면 선생님이 어떡할까?"

"학생이 책을 읽는 건 좋은 거잖아요."

"그래도 학교 내 규칙이 있잖니. 수업 시간에 멋대로 도서관에 와선 책을 읽는 학생이 어딨어?"

"별이 말을 건넸어요."

"응?"


윤하는 저도 모르게 아무 말이나 내뱉고 말았다.

그만큼 오늘은, 도저히 교실로 돌아갈 마음이 나지 않았다.

유연은 그런 윤하의 생뚱맞은 말에 잠시 말을 잃었다.

화를 낼 생각은 없었지만, 적어도 단호하게 짚어 줄 필요만은 있다고 느꼈다.


"너 지금 선생님이랑 장난치고 싶은 거니?"

"아니... 진짜 누군가가 말을 건넸다니까요!"

"정윤하. 오늘 왜 그래? 정말 무슨 일 있어?"


어느새 윤하의 표정은 잔뜩 일그러져 있었다. 툭하면 눈물을 쏟아낼 것만 같았다.

어린아이의 그런 표정을 보자, 본래 마음이 약한 유연으로서는 더 이상 꾸짖는 말을 잇기가 어려웠다.

결국 유연은 한숨을 푹 쉬며 마지못해 윤하를 데리고 소파로 가 앉았다.

학생들의 고충을 들어주고 털어내도록 하는 일도, 당연 선생님으로서의 책임 중 하나일 것이다.



그렇게 둘은 한동안 쉬지 않고 이야기를 이어갔다.

윤하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막 쏟아내는 데엔 일가견이 있는 아이였고,

유연은 말하기보단 듣는 입장이 편한 사람이었기에 둘은 찰떡같이 궁합이 잘 맞는 사이였다.

원래는 윤하의 고민을 듣기 위해 만든 자리였지만,

사소한 이야기들이 오가자 유연도 어느새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대화를 한 것이다.


그럼에도 유연의 마음 한편에는 윤하가 왜 그렇게 힘들어했는지에 대한 궁금함이 남아 있었다. 또, 아무리 그래도 수업 시간에 멋대로 도서관에 온 학생을 이렇게 마음대로 떠들도록 내버려 두는 게 편치 않았다. 선생님으로서의 도리는 아니다 싶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곧 정신을 차린 뒤, 윤하의 얼굴에 조금이라도 여유가 스며드는 순간을 기다렸다.

그때 조심스레 물어보기로 마음먹었다.


"어쨌든 그래서 제가 친구들한테 아주 당당하게 얘길 했지 뭐예요. 내가 반장이 되면 모두를 행복하게 해 주겠다고!"

"그런데 윤하야..."


유연은 이때다 싶어 말을 건넸다.


"선생님이 뭐 하나만 물어도 될까?"

"뭔데요?"

"최근에 무슨 일 있었는지 궁금해. 오늘 보니까 기분이 많이 안 좋아 보이던데. 그래서 지금 도서관에 온 거 아니야?"

"..."


윤하는 한참을 뜸 들이며 좀처럼 말을 잇지 못했다. 확실히 무슨 일이 있는 모양이었다.

유연은 기다렸다. 윤하가 직접 입을 뗄 때까지.


"아무 일도 없는데요." 윤하는 시선을 아래로 내리꽃은 채 속삭이며 말했다.

"아무 일도 없는데 이러고 있는 건 이상하잖니."

"그냥 오늘 컨디션이 좀 안 좋았어요."


윤하는 역시 그 일을 입 밖으로 꺼내고 싶지 않았다.

특히나 사서 선생님은 학교 내에서 가장 친하게 지내는 선생님이었다.

그래서 더욱더 그런 일이 있었다고는 말하기가 어려웠다.

원래 상대방이 나를 잘 알고 친한 사이일수록 자신의 아픔을 꺼내기가 더 꺼려지지 않은가.


그렇게 윤하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결국 유연은 짐작 가는 대로 한번 떠 보기로 했다.

얼마 전, 분명히 윤하는 동네 콩쿠르 대회에 나간다고 그녀에게 자랑을 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오늘, 그 일에 대해서 아무런 이야기도 꺼내지 않았다.

그녀는 아까부터 그 점이 이상하다고 느꼈다.

평소 윤하 성격이었다면 콩쿠르 대회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하나하나 세세하게 이야기했을 것이었다.


"근데 윤하 이번에 피아노 대회 나간다고 하지 않았니?"

"어..."


대회 얘기가 나오자마자 윤하의 시선이 주춤거렸다. 역시 대회와 관련된 일이라 확신이 들었다.


"대회 성적이 잘 안 나왔어?"

"아 좀 내버려 두세요 제발!"


순간 감정이 불쑥 치밀어 오르며 윤하는 도서관 전체가 울릴 정도로 목소리를 한껏 높이고 말았다.

이내 자신이 얼마나 크게 소리를 쳤는지, 아차 싶었던 그녀는 곧바로 입술을 다물며 멈칫했다.


"안녕히 계세요."


윤하는 보건실에서 뛰쳐나온 것과 같이 얼른 도서관 밖을 향해 내달렸다.

유연은 괜히 이 이야기를 꺼낸 건가 싶었다.

상대방이 준비가 다 되기도 전에 남의 아픔을 굳이 알려고 드는 습관은

역시 언제나 끝이 좋지 못한 법이다.


윤하가 나가자 유연은 한숨을 푹 쉬었다.

그냥 신나게 떠들게 내버려 두어도 좋았을 거란 생각이 들자 그런 죄책감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어른답지 못했던 걸까...'




어느덧 학교에서의 마지막 수업을 마치는 종이 울렸다.

도서관에서 나오고 난 뒤, 갈 곳을 잃은 윤하는 복도에서 한참을 서성거리고 있었다.

그러다 종소리가 울리자 그제야 교실로 걸어가 문을 열어젖혔다.

교실로 들어가자마자 친구들은 윤하를 보곤 하나둘씩 모여 괜찮냐고 물었다.

하지만 그녀는 어영부영 괜찮다는 말로만 넘길 뿐이었다.


종례가 끝나자마자 윤하는 책가방을 들고 그대로 교실 밖으로 빠져나왔다.

오늘 하루는 더 이상 견딜 힘도 없었다.

보건 선생님 앞에서의 어색한 순간과 도서관에서 사서 선생님에게 소리치던 장면들...

돌아보면 돌아볼수록 후회가 줄줄이 따라붙었다.

윤하는 또 울적함이 솟자 집으로 가는 내내 발끝만 바라보며 걸었다.


그렇게 아파트 단지 입구에 들어섰을 때, 주차장 한편에 익숙한 은색 차량이 보였다.

엄마의 차였다. 오늘따라 어쩐 일인지 일찍 퇴근하신 모양이었다.

사실 엄마와는 콩쿠르 대회 이후로 부쩍 대화가 많이 줄었다.

아마도 그녀는 딸에게 많은 기대를 품고 있었던 듯했다.

그 기대를 스스로 무너뜨렸다는 사실이 지금까지도 윤하의 마음 한구석을 뻐근하게 눌렀다.

자연스레 걸음이 느려졌다.

그녀는 잠시 숨을 고르며, 하루 종일 흔들려온 마음을 어떻게 정리해야 할지 생각했다.

그러나 끝내 답이 떠오르지 않자 아파트 안으로 들어섰다.


끼익-


현관문을 조심스레 열고 들어가자 엄마가 문 앞에 서 계셨다.

잠시동안 눈을 마주치고 나자 그녀가 물었다.


"오늘 아팠다며?"

"네."

"어디가 그렇게 아팠는데. 병원 안 가도 되니?"


툭툭 내뱉는 그녀의 무심한 말마디는 점점 윤하의 숨통을 뱀처럼 조여왔다.


"지금은 괜찮아요."

"그래. 오늘은 피아노 학원 쉬던지."

"네..."

"윤하야."

"네?"


엄마가 잠시동안 뜸을 들이고 이내 다시 물었다.


"너 피아노 계속 치고 싶어?"

"어..."

"엄마 생각엔 그냥 공부하는 게 좋지 않을까 해서. 이제 슬슬 중학교로 넘어갈 시기잖니."


윤하는 내심 알고 있었다.

엄마는 애초부터 자신이 피아노를 진로로 삼는 일을 탐탁지 않아 했다는 것을.

그래서 이번만큼은, 그 누구보다도 엄마에게 증명하고 싶었다.

자신이 무대 위에 설만큼 충분한 자질이 있다는 것.

그게 이번 콩쿠르 대회의 가장 큰 동기중 하나였다.

하지만 결과는 냉혹했다.

말 한마디 꺼내기도 어려웠고, 어떻게 설득해야 할지 생각이 가물가물했다.

입술만 달싹일 뿐 윤하는 끝내 말을 잇지 못했다.

그녀를 설득시킬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아니, 이미 자기 자신부터가 확신이 서질 않았다.

이대로 포기하고 싶진 않았지만, 그럴 자격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윤하가 그렇게 한참을 망설이자 결국 엄마가 말을 건넸다.


"한 번 잘 생각해 봐."


그녀의 마지막 한 마디는 결정이란 시련을 윤하에게 떠넘기는 묵직한 압력처럼 느껴졌다.

마치 방아쇠가 손끝에 놓인 듯, 침묵 속에서 저릿하게 울렸다.




그날 밤, 윤하는 좀처럼 잠들지 못했다.

말 한마디 섞을 때마다 서로의 마음이 금처럼 갈라지는 듯했던 저녁 식탁의 공기와 식지 않은 말들.

삼키지 못한 감정들이 방 안 구석구석까지 밀려들어와 그녀를 쌓아 올렸다.

물론 그녀의 엄마완 달리 아빠는 그녀를 위로해 주기 바빴다. 아빠는 늘 그렇게 다정한 사람이었다.

항상 윤하는 잘 될 수 있을 거라고, 잘할 수 있을 거라고.

그렇게 용기를 북돋아주기도 하고, 실망을 감춰주기도 했다.

하지만 쓴소리를 해야 될 때는 단호하게 할 줄 아는 사람이기도 했다.


"원래 처음엔 다 그래. 첨부터 잘하는 사람이 어딨어?"

"그 남자애는 잘하던데..."

"음... 걔도 처음이 아닐 수도 있잖아?"

"근데 나보다 두 살이나 더 어렸단 말이야!"

"그게 그렇게 중요하니."

"그럼 안 중요해? 나보다 어린애가 무대를 그렇게 휘어잡는데...!"

"그 아인 정말 어릴 때부터 피아노를 시작했을 수도 있잖아. 생각해 보면 윤하는 피아노 친지 얼마나 됐지?"

"1년 좀 넘었지."

"그럼 넌 피아노 신생아야. 충분히 걔가 너보다 더 오랜 기간 동안 피아노를 쳤을 수도 있는 거잖아. 그런데 네가 그 아이를 단번에 이기려 했던 그 마음, 어쩌면 말도 안 되는 욕심일 수도 있는 거 아니겠어?"


생각해 보니 그랬다.

자신이 너무 욕심을 부리고 있던 건 아닐지.

아빠의 말을 듣고 나자 할 말이 없어진 윤하는 식탁을 벗어날 채비를 했다.


"윤하야."


아빠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그녀의 행동을 정지시켰다.


"인생은 실패와 헛수고로 가득한 거야."


창밖에서 바람이 유난히 섬세하게 흔들렸다.
윤하는 누워있다 말고 조용히 창문을 열어 밤공기를 들였다.
마치 뜨거운 마음을 식히려는 듯, 차가운 바람이 볼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때였다.


윤하는 저 멀리서 까만 밤하늘의 빈자리를 가르는 한 줄기 빛을 발견했다.

처음엔 별똥별인줄 알고 흥분했다가, 보면 볼수록 그 빛의 출처가 별똥별이 내뿜는 빛은 아닌 것 같았다.

그것은 음향 하나 없이, 허공에서 조심스레 떼어낸 조각처럼 곡선을 그리며 내려오더니 이윽고 그녀의 아파트 단지 인근에 가만히 스며 떨어졌다.


윤하는 조용히 숨을 삼켰다. 이상했다.

가슴속에 작은 북소리가 울리고 설명할 수 없는 불안과 설렘이 그녀의 온몸에 드리웠다.

그녀는 이내 잠옷만을 걸친 채 몰래 방에서 나와 집 밖으로 나왔다.

왜 인지는 모르겠으나, 그렇게 행동해야만 할 것 같았다.


그날의 밤공기는 싸늘하면서도 오묘했다.


방금 전 빛이 스친 자리로 향하는 동안,

아파트 단지를 둘러선 나무들은 바람 한 점 없는 가운데도 찬란하게 잎사귀를 떨고 있었다.

그녀는 숨을 헐떡이며 조각이 떨어진 근처를 샅샅히 뒤졌다.

어둠은 짙었으나 어디선가 미세한 은빛이 바람결처럼 새어 나왔다.
윤하는 그 희미한 떨림을 따라 나무 그늘 아래로 몸을 기울였다.


헉... 헉...


마침내 발견했다.

그곳에 놓인 건, 갓 식지 않은 별의 잔열과도 같은 작은 조각이었다.

빛의 맥박은 주변을 흘러 작은 풀잎 하나하나를 은은히 밝혀 주고 있었다.

윤하는 본능적으로 그것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렇게 별의 조각은 소녀의 두 손이 닿기를 기다리는 듯 차분히,

그리고 무언가를 예고하듯 은색 빛을 고스란히 뿜어내고 있었다.


닿았다.


그곳엔 손바닥만 한 작은 이름표 하나가

고요히 놓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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