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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을 쫓던 아이

내가 별인 줄 알았어요.

by 사색가 연두

하늘에서 별이 떨어지는 날이면

사람들은 두 손을 모아 소원을 빈다.


'돈 많이 벌게 해 주세요.'


'꼭 합격하게 해 주세요.'


'건강하게 지낼 수 있도록 해주세요.'


하지만 막상 자신이 떨어지는 날이면

끝없이 무너지고 모든 희망을 저 버린다.


오르다가 넘어지고,

또 오르다가 넘어지고.


선택받은 사람이고 싶다는 욕망은

신에게 인정받고 싶어 했던,

자연의 아들이고 싶어 했던,

저 먼 과거에서부터 시작되었다.


하지만 주인공이란,

특정 서사에만 머무를 하나의 설정일 뿐이다.


정말 특별한 무언가가 있는 줄 알았던 걸까.


희망은 한낱 실타래와 같다.

툭하면 끊어지니 말이다.


그건 은퇴하고 난 뒤 여유를 즐기는 어르신도,

번듯한 직장을 다니며 열심히 살아가는 청년도,

수많은 사람의 조명을 받으며 슈퍼스타도,

돈 걱정 없을 억만장자도,


그리고


아직 머리에 피도 안 마른 한 소녀에게도

다 마찬가지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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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이 떨어지던 날이었다.


중앙에 덩그러니 놓인 작은 의자 앞.

윤하는 요 며칠새 마음속이 소란스럽다.

얼마 전의 일을 떠올리기만 해도 심장이 또다시 종처럼 울렸다.


피아노 학원을 다니고 있는 윤하는 며칠 전 초등부 콩쿠르 대회에 나간 바가 있다.

나름 열심히 준비를 했고, 마지막까지도 레슨 선생님께서 지도해 주신 대로 잘 마무리했었다.


"좋아. 가르친 대로만 한다면 적어도 준차상 정도는 노려볼만할 거야."

"네!"


처음으로 무대에 오를 기회,

처음으로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연주를 들려줄 수 있는 기회.


윤하는 학원에서 가장 오랫동안 연습해 온 곡이었던 만큼 분명히 자신감이 있었다.

때문에 설렘은 무한한 풍선이 되어 하늘을 덮을 만큼 부풀렸고,

레슨 선생님 역시 그녀에게 큰 기대를 걸고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무대 위에 올라서자마자 찾아왔다.


후... 후... 후...


무대 뒤에서 숨을 가다듬을 때까지만 해도 견딜 만했다.

하지만 발끝이 무대를 닿고 관객의 시선들이 어둠 속에서 일제히 고개를 들자

그녀의 심장 어딘가가 뚝 끊어지는 듯했다.


그렇게 피아노 앞에 가 앉았다.

손끝이 심하게 떨려왔고 호흡은 도저히 진정이 되질 않았다.


잠시 후, 조명 하나가 서서히 정수리 위로 길게 드리워졌다.

그 순간 관객석은 어두운 그림자 속에 잔잔히 갇혀버렸다.


'어... 어떡하지?'


하얀 건반 위에 올려진 손가락은 도무지 진정될 틈이 보이지 않았다.

손톱이 계속해서 건반 위를 툭툭 건드렸다.

빛은 멀리서 자신을 비춰줄 뿐,

관객 속 여러 개의 눈동자가 날아다니며 자신만을 주시하는 느낌이 들었다.


그녀는 결국 건반 위에 올려두었던 손가락을 다시 집어 들었다.

좀처럼 쉽게 건반에 손을 댈 수 없었다.


"학생! 무슨 문제 있을까요?"


윤하가 꽤 오랫동안 아무런 미동도 없자,

결국 대회를 이끌던 MC가 답답했던지 그녀에게 물었다.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윤하는 이미 눈앞이 새카매진 뒤였다.


"윤하야! 괜찮으니까 페이스 잡아! 너무 긴장하지 마!"


그때, 저 멀리 어딘가로부터 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녀의 힘 있는 목소리는 침묵에 잠겨 있던 무대를 단숨에 가르며 윤하의 귀에 스며들었다.

윤하는 순간 정신이 번쩍 들어 이후 차분하게 눈을 감았다.

잠시 뒤, 쭉 기지개를 켠 다음 다시 숨을 고르곤 건반 위에 손을 얹었다.


후...


그렇게 그녀의 불안한 연주가 시작되었다.

그날의 무대는 처음으로 밝은 빛 아래

자신의 그림자가 끝없이 늘어지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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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회가 끝난 뒤, 윤하는 좀처럼 고개를 들 수 없었다.

모든 게 엉망이었다.

호흡도, 프레이징도, 템포도.

악장을 구성하는 모든 요소가 어긋났다.

건반을 누르는 내내 손끝에서 무언가 하나씩 흘러내리는 듯했고,

답답한 심정에 연주 도중 도망치고 싶다는 욕구마저 들었다.

결국 윤하는 연주를 끝내자마자 마무리 인사도 없이 후다닥 무대 뒤로 숨어들었다.


"하..."


윤하는 다리에 힘이 풀린 채 계단에 주저앉았다.

쏟아지려는 눈물을 꾹꾹 눌러 담았다.

자신의 연주를 한껏 기대했을 선생님과 부모님의 얼굴을

도대체 어떤 표정으로 마주해야 한단 말인가.


그 사이 다음 차례인 학생이 무대 위로 올라섰다.

윤하는 울음이 터질 것만 같자 곧장 일어나선 화장실로 향했다.

들어서자마자 세숫대야 앞 거울을 두고 우두커니 섰다.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너무나도 초라해 보였다.

지금껏 큰 소리 뻥뻥 쳐 대며 얼마나 잘난 척을 했던가.


학교에서도 친구들에게 이번에 피아노 대회 나간다며,

자신은 조금만 더 연습하고 다듬기만 해도 이런 대회쯤은 충분히 상위권을 노릴 수 있다며,

그렇게 허풍을 떨어댄 과거의 모습을 떠올리자 후회 가득히 부끄러웠다.


물론 노력을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다.

나름 진지하게 피아노에 대한 꿈을 키우고 있었고,

오늘의 첫 대회를 위해 얼마나 열심히 준비를 했던가.

티를 내지 않았을 뿐 남몰래 뒤에서 열심히 노력해 왔다. 그래서 더 비참했다.


윤하는 결국 붙잡고 있던 서러움이 터져 나왔다.

지금까지 달려왔던 모든 노력이 부정당한 느낌이 들었다.


잘 다듬으면 가지고 있던 재능을 넘치게 발휘할 수 있을 거란 주변 사람들의 말들.

열심히 노력하면 저 하늘의 별이 될 수 있을 거란 믿음.

태양도 가질 수 있을 것만 같던 기대.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쫓으면 쫓을수록 멀어지기만 했다.

왜 항상 무언가를 위해 애를 쓸수록 그 무언가는 자신으로부터 달아나기만 할까.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윤하는 한참을 끄윽 대며 울었다.

그러던 도중 누군가의 발소리가 점점 가까이서 들려와 윤하는 황급히 세수를 한 뒤, 아무 일도 없던 얼굴을 억지로 걸친 채 조용히 관객석으로 되돌아갔다.


"..."


자리에 들어가 앉자 엄마는 침묵으로만 안겨줄 뿐이었다.

아마도 그녀는 딸의 연주에 적잖이 실망했으리라.


"잘했어 윤하야."


아빠는 작은 속삭임으로 윤하를 위로해 줬지만

그녀의 귀엔 지금 아무것도 닿지 않았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윤하의 기를 꺾어버린 건 따로 있었다.

바로 다른 아이들의 연주였다.

특히나 무대를 압도하는 한 사내아이의 재능 넘치는 연주는 윤하에게 거대한 벽을 선사했다.

아무리 연습해도 이를 수 없겠다는 높은 경지.

윤하는 혼이 빠진 듯 저도 모르게 그 아이의 연주에 흠뻑 젖어들었다.

그 아이는 첫마디부터 악장을 단숨에 장악해 서사를 지배했다.


'와...'


존경심과 동시에 밀려오는 질투심.

그 아이는 윤하보다도 2살이나 어린 초등학생 3학년이었다.

아마 그도 이번이 첫 대회이리라. 윤하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자 또다시 깊은 서러움이 몰려왔다.


'선택받은 아이라는 건 저런 앨 두고 하는 말이구나.'


어느덧 그의 연주가 끝나자 모두가 일제히 박수를 쏟아냈다.

심사위원들도 흡족한 듯 미소를 지으며 박수를 쳐 주었다.

그렇게 쏟아지는 사람들의 박수 소리는 윤하를 점점 작아지게 만들었다.


세상엔 분명히 신이 주신 것만 같은 재능을 가진 아이들이 있다.

하지만 그런 아이들조차도 높은 벽을 마주하기 마련이고


끝내 별이 되진 못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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