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쉽게 좁혀지지 않는 거리가 있다.
한 걸음 내디뎌보려 해도
언제나 똑같이 한 걸음 멀어지는 당신에
하릴없이 뒷모습만 보게 된다.
쉽게 닿을 수 없는 거리가 있다.
잠시 페달을 멈추고 쉬어 갈 때도
섣불리 다가서면 또 멀어질까 봐
뒤에서 가만히 지켜보기만 하게 된다.
쉽게 잊히지 않는 거리가 있다.
당신이 세차게 앞을 향해 달릴 때면
넘어지지 않도록 늘 뒤따라 흠뻑 젖은 채
조용히 등을 밀며 굴러가기만 한다.
당신과 나 사이
발끝으로도 넘을 수 없는 선.
바람결에 몰래 실어도
끝내 닿지 않는 목소리.
한 치도 어긋나지 않는
그림자 진 거리.
당신이라는 먼 풍경을 바라보며 걷는
조용한 뒷바퀴.
2.
사람이 좋아하는 사람을 볼 때
어떤 눈빛으로 바라보게 되는 지 아십니까.
상대방이 가까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왠지 먼 풍경을 바라보는 듯한 눈빛.
광활한 자연을 구경하듯,
그 사람 전체의 모습을 조심스레 담아내려는 시선이랍니다.
내가 당신을 볼 때 그렇습니다.
나는 당신의 시야 밖에서
말투, 몸짓, 모습 하나까지도
그윽한 눈동자로 천천히
조심스럽게
당신이라는 세계를 눈 안에 담아냅니다.
3.
인간은 한눈에 다 아우를 수 없는 대자연의 풍경 앞에 설 때,
자신도 모르게 '경외심(敬畏心)'이란 걸 느낍니다.
별이 쏟아지는 하늘,
산 정상에서 내려다본 절경,
끝도 없이 펼쳐진 푸른 대양,
침묵을 머금고 비추는 사막.
이 모든 것은
내가 얼마나 작고 덧없으며
동시에 얼마나 고요히 깨어 있는지를 가르쳐줍니다.
그러니 우리는 존경과 함께
일부의 두려움으로 자연을 바라보게 되고,
아득한 시선에 따라
정신은 마치 그 풍경에 투사되듯
널리 퍼져 나갑니다.
그때만큼은,
자아의 경계로부터 해방된 듯한 자유를 느끼죠.
감히 가까이할 수 없는 존재를
조용히 우러러보는 마음과 같이.
4.
"난 내 외모가 마음에 들지 않아."
"왜?"
"그냥 어릴 때부터 남자 애들한테 못생겼단 말 많이 들었단 말이야. 제니(블랙핑크)처럼 생겼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거... 고백인 거 같은데."
"말도 안 돼."
"너 전혀 못생기지 않았어. 그게 더 말이 안 돼."
그런데...
사람들은 과연
자신이 사랑에 빠진 대상에게 느끼는 아름다움을
'객관적인 아름다움'이라 자신할 수 있을까요?
그렇다면 객관적으로 아름다운 외모는
대체 어떤 얼굴을 두고 말할 수 있는 걸까요?
연예인들이 잘생기고 예뻐 보이는 이유는
많은 사람들이 그들에게,
'조명을 비춰주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난 당신을 만나고 나서야
진짜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죠.
사람들이 말하는 외모의 기준은
결국 제각각 다 다르기 마련이니까요.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느낌입니다.
인간을 두고 절대적인 기준을 앞세우는 건
사실상 진리를 찾겠다고 하는 것만큼이나
부질없는 짓이죠.
적어도 내 눈에는
당신보다 예쁜 여자를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여기서 '예쁜'이라는 표현은
단순히 외모가 예쁘다는 말에서 머무르는 게 아닙니다.
당신과 함께 있는 공간과 시간,
그리고 그 안에 깃든 모든 공기와 분위기까지도
아름답다는 겁니다.
5.
자연 풍경을 사진으로 바라보는 것과
직접 눈으로 마주하는 것은
확연히 다른 과정을 거칩니다.
사진으로 보는 풍경은
단지 주관적인 미(美)에 대한 판단으로 끝나죠.
우리는 거기서 실제로 머물 수 없고
그저 상상으로만 체험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자연 속에서 직접 바라보는 풍경은 다릅니다.
그날의 날씨와 온도, 습도, 나의 기분, 그 속의 분위기까지
주위의 모든 것들이 깨어나
'감각(感覺)'의 총체적인 체험을 거칩니다.
그러니,
내가 당신과 함께 있는 시간동안 바라보는 눈빛은
여느 미술품과 사진을 감상하는 행위와는 전혀 다릅니다.
당신은 전시품이 아닌
살아 숨 쉬는 풍경이니까요.
6.
사람들이 모여 앉은자리에서도
이제 내 눈엔
단 한 사람 밖에 안 보입니다.
하지만 너무 뚫어져라 쳐다보면
혹여나 이 불쾌한 시선을 들킬까 봐서
나는 몰래몰래 뒤에서
조심스레 흘겨봅니다.
'...?'
"이게 내 주문인데 다들 한 번씩 따라 해 봐! 무언가 큰 맘먹고 해야 할 일을 앞둘 때, 두 손에 주먹을 꽉 쥐고 외쳐 보는 거야. 이렇게..."
언제나 자리에서 유독 빛나는 당신은
사람들의 이목을 한 번에 집중시키는 힘이 있습니다.
높은 톤을 지닌 목소리와 환하게 웃는 얼굴의 조합은
꼭 하늘을 밝게 비추는 태양을 연상시킵니다.
그렇다면 나는,
당신의 해바라기겠죠.
당신 앞에만 서면 고개를 높게 쳐들지만
당신이 없는 곳에선 금방이라도 시들어 버릴 듯
고개가 아래로 쳐집니다.
어느새 그렇게 되어 버렸습니다.
되게 보잘것없는 이런 내 모습도
나의 실존인걸요.
아직까진 멀게만 느껴지는 우리 둘 사이의 거리를
어떻게 좁혀 나갈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