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매주 화요일,
당신과 아무런 부담 없이 만날 수 있는 날.
나는 어느새 그날만을 기다리며
화요일을 사랑하는 남자가 되었습니다.
사랑은 내 마음을 사정없이 흔들어 놓습니다.
흔들리는 마음은 또,
온 세상을 흔들어 놓습니다.
'이번 모임에 그녀가 제발 참여하기를...'
'뒤풀이에도 그녀가 따라와 주기를...'
'오늘은 좀 더 그녀와 대화를 많이 할 수 있기를...'
역시 인간이 종교는 믿지 않을지언정
신을 믿지 않기란 참 어렵습니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다
무언가를 믿고서 살아가려 합니다.
마찬가지로,
아직 도착하지 않은 수많은 날들에게
나는 두 손 모아 바라봅니다.
2.
"오빠, 오빤 다음 학기 때도 독서 모임 계속 운영할 거야?"
"음... 그래야지?"
"그렇구나."
시간은 계속 움직입니다.
잡을 수도, 되돌릴 수도 없는 것이죠.
마찬가지로 관계 또한 동적입니다.
그 때문에 통제할 수 없는 과정들이 많습니다.
"왜? 무슨 일 있어?"
"아니... 나는 솔직히 좀 고민 중이야."
"뭐가?"
"그냥... 이제 슬슬 준비해야 할 것들이 많아질 시기니까. 다음 학기 때도 모임 활동을 계속할지 말지 고민 중이라구."
말로는 천천히 생각해 보라며
아무렇지 않은 척 대답을 건넸지만,
마음속으론
지금 당장 붙잡고 싶을 만큼
제발 한 학기만 더 있어달라고 몸부림치고 싶을 만큼
애걸복걸하여 매달리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애타는 마음을 가질수록
어째 현실은 더 멀어지기만 하는 것만 같아
괜히 조용히 입을 다뭅니다.
왜 세상은 내 바람대로 움직이는 것들이
단 하나도 없는 걸까요.
3.
사랑은 시간을
영원성의 환상으로 만듭니다.
나는요 솔직히,
몰래 당신과 함께 성을 지어도 봤습니다.
당신과 함께 오르막길을 걷기도 해 봤고
당신과 함께 왈츠를 추기도 했으며
당신과 함께 달을 항해하며 별을 따기도 했습니다.
당신과의 만남은 그렇게 시간을 닫아 버립니다.
아직 오지 않은 계절을 살았고,
실재하지 않은 시간 속에서 추억을 쌓고 말았습니다.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이라 착각하며,
언제든 꺼내 먹을 수 있는 달콤한 과자처럼 여겼습니다.
나는 또
두 손 모아 기도합니다.
제발,
그녀와의 만남이 계속되기를.
4.
여유라는 게,
언젠가 당신의 등을 보게 되더라도
내 발이 그쪽을 향해 달아나지 않는 마음이라면.
사랑한다 말하지 않고도
사랑을 놓치지 않을 수 있는 침묵이라면.
사랑은 역시 기술인 걸까요.
평소엔 머무름과 기다림이란 시간이
내겐 꽤나 익숙한 시간들이었는데
그날만큼은 정말 참기 힘들었습니다.
아니,
그날만큼은 참지 말았어야 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5.
사랑이라는 상황은,
불확실성을 견디기 위한 인내의 시험과 같습니다.
당신을 바라볼 때에 느끼는 설렘은
어렴풋이 두려움이기도 합니다.
당신의 표정과 눈빛 그리고 말투 하나하나가
내겐 여러 해석의 여지로 남게 되죠.
정답은 알 수 없고,
필히 자기중심적일 수밖에 없는.
그러다가 어느덧 문득
확인해보고 싶다는 욕구가 일어납니다.
'당신은 나를 어떻게 생각하나요?'
하지만 사랑은 계약이 아니기에
언제나 애매한 여지를 남기기 마련이고,
괜스레 확인하려 드는 순간
당신을 잃을 것만 같은 상황이 눈앞에 그려지기도 합니다.
확신보단 신뢰를,
조급함보단 기다림을.
나는,
아직까진 당신을
포기하고 싶지 않습니다.
6.
"너는 미래의 자신에 대해 어떤 점이 제일 궁금해?"
"음... 나는 내가 어떤 사람이랑 결혼할지가 제일 궁금해!"
"오, 결혼...? 의외네."
"왜?"
"아니 그냥... 결혼을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할 줄은 몰랐어."
"그럴 수밖에 없지. 나를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누굴지 궁금해. 심지어 이번에 타로가게 가서 점까지 봤잖아. 근데 결혼할 사람이 나보다 10살이나 더 많을 거더라고. 뒤도 안 돌아보고 바로 나와버렸어."
어이가 없어서 한참을 웃었습니다.
가끔 제 어머니께서도 점을 보러 가시곤 합니다.
나는 그럴 때마다 잔소리를 하죠.
왜 자기 인생을 남에게 확인받으러 가냐며 말입니다.
한데 당신이 타로가게에서 점을 봤다는 사실은
왜 이리 귀엽기만 할까요.
"그럼 오빠는 뭐가 제일 궁금해?"
"나? 음... 나는 내가 어떤 공간에서 살고 있을지가 궁금해. 그런 로망 같은 거 있잖아. 주변에 건물이라곤 찾아볼 수 도 없는, 어디 한적한 숲 속에 놓인 집 한 채. 그곳에서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조용히 살고 싶어."
참...
또 이렇게
아직 도착하지 않은 수많은 날들을 향해 점을 치고
오지도 않은 희망을 그리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