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 모임원들에게,
말보다 글이 편한 사람이라 이렇게 올립니다.
우선 학기 일정에 따라 이번 1학기 정규모임은 오늘부로 끝을 내려합니다.
모두 한 학기 동안 모임에 참석하신다고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덕분에 좋은 추억 남겼어요.
막상 모임을 한번 운영해 보자니 여러모로 쉽지 않더라고요.
모임장이란 인간이 무슨 말도 잘 안 하고,
관계가 중요하다면서 막상 보면 지가 여기서 제일 잘 못 어울리는 거 같고,
재미는 또 드럽게 없고...
실은 학기 중 이런저런 일 때문에 모임에 대해 온전히 신경 쓰지 못한 부분도 많았습니다.
그래서 여러분께 죄송한 마음이 되게 큽니다.
아무리 그래도 이러면 안 되는 건데 말이죠.
그래도 저는 얻은 게 꽤 많았습니다.
모임을 하면서 정말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다양한 생각들을 엿보고,
다양한 관점으로 세상을 보는 눈을 대신 빌려 써보기도 했죠.
사람 자체가 워낙 인간관계에 서투른지라,
말수도 적고 표현도 없어 오해받기 쉬운 사람입니다.
하지만 저,
보기보다 사람 쉽게 못 잊습니다.
그리고 보기보다 헤어짐과 이별에 약합니다.
물론 다음 학기에도 활동을 희망하는 인원도 있을 것이지만,
만약 그렇지 않다면 좀 마음 아플 것 같아요.
그래도 저는 당연히 존중합니다.
애초에 선택권은 여러분들에게 있으니까요.
어찌 됐든 다시 한번 정말 고맙다는 말 진심으로 전해드립니다.
이 말도 까먹어서 헤어지기 전 직접 말하지 못해 미안합니다.
다들 앞으로 가시는 길 희망으로 가득하길 바라며,
때로는 인생에 있어 저마다의 악재가 터질 것이지만,
그럴 때마다 속으로 “파이팅~!” 한 번 외치며 당당하게 나아가길 바라봅니다.
그럼 다들 잘 주무시고 다음에 꼭 봐요.
모자란 모임장이-
2.
뒤풀이 후 집에 들어가,
모임원들에게 진심이 담긴 편지를 하나 올렸었죠.
분명히 모임원 전부를 겨냥하고 쓴 편지였는데도
몇몇 글자 속엔 당신만의 흔적과
당신만을 향한 나의 손짓이 배어있더군요.
나는,
여전히 당신 생각에 잠겨있습니다.
어쩌면 이건
리더로서의 자격 박탈일지도 모릅니다.
당신이 빨리 이 편지를 읽었으면 하는 바램에
너무나도 초조합니다.
'그녀가 이 글을 읽었을까?'
'그렇다면 왜 답장이 없지?'
'아... 너무 늦은 시간에 올렸나?'
사랑은 확실히
저주가 맞습니다.
3.
내겐 사실
수많은 기회가 있었던 게 아닐까.
그런 후회가 밀려오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나는 지금,
'사랑'이란 단어가 가진 폭력성을 과감하게 고발하려 합니다.
사랑에도 다양한 형태와 결이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 모든 것을
'사랑'이라는 단 하나의 언어로 쉽게 뭉개버리곤 하죠.
나는 아직 당신에게
'사랑'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나는 분명히 당신을
사랑하고 있습니다.
왜 나는 당신에게
'사랑'한다고 말을 꺼내지 못하는 걸까요?
그리고 세상에 얼마나 많은 이들이
이 '사랑'이란 단어가 가진 폭력성과 오류 앞에서
주저함을 겪을 수밖에 없었을까요.
사랑이란 단어는
내게 허물 수 없는 장벽을 세웁니다.
생각할수록 억울해서 치가 떨립니다.
결국엔 말로 다 담아낼 수 없는 이 감정을
여전히 침묵으로만 지켜낼 뿐입니다.
4.
언어는 절대 진리(眞理)를 대변할 수 없습니다.
누군가에겐 집이 될 수도
누군가에겐 감옥이 될 수도 있는 것이지요.
지금 당신을 생각하며 쓰는 이 글조차도
그저 언어를 빌려 쓴 '묘사(描寫)'에 불과할 뿐입니다.
쿤데라는 사랑이
은유(隱喩)로 시작된다는 말을 했죠.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감정이란,
이 지극히 사적인 감정이란,
도저히 언어만으로는 온전하게 표현해 낼 수가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던진 말들에
나는 수많은 은유를 대었고,
내가 던진 말들에도
나는 수많은 은유를 곁들었습니다.
답답합니다.
당신을 사랑한다는 나만이 가진 이 감정을,
도대체 뭐라 표현할 수 있을까요?
5.
모임이 끝난 지 일주일째,
어느새 혼자 있는 시간과 공간은
온통 당신으로만 가득합니다.
눈을 뜨자마자 당신 얼굴이 그려지고
눈 감기 전에도 당신 얼굴이 아른거립니다.
어떻게 다음을 기다려야 합니까?
그것도 불확실한 다음을.
나는 나를 이미 상실했고,
시간 속에서 내 몸을 치우는 일이 잦아졌습니다.
도저히 이대론 안 되겠다 싶어
결국 물어봅니다.
"혹시 다음 주에 바빠?"
...
"시간 괜찮으면 같이 밥 먹지 않을래?"
어떤 심정으로 문자를 보냈는진 잘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다만 문자를 보내놓고서
한참 동안 휴대폰을 쳐다보지도 못했던 것은 기억납니다.
'이쯤 되면 문자가 왔으려나...'
'아... 안 왔으면 어쩌지...'
그렇게 홧김에 봐버린 휴대폰 화면 속,
당신의 문자가 도착했다는 알림을 보고야 말았습니다.
후-
심호흡 한 번 해 주고,
어떻게든 튀어나가려는 심장을 꼭 부여잡으며
실망하지 않기로 다짐하고 확인합니다.
"좋아!"
6.
평소엔 알아보지도 않던 주변 식당과 카페를 하나하나 찾아보기도 했고
대화도 어떻게 이어나가야 할지 몰라
상상 속의 동영상을 수백 번도 넘게 돌려보며 편집해 보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금요일 점심.
당신과 나,
처음으로 둘만의 시간을 가지게 된 날.
저 멀리서 당신이 걸어오는 모습을 보며
내 심장이 얼마나 떨어댔는지
문득 당신도 이 진동을 느끼길 바랐습니다.
하지만 최대한 티를 내지 않고
자연스러운 척 인사를 건넵니다.
"안녕. 어떻게 지냈어?"
"나? 그냥 뭐... 이것저것? 근데 이제 슬슬 시험기간이니까 공부해야지~"
"그렇구나..."
미안합니다,
내가 익숙하지 않은 지라
잠깐의 침묵이라도 조금만 견뎌주었으면 좋겠습니다.
"근데 오빠. 나 뭐 하나만 물어봐도 돼?"
"응? 뭐?"
"왜 나랑 둘이서만 보자고 한 거야?"
"..."
이렇게 갑자기 들어오신다고요?
순간 내 얼굴이 빨개지진 않았길 바라봅니다.
"그냥… 너랑은 단둘이 한 번 보고 싶었어."
"아~"
살짝 미소를 띠며 고개를 끄덕였던 당신의 모습을
나는,
어떻게 해석하면 되겠는지요.
이 행동엔
어떤 은유가 담겨있는지요.
그리고,
나는 왜 자꾸
입술까지 다가선 순간마다
'사랑'이라는 장벽 앞에 늘 멈춰 서게 되는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