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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긴 백발에 푸른 눈을 가진 노숙자

by 사색가 연두


금호고등학교 후문, 있는 거라곤 달랑 전봇대와 가로등 몇 개가 전부인 그 골목에, 언제부턴가 정체 모를 남자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는 한 주에 한두 번, 그것도 정해지지 않은 요일과 시간에만 모습을 드러냈다. 처음에는 단지 조금 특이한 노숙자쯤으로만 여겨졌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는 이상하리만큼 사람들 사이에서 회자되었다. 왠지 그가 그 자리에 있는 것은, 어쩐지 필연처럼만 느껴진다는 것이다. 신문지를 들고 말없이 가로등 옆에 앉아 있는 사내의 모습은 아무도 모르는 물속 어딘가를 향해 가만히 낚싯줄을 던져둔 채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만 같은, 그렇게 시간을 낚는 사람처럼 보였다.


그의 외형 또한 독특했다. 턱을 삼킬 듯 말 듯 한 수염, 바래져 더는 본래의 색을 알 수 없는 낡은 재킷, 단추가 어긋난 하늘빛 셔츠, 밑창이 닳아버린 운동화, 주름진 회색 슬랙스, 그리고 언제나 눌러쓴 검은 벙거지 모자까지. 그러면서도 오래 떠돌아다닌 자의 흔적을 고스란히 품고 있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사람들의 시선을 끌어당기는 건 따로 있었다.


바로 백발 사이로 길게 드리운 머리칼 아래, 어른거리며 빛나는 푸른 눈동자.


이러한 외형 때문인지 학생들은 그에게 푸른 눈의 킬러, 백발의 구미호, 장산범 등 여러 별명을 붙였다. 하지만 사람들은 막상 그를 볼 때면 신기해하면서도 마치 징조를 피하듯 발 빠르게 지나치기 바빴다. 그는 신문을 보는 척하면서도 지나가는 사람들을 하나하나 훑어보는 습관이 있었고, 어떤 순간엔 아예 노골적으로 시선을 고정시키기도 했다. 그때 사람들은 말한다. 그 눈빛은 무언가를 뚫고 들어온다고. 확실히 그에겐 묘하게 시선을 끄는 신비한 아우라가 있었다. 그리고 그는 사람들을 가만히 쳐다만 볼 뿐, 그 누구에게도 먼저 말을 걸지 않았다. 심지어 누군가가 그에게 다가가 말을 건네도 그는 굳게 입을 다문 채 침묵을 지킬 뿐이었다.


그런데 대략 한 달 전부터, 그를 두고 금호고 학생들 사이에서 이상한 소문들이 돌기 시작했다.


'절대로 밤중에 그 노숙자를 마주쳐선 안 돼.'


혹여나 밤에 그를 마주치게 된다면 뒷산으로 데려가 간을 빼먹는다느니 하는, 그런 전래동화에서나 일어날 법한 괴담과 더불어 과거에 성추행으로 감옥에 간 적이 있다거나 사람을 죽인 적도 있다는 등 출처 불명한 소문들이 학생들의 입을 타고 돌아다녔다. 마치 도시 전설처럼 떠도는 말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퍼지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런 음모론들은 다 차치하고서라도, 몇 가지 수상한 점이 있긴 했다.


하나는 그의 목표 대상이 오로지 금호고 학생들이라는 점. 또 하나는 밤 시간대에 직접 그를 보았던 금호고 학생들의 증언이다. 수상할 수밖에 없던 것이, 그들은 하나같이 입을 모아 다 비슷한 경험담들을 늘어놓았다.


"밤중에 학원 끝나고 집 가는 길이었어. 그 어두운 후문 골목 알지? 거길 지나가는데 그 노숙자가 가로등 불빛 아래에 떡하니 날 보며 서 있는 거야! 근데 그 사람이 갑자기 웃으면서 나한테 말을 걸었다니까?"


"나도 거기서 그 사람 봤어! 계속 이상한 눈빛으로 나를 꿰뚫어보듯 바라보는 거야. 순간 소름이 돋아서 몸이 안 움직이더라고. 그러더니 갑자기 나한테 오라고 손짓을 하더라고!"


그리고 그 순간, 그는 학생들에게 어김없이 이렇게 외쳤다고 한다.




"어이~ 키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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