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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침대옆버스 Sep 05. 2023

그리운 취향

나의 취향 찾기 

 올해 초 '2023년은 작년보다 담대해지리라'는 목표하에 만다라트 계획표를 작성했다. 만다라트란 일본에서 고안한 사고 기법으로, 하나의 주제에 대한 하위 주제를 설정하고 아이디어를 확산해 나가기 용이한 형태다. 먼저 3x3칸으로 된 사각형을 3행 3열로 총 9개 그린다. 그리고 중앙 3x3 사각형의 내부에서도 정중앙에 위치한 작은 사각형에 나의 최상위 목표를 적는다. 나의 경우 이곳에 '나를 지키며 일에 적응하기'를 적었고, 둘러싼 8개 작은 사각형에는 이를 달성하기 위한 세부목표인 '신체건강 증진', '장점 독려', '약점 보완', '주변에 미안함보다 고마움 표현', '신규 부서 파악', '미래 역량 계발', '소비/독립 루틴 확립', '도전 목록 이행'을 넣었다. 이들을 남은 3x3칸 사각형의 중앙에도 동일하게 옮겨 적어, 각 세부목표에 대한 구체적인 실현방법까지 나열했다.


 회사 업무로 지나치게 방전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 하나하나 적었건만, 4월까지는 엉망이었다. 올해도 작년과 다를 바 없겠구나 체념했다. 최상위 목표인 '나를 지키기'가 힘겨웠기 때문이다. 5년 차에 처음 경험한 팀 이동이었는데 팀 내 업무 변화와는 차원이 달랐다. 업무 자체가 어렵다기보다는 개인의 자율성이 낮고 한 가지 일이 완수되기까지의 템포가 느린 편이어서 답답함을 느꼈다. 돌이켜보면 업무 특성상 바꿀 수 없는 것인데, 계속 지난 부서와 비교하며 힘들어했다. 게다가 이런 상황에서 일에만 매몰되다가는 후회될 것 같아 시간과 마음 모두 여유가 없는데도 억지로 쪼개서 만다라트를 이행하려 했다. 주 1회 달리기, 고정된 시간에 잠들고 일어나기, 중국어/영어 공부하기 등등... 회사도 자취도 초보 시점에서 모든 걸 어겨 쥐려고 하니 제대로 쉴 틈이 없었다.


 그래서 잠시 내려놓기로 했다. 너무 다 해내려고 하지 말고, 일단 내가 할 수 있는 것만 하기로. 시작은 현 업무에 대해 비교 말고 우선 받아들여보는 것이었고, 집안일이 밀린다는 상황에 스트레스받지 말고 20%만 해내도 스스로 치켜세웠다. 차츰 익숙해질 무렵 하나하나 다시 원하는 기준치만큼 병행할 수 있었고, 하반기가 되어서 만다라트를 보았을 때 전부는 아니더라도 꽤나 많은 것들을 해내고 있어 뿌듯하다.

물론 아직 못한 것도 있는데, 그중 하나가 '도전 목록 이행' 소주제에 들어간 '좋아하는 사진이나 그림 액자화'다. 회사 공용 기숙사를 나와 처음 개인 공간으로 이사했을 때, 이곳이 나만의 취향으로 채워질 수 있을까 상상해 보았다. 직장 선배들이나 지인 집에 놀러 가면 신기할 만큼 그 사람에 들어맞는 분위기가 형성돼 있었다. 그 모습이 멋져 보였고, 그에 비해 나에게는 확실한 취향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를 나타낼 수 있는, 내가 좋아하는 것은 무엇일까. 예전에는 분명 나도 명확한 호불호가 있었던 것 같은데, 회사생활을 처음 시작할 때 도저히 이해 안 되는 일들이 많지만 그것에 대해 하나하나 열띤 토론을 벌일 위치가 아니어서였을까. 이제 점심 메뉴조차 '아무거나' , '괜찮아요'를 달고 사는 재미없는 어른이 되어버렸다. 흑. 그래도 희망을 잃지 않았던 건, 나보다 오래 일한 분들이 직장에서는 드러내지 않더라도 각자의 공간에서만큼은 특유의 개성을 발휘하는 덕분이었다.


 실제로 자취 10개월이 지난 지금, 취향을 작정하고 만들려 하지 않았음에도 곳곳에 놓인 물품들이 제법 나를 대변한다. 팟캐스트 듣는 것을 좋아해 큰 마음먹고 구매한 블루투스 스피커, "난 초보니까!" 떳떳하게 외치는 강백호 기세를 닮고 싶어 붙여둔 슬램덩크 포스터, 하나도 내 돈으로 산건 없다만 그래서 더욱 주변 사람들의 마음이 담긴 인형과 피규어까지. 딱히 그것들 간의 연결성을 찾진 못했지만 누군가는 이것이 나답다고 느낄 것이다.


 이제 액자만 남았다. 내가 촬영한 사진들 중 마음에 드는 것을 인화할까 싶다가, 새로운 도전을 해보기로 했다. 취향을 직접 그려보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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