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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침대옆버스 Sep 14. 2023

그리운 취향(3)

스누피규어


<작품2> 스누피규어


 대학교 친구 M을 보면 스누피가 떠오른다. M은 귀 뒤로 머리카락을 넘기지 않고 양쪽 어깨선 앞으로 길게 내려놓곤 하는데, 머리숱이 많아서인지 그 모습이 스누피의 귀와 닮았다. 얼굴이 뽀얗고 순하게 생겨서도 있다. 좋아하는 친구에게 닮았다고 언급하는 캐릭터인 만큼, 원래 스누피가 귀엽다고는 생각했다. 그러나 내 집 안에 스누피를 들이게 된 건 애인 J가 랜덤 피규어를 선물해 준 덕분이다.


 백화점 문구 및 서점 코너에서 발견한 스누피 피규어는 랜덤 박스 안에 들어있었다. 다양한 통 안에 들어간 스누피가 테마였는데, 샴푸통 안에서 목욕 중인 스누피, 케첩통 안에서 핫도그 먹는 스누피 등이 있었다. 앞에 언급한 두 가지 중 하나가 나왔으면 하는 마음으로 신중하게 상자를 흔들고 골랐다. 그러나 우스갯소리로 이것만은 안 나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던 주전자 스누피가 나왔다. 믿을 수 없는 결과에 "이게 뭐야!"를 연발하며 한참을 웃었다. 그래도 다행인 건 사진보다 실물이 훨씬 뛰어났다는 점이다. 주전자는 파란색 물감에 회색 물감 두 방울 떨어뜨린 듯한 은은한 색상이었다. 강아지 스누피와 노란 새 우드스톡이 쥐고 있는 컵은 빨간색이어서 조화로웠다. 가장 평범한 조합이라 생각했는데 오히려 눈에 들어오고, 볼 때마다 평화로워 지금은 집안 중앙에 고이 보관해 둔 상태다.


 막상 연필로 밑그림을 그리려니 새로 지각하는 부분이 많았다. 우드스톡이 음료를 마시는 게 아니라 컵 안에 담겨있던 거였구나. 주전자 부리 부분이 윗뚜껑보다는 낮은 높이로 솟아있구나. 작게 끄적일 때는 한 획에 밑그림을 완성하려고 했던 지라, 여러 번 덧대는 건 오랜만이었다. 미술학원에서 소묘(데생) 배울 때, 물체의 중앙을 기준으로 수직선과 수평선을 그린 후 대칭을 맞춰가며 그리라고 했던 것 같은데. 방법을 아는데도 선을 긋고 멀리서 바라보면 삐뚤빼뚤해 여러 차례 지우개를 들었다.

  

 내가 그린 스누피는 통통하고 발이 크다. 우드스톡의 머리카락은 지나치게 볼록해 얼굴이 유독 강낭콩 같다. 연필로 명암을 주어 입체감을 주겠다는 포부는 사라지고, 최대한 단순하게 그림을 완성하는 것으로 선회했다. 중간 두께의 유성펜으로 신중하게 연필 선을 채운다. 다시 지우개로 주변의 선들을 지울 때의 쾌감이란! 수평 대칭 고민했던 적이 있냐는 듯 한큐에 그린 그림이라면 쇼츠에 올렸을 것이다. 집안 군데군데 돌아다니는 색연필과 볼펜을 이용해 특이점을 잡아준다. 일괄적으로 진하게 칠하지 않는 이상, 색연필도 어떤 결로 채워지는지 다 보인다. 그래서 연필로 전체 명암을 못 준 대신 이 부분에서라도 길게 길게 같은 방향으로 색을 칠해나간다. 괜히 주전자 뚜껑 부분은 동그란 입체감을 살려 포물선(함수 y=x2) 모양으로 손을 움직인다. 우드스톡 색상을 노란 형광펜으로 칠할 때는 눈이 아주 살짝 번지는 위기가 있었으나, 스누피도 우드스톡도 곧 잠들듯한 눈빛이어서 오히려 아래로 눈꼬리가 쳐진 게 무난한 듯하다. 그림을 그릴수록 내가 이것들을 왜 좋아하는지 점점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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